컬럼

‘에코 樂 갤러리’의 컬럼입니다.

40개의 포스트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20-06-16
최후의 문명[4]-한국미술의 미래를 향한 좌충우돌의 여정!
16.황금가지1,2 -조지 프레이저/한단고기/해로도토스의 역사낭만주의 풍경화로 대륙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월리엄 터너의 명작 '황금가지'를 표지로 고집한 조지 프레이저 경....이탈리아 아리키아지역 네미 마을의 숲에서 사냥과 다산, 그리고 축복의 여신 디아나를 숭배하며 숲과 성소를 지키는 유한의 사제왕과 만물의 수호여신이자 대지와 가축,다산과 풍요, 무한한 숲의 여신인 디아나를 매개로, 전세계 모든 민족의 역사 이전의 신화의 탄생 과정을 집대성합니다. 특히 신이 아닌 사제직의 계승과 관련하여 반드시 전임자를 죽여야 하는 특수한 살해 규칙을 규명하여 이 비극적 관행이 낳은 비애의 철학(비극)의 시원을 제시하지요.또한 미개 신앙의 신에서 인간의 신, 즉 군주나 왕으로 권력이 전이 되는 과정 저술은 모든 민족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매우 흥미롭습니다.숲의 여신 디아나를 수호하는 인간 사제는 누구든지 아리키아 숲의 신성한 나무(떡갈나무)에 기생하는 황금가지(겨루살이)를 꺽는 인간의 도전을 받습니다.겨우살이가 본체인 떡갈나무에서 분리된다는 것과 이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이렇게 선임자를 살해 이유는 수렵과 유목,농경 사회에서 익히 발견되는 신 살해관습에서 연유하지요.특히 죽어 사라지는 신은 그동안 부족내 누적된 불행과 죄악을 떠맡아 영원히 짊어지고 간다는 생각은 선사시대 인류의 익숙한 사유였습니다.고통이나 슬픔도 다른 사람에게 옮겨 대신 감당하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이러한 代贖원리는 무형의 신뿐만 아니라,동물신(희생양) 심지어는 인간(인신공양)에게 까지 행해집니다.특히 공적인 재앙의 추방과 전이는 수시로 또는 정기적으로 열리는데 주로 혹독했던 지난 겨울신을 추방하는 봄의 축제나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면 희생 동물로 제사 지내는 추수감사제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아무튼 인류가 진화하며 사회적 문화적 지수가 높아지면서 이러한 원초적이고 잔인한 관습이 점차 사라진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프레이저경의 황금가지에는 우리 민족의 탄생 신화와 관련 지어볼 특이한 사례가 담겨 있는데요.동물신 숭배와 관련하여 곰을 숭배하는 사할린 지역의 길랴크족입니다.숭배 대상 동물을 살해 후 먹지 않는 이집트의 경우도 있지만, 속죄의 제물로 평소에 사냥해서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렵형 유전자를 갖고 있는 북방계인 길랴크족은 숭배 대상인 곰을 적극적으로 먹었습니다.지금도 사할린 일부 주민들을 곰을 숭배하고 축제를 여는 풍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이쯤해서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사할린 지역의 곰을 숭배하는 길랴크족을 주목합니다.삼국유사와 삼성기 하편에 곰과 호랑이..그리고 마늘과 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른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군신화지요. 다만 다른점은 삼국유사에는 곰과 호랑이가 동물로, 삼성기에는 사람인 백성으로 나온다는 점입니다. 태백일사에는 좀더 구체적인 서술이 있습니다.'이때 곰과 호랑이가 이웃하며 같이 살았다.그들은 항상 신단수에 기원하며 환웅에게 청하여 천계의 백성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우리는 곰과 호랑이가 동물이 아닌 실제는 주변의 부족민인 백성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겠습니다.택백일사 '신시본기'는 '삼성밀기'(세조가 수집하라는 왕명에 목차에 들어 있음)의 내용입니다.'환웅의 배달국 말기에 주변에 다스리기 어려운 부족이 있어 이를 우환으로 여겼다.원래 살던 무리는 호였는데,뒤에 이주해온 무리는 웅이었다.호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며, 오로지 약탈만 일삼았으며,웅은 어리석고 자만하여 서로 조화하지 못했다.같은 지역에 살면서 서로 돕지도 않고 혼인도 안했으며 매사에 서로 길이 달랐다.熊의 여왕이 환웅에게 신덕이 있음을 전해 듣고 찾아와 굴(穴;지역)을 하나 내주기를 청하니 환웅이 허락하여 아들을 낳았다.虎는 끝내 깨닫지 못하니 사해 밖으로 쫓아버렸다.'윗글 중 웅의 여왕(熊女君;학자들은 모계사회로 추정) 대하는 순간 앞에서 언급한 해로도토스가 언급한 스키타이족 중 여인부족 여전사 아마조네스족들이 스키타이 훈남들과 새로 만든 사우로마타이족이 떠오르는 것은 저 만일까요? 특히 원문에서 백성을 뜻하는 한자가 백성 '民'이 아닌 백성 '맹氓'(이주해온 백성)이어서 더욱 흥미롭습니다.저의 결론은 조지 프레이저경이 언급한 사할린의 곰 토템족인 길랴크족은 뒤늦게 흑해 연안에서 동진한 스키타이 모계 부족인 사우로마타이족의 후손이며 이들이 바로 단군신화의 실체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아직 개인설이니 딴지 걸지 마시라능...ㅎ17.한민족의DNA를찾아서-김석동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전 세계에서 땅넓이 109번째,인구 26번째,동북아의 작은 반도국가..그것도 두 동강난...우리 조국 대한민국입니다. 한국 전쟁이후 197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 출발한 우리 경제는 반세기만에 경제규모 세계 11위,제조업 5위,수출 6위,외환보유국 9위로, 한국전쟁 후 경제가 40여배 성장한 최강의 IT국가이며, BTS와 영화 '기생충' 보유국입니다. 우리는 대충 알고...세계는 정확히 알고 있는 사실들이죠.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보니, 썰물이 되자 우리만 빤스를 입고 수영을 했더군요.그동안 서구문명국이라고 믿고 있었던 나라들...본전(?)이 다 들통났습니다.ㅎ 특별한 지도자나 위대한 영웅없이 이렇듯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민도(국민성)까지 동시에 거머쥔 우리 민족은 도대체 누구일까요?저만 궁금해 한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유라시아대륙을 종횡하며 대제국을 건설하고 유럽을 수시로 유린한 북방 기마 민족의 역사속에 오늘날 우리민족이 가진 세계적 경쟁력의 DNA가 있음을 실제로 몽고고원,중앙아시아,유럽대평원,북만주 등 50여차례 탐방을 통해 실증한 분을 소개해 드립니다.바로 금융실명제때 실무을 담당하고, IMF국난 극복에 큰 기여를 하신 前 금융위원회 김석동위원장입니다.저자는 잊혀진 우리 민족의 고대사를 통해 우리 한민족의 DNA를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미래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밝힙니다.저는 그것이 한국 미술의 미래도 보장한다고 생각하는데 저와는 한끗 차이만 다르군요.ㅎ유럽 대평원-남부러시아-중앙아시아-우랄/알타이산맥-몽고고원-만주벌판...이 광활한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북방기마민족의 부족 연맹체! 바로 스키타이부터 시작됩니다.이들의 후손은 곧 역사시대에 바로 우리가 귀에 익숙하긴 하지만 누가 누구인줄 몰랐던, 흉노/선비/돌궐/몽고/여진/숙신/말갈/읍루/예맥/동이/구이족들로 불리게 됩니다. 말과 활을 바탕으로 기동성,활동성,용감함,전투적,수용성,순응성등을 두루 갖추고 정복과 약탈, 그리고 교역과 정착으로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페르시아 북동부,아랄해,카자흐초원,키르키스초원,우랄,알타이,천산산맥 일원에서 다원적 문화를 창조시킨 촉매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인류 문명의 근원지인 서남아시아(메소포타미아문명,인더스문명,이집트문명)라는 방죽에 미꾸라지 역할 을 한 셈입니다.ㅎ 그리스에 청동기 문화를 전하고 이집트 파라오에게 조공까지 받았던 기록이 있지요.혹독하고 잔인한 약탈로 주위를 초토화시켜 독일의 스키타이 전문가 파르칭거가 발굴한 수많은 이들 지역의 선사 유적지에는 유골에 상처가 난 집단매장지가 수두룩합니다.ㅠㅠ 오죽했으면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1세가 무려 70만 대군으로 소탕을 시도하다 실패한적이 있지요. 암튼 무거운 조공과 혹독한 약탈 덕분에 민심을 잃은 스키타이족은 기원전 1세기 쯤 정주민화되어 정착하거나 멸망해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하지만 이들의 선조 스키타이족은 기원전 4,000년 쯤 간빙기로 빙하로 덮혔던 우랄과 알타이 산맥 사이의 카자흐 고원이 열리자 동진하게 되지요.한단고기를 보면, 환인국 지위리 환인(지위리 왕조)기원전 3,898년 서자부 대인 환웅으로 하여금 천부인과 아홉무리(구이족)3,000명을 이끌고 흑수(흑룡강)와 백산(백두산)의 신단수아래에서 신시를 열고 밝달국(동녘,태양,광명의 배달국)을 건국합니다.중국역사에서 서융,북적,동이족으로 폄훼된 모든 북방유목기마민족 대부분이 거발환 환웅의 배달국, 단군 왕검의 고조선의 같은 부족이라고 보시면 틀림이 없습니다.이책에는 중궈들이 오랑캐라 비웃던 배달국,조선국 부족연맹체의 예하 부족들이 어떻게 유럽과 중국을 유린하며,세계사를 만들어 가는지 소상히 담겨 있지요. 먼저 이름도 흉악하긴하지만,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는 고조선의 속민으로 나왔던 흉노족은 기원전 300년 북중국,몽고고원,중앙아시아(흑해,카스피해,아랄해 연안)를 아우르는 최초의 스텝 대제국을 세웁니다.이들의 후예인 훈족은 AD4세기쯤 부활하여 유럽을 강타,이들을 피해 남하한 게르만민족에 의해 그 유명한 로마제국 멸망의 단초가 되지요.흉노의 뒤를 이어 AD156년 또다른 부족인 선비족이 나타나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북중국을 지배합니다.그뒤를 이어 AD552년 흉노의 후예인 돌궐,투르크족인 유라시아 대초원을 정벌하고 투르크 제국을 건국하여 비잔틴 제국을 격파합니다.이들중 아나톨리아 고원의 오스만 투르크는 유럽까지 지배하다 오늘날 형제국인 터키가 되지요.또 그뒤를 이어 몽고의 칭기스칸이....ㅠㅠ 유럽인들은 이 스키타이의 후손들에게 학을 뗐겠지만, 이들은 어쩌면 자기 조상들이 활개치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회귀본능이라고나 할까요?ㅎ만주의 여진족은 퉁그스족과 몽고족의 혼혈인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을 멸망시키고 금나라를 세웁니다.후금의 누루하치는 중원을 접수하고 청나라를 세우죠. 이들 모든 부족은 모두 我에서 분리되었다고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말합니다.신라 문무왕비에 흉노의 후손임이 자랑스럽다는 생경한 기록이 이제 이해됩니다.흑해 연안의 스키타이 황금 유물이 신라 고분에서 발견되는 것도요.ㅎㅎ이제 우리 한민족이 세계를 상대로 활개를 칠 차례가 된 것 같군요.어쩌면 이미 이전 역사와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반도체,스마트폰,자동차,조선,가전,디스프레이,철강,화학,건설,스포츠,영화,드라마,K-Pop,게임,성형,바이오,IT.....등등 우리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다음은 우리 조상들이 선물로 준 소중한 DNA를 믿고 K-Art 신드롬을 만들어 봅시다.18.한국인의얼굴몸뇌문화-조용진어느덧 총정리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군요.그동안 시공을 초월한 사유의 공간에서 좌충우돌 헐떡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중구난방(衆口難防) 두서없이 내질러 논 퍼즐들이 조용진 교수님의 명저 한권으로 총정리가 됩니다.제가 언급한 여러 책들도 중요하지만, 혹시 오늘날 우리 한민족의 급부상에 대한 원인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책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조용진 교수님은 우리나라 유일한 미술 해부학자로 한국인의 형질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단지 미술계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 전반에서 일어나는 부흥 현상에 대한 원인과 현상, 그리고 전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요즘 전 세계적으로 인종 차별 문제가 심각하지요.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아프리카인을 조상으로 두고 있습니다.피부색을 기준으로 인종을 나누고 있지만, 이 피부색이라는 것은 비타민D를 태양빛으로부터 얻기 위하여,빛이 많은 아프리카인는 과도한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멜라닌 색소를 높인 결과이고, 반대로 유럽인은 빛이 적어 멜라닌 색소를 낮춘 결과물이지요.유럽인이 혼혈없이 아프리카에 가서 2~3천년 살다보면 다 흑인이 됩니다.ㅎ여하튼 열심히 고기를 먹고 체력과 힘을 비축한 호모 에렉투스가 아슐리안 계통의 석기와 불 활용 능력을 가지고 약 100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납니다.그중에서 주시야가 우시안의 형질을 가진 개체는 본능적으로 우측을 향해 근동,중동, 순다 랜드 거쳐(일부는 호주 뉴질랜드로 감) 극동인 한반도에 도착...베링육교를 지나 아메리카로 건너 갑니다.웬지 모르게 좌측으로 끌리는 죄시안은 이집트까지 올라 왔다가 그 반대인 좌측, 즉 유럽으로 진입하게 되지요.지중해 남안이나,북안 또는 서아시아,중앙아시아 흑해 및 카스피해에 머물다 서진한 경우도 있습니다.미술 해부학 측면에서 보면 우시안와 좌시안인들은 거주지 환경과 기후에 따라 서로 다른 형질로 진화를 하게 됩니다.주로 빙하기에 낮아진 해수면으로 개방된 해안로로 이동한 우시야인들은 주변 환경이 따뜻하고 식량이 풍족해 주로 채집생활을 하지요.울창한 밀림속에서 채집을 하기 위해서는 후각,촉각,청각이 예민해지고 시각은 근거리에 맞춰져 보다 정밀해집니다.항상 오른발이 먼저 나가고, 오른쪽 떡이 더 커보이며...ㅋㅋ 글도 오른쪽 부터 시작하려 아래로 씁니다(정글에서 열매를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따야해서 상하시가 발달함...).특히 미술 작품을 보면 그 특징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데요.작품에 명암이 없고,원근감은 개무시되며(심지어는 역 원근법) 쓸데없이 디테일한 묘사를 하고 작품이 모두 부분시가 반영된 평면적이고 개념적인 성향이 나타납니다.특히 본적도 없는 세계(밀림 너머의 세계..)를 상상해서 그린 관념화에 능숙합니다.반면에 좌측으로 간 좌시안들은 울창한 밀림 대신 탁 터진 초원을 마주하게 되지요.채집할 식량이 없다보니 대신 사냥을 합니다.당연히 시각이 다른 감각들보다 우선하겠지요.거리감과 공간감은 사냥을 해야 하는 이들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줍니다.투창을 하기 위해서는 왼발을 앞에 두고 몸통을 힘것 뒤틀어야 멀리, 그리고 빠르게 창이 날아갑니다.그래서 미군은 행진할때 왼발부터 내딪지요.Your left,Your left,Your left right! 당근 영어등 그들의 문자도 왼쪽부터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향합니다(좌우시).초원에서 수평이동하는 동물들을 사냥하는 습관에서 연유된것이지요.페북의 인도나 중동 친구들의 언어를 보면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수평이동하는데 우시야를 가졌지만 밀림이 아닌 사막이라는 탁 터진 환경 때문인 것으로 추정합니다.그렇게 때문에 좌시안 인들의 미술은 전체시가 반영되어 명암법,투시도법 등 공간감, 즉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표현합니다.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들이 모두 그렇습니다.그렇다면 암흑기인 중세 1,000년동안의 이콘화에는 왜 명암과 원근감이 없이 평면적일까요? 그것을 기독교의 탄생지가 유럽이 아닌, 우시야인들이 정주했던 서아시아로 우시야적 특성이 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만약 어떤 특정한 민족이 이 두형질을 가졌다면 어떻게 될까요?일단 유태인들이 떠오르네요.북아프리카,유럽전역,남부러시아,서아시아 지역에서 나라없은 천덕꾸러기였던 유태인들....최다 노벨상을 수상했으며,전세계 금융과 언론, 그리고 정치까지 장악한 막강한 민족입니다.또 다른 한 민족이 있는데...바로 우리 한민족입니다.우리민족이 형성된 한반도는 빙하기때 아프리카를 떠나 해안로를 통해 이동한 우시안,남방계인 호모 에렉투스와 그이어 도착한 호모 사피엔스의 중간기착지였지요, 그러나 BC 1만 1,000여년전 플라이스토세가 끝나고 간빙기인 홀로세가 시작될 무렵,우랄*알타이 산맥사이의 카자흐 초원이 열리자 드디어 좌시안의 북방계 수렵인들(스키타이족들,환웅 배달국)의 본격적인 동진(그이전에도 산발적인 동진한 북방계...추위에 강한 퉁그스계도 있었음)이 시작됩니다. 마침 차오르는 바닷물로 베링육교가 침수되자 한반도와 북만주는 그야말로 다양한 형질을 가진 인종의 아수라장이 됩니다.지난 수천년동안 우리 한민족은 혼혈 단계를 넘어서 치환단계가 현재도 진행중입니다.경기도 수원을 기준을 형질 검사를 한 결과 남방계 32.7%,북방계 34.6%, 중간형 33.6%으로(그러니 정치적으로 맨날 싸웁니다. 중도층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죠) 아시아 지역에서 중간형의 발현율이 30%이상 난 나라는 싱가폴과 중국 우환뿐이라고 합니다.중국(우환제외 북쪽은 북방계,그아래는 모두 남방계)과 일본은 아직 혼혈단계(일본은 78% 남방계,북방계는 그나마 한반도에서 건너간 22%정도...섞인 중간층 없음)로 보입니다.어쩌면 우리 한민족인 인류가 가진 다양한 형질의 유전자가 가장 많이 섞인 민족일 수도 있겠습니다.단일민족이 아닌 다원성의 유일민족!이결과가 다양한 분야의 문화와 산업,스포츠,예술 그리고 민족성에서 이미 발현되고 있습니다.전 그 다음이 K-Art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이제 우리의 정체를 정확히 알았으니 서양애들이나 중궈에게 쫄지 말고 우리 유전자 자체에서 우러나는 영감이 발현된 미래의 세계적인 명화와 위대한 화가의 출현을 고대합니다.다음 주엔 자랑스런 한국인의 미의식과 미학에 대해 최광진 교수님의 '한국인의 미의식'과 미학인 '신명과 해학'을 정리해 보겠습니다.19.한국의미학,#한국의미의식1신명,#한국의미의식2해학- 최광진 지음근동....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에 나오는 말입니다.생소한 이말은 유럽인들이 유럽을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아시아를 지칭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죠. 좀더 먼 아시아는 중동....아주 먼 아시아는 극동! 우리는 한중일을 한다발로 보는 극동에 살고 있는셈입니다.만약에 우리가 중심이 된다면 유럽은 극서인 머나먼 변방이 되겠네요.ㅋㅋ서양,중국,일본과 다름을 논하다! 최광진 선생의 명저 '한국의 미학'의 부제입니다.한국의 미학은 서양과는 분명히 다르겠지만,같은 극동인 중국과 일본의 미학과도 다르다는 것이 이책의 핵심이죠.지금까지 제 포스팅을 쭈욱 읽어온 분들은 왜 우리의 미학이 같은 지역에 존재하면서 중국, 일본의 미학과 다른지 감이 오시죠?ㅎㅎ유전적 형질이 다르기 때문에 발현된 미학도 당연히 다른 것으로 봐야겠습니다.신과 인간,미와 추가 분리되는 이분법적인 서양 분화주의 미학에 비하여, 동양의 미학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통합되는 점에서 크게 다릅니다.하지만 통합을 다루는 같은 동양 미학도 극동 한중일 3국간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우주중심적 통합을 지향하는 중국 동화주의 미학은 인간이 우주와 동화 되는 '천인합일(天人 合一)'을 미적 이상으로 삼습니다.이에 비하여 사물 중심적 통합을 추구하는 일본의 응축주의 미학은 우주성이 구체적인 사물에 응축되어 인간의 감정이 이입됨으로써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른다고 보지요.하지만 한국미학은 그 중심이 우주도 아니고 사물도 아닌, 바로 인간에 방점을 둡니다.통합을 하되 인간 중심으로 통합을 하지요.천-신인묘합(天-神人妙合),신과 인간의 어울림...우주와 대자연과 인간은 상극이라 어느 한쪽이 주종의 자리나 일방적인 포함이 아닌, 맞서되 묘하게 어울리는 인간 중심의 接化주의 미학입니다.근대 서양 미학은 동양을 서양의 문화적 식민지로 보고 순수성과 보편성을 과도하게 밀어 붙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칸트의 보편주의 미학인데요.이런 보편성 회피를 위해 각 민족 문화의 특수성을 존중해주는 풍토가 절실하다고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가 말합니다.민족은 환경과 역사를 공유한 강력한 삶의 공동체로 그 민족의 예술은 개인의 천재성의 발로가 아닌 민족의 시대정신과 민족 고유의 정서의 발현으로 보고 있지요.언뜻 세계의 보편적 미술과 민족 미술은 대립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각 민족의 고유 정서를 진솔하게 표현하고 인정한다면 변증법적 보안을 통해 세계성,보편성에 이를 수 있다는 보는 것이 맞습니다.말이 안된다고요? 그럼 잠시 방탄소년ᆞBTS의 이영상들을 보고 가겠습니다.https://youtu.be/a8MaTFce0EQhttps://youtu.be/Vwcjjfxphz4한국미술에 대해 독일의 미술사가 젝켈은 위엄과 매력,정제된 우아함,솔직 담백하며, 기술에 얽메이지 않은 자연성,무기교의 기교,고고한 기품과 완벽주의의 배척하지만, 너무 추상적이라 공허하고 관념적이라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군요.맥퀸은 냅핍을 관조적으로 보고 값싼 재료로 단순하고 소박한 선과 형태로 다룬 점에 주목합니다.일본의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예술을 무명의 민예에서 찾고 비애의 곡선과 한이 서려있는 백색에 의미를 두기도 하지요.또한 에카르트신부는 과장과 왜곡이 심한 중국미술과 차가운 감정과 틀에 박힌듯한 일본 예술 사이에서 위대한 조율성과 섬세한 감정으로 중용을 지킨 고요함과 정제된 형식미를 한국 미술의 특질로 보았습니다.앞서 우리민족 구성은 인류학적으로 수십만년전에 이동해 온 호모에렉투수(구석기,중석기인)와 4~5만년 올라온 호모사피엔스(후기 구석기인)의 남방계 채집형 유전자에 1만년전 이후에 북방로로 도착한 북방 기마 유목민인 청동기인들의 혼혈로 중국,일본과 상이한 유전적 형질의 차이를 살펴보았습니다.당연히 이런 민족성에서 나오는 미의식이나 미학은 달라야겠지요. 한국인의 궁극적인 미적 이상인 천-신인묘합(天-神人妙合)의 구조를 살펴보면, 시각적 양태를 표현한 멋!,심리적-감정적 느낌인 시훤!,행위성을 강조한 풍류!로 나뉘죠.여기서 파생되는 미의식이 바로 신명,해학,소박,평온입니다.신명과 해학은 이미 별권으로 출판되어 있습니다.한국적 표현주의인 신명을 말 그대로 귀신이 내 안에 나타난 상태를 의미합니다.광란과 격정, 그리고 광기의 파토스(Phatos)입니다.맞습니다. 신명나게 일하자!신명나게 한판 놀자...한국인은 자신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보다 신명난 상태로 현실 문제와 시련을 극복한 저력이 있습니다.초월적 정서처럼 보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언제든지 발현 가능한 미의식이죠.바로 律動呂靜...율려를 통해서지요.팽창과 수축...진동과 고요...춤과 음악에 맞춰 음결과 몸결,그리고 숨결의 일치가 바로 율려라고 보면 됩니다.위에 올려논 방탄소년단의 춤과 노래에 전세계인 반응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한국의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해학!모든 시대는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가 있지요.인류가 태초부터 가졌던 원초적 자유에 대한 욕망이 억압되면 분노와 좌절,열등감과 같은 부정적이고 불쾌한 정서를 갖게 됩니다.우리 한민족은 어쩌면 삶의 역경과 난관에 해당하는 현실에 대한 불쾌한 정서를 웃음으로 반전시킬수있는 달관의 지혜를 가졌습니다. 바로 불쾌의 정서를 쾌의 감정으로 승화시키는 해학입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우월하거나 숭고한 대상앞에서 괜히 주눅이 들지요.하지만 그 숭고했던 대상이 갑자기 왜소해지거나 만만해지면 웃음이 나오며 긴장이 이완되면서 묘한 쾌감을 느낍니다.대상과 화해가 불가한 풍자나 조롱보다는 화해를 전제로 하는 해학적 웃음의 가치가 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게 합니다.다음은 한국의 자연주의 소박미입니다.테크네에서 출발한 서양의 ART는 인위적이고 개인의 천재성에 의존하지만 소박미는 인위적인 가공 이전의 자연스런 본로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이상적인 삶을 표현합니다.일종의 大巧若拙(대교약졸)이라고 보지요.인간의 기교는 결코 자연의 변화 무쌍을 포착할 수가 없습니다.소박은 이렇듯 본질과 전체성을 파악할 때나 비로소 가능한 수준 높은 미의식입니다.평온의 미의식은 한국적 고전주의로 볼 수 있겠습니다.동요하지 않고 고요한 마음상태로 마음의 집착과 갈등의 해소에서 오는 정신적 충만감을 의마합니다.律動呂靜의 여정에 해당하겠군요.채근담에는 고요속의 고요는 진정한 고요가 아니라,분주함속의 고요가 참된 고요하고 하네요.분주하고 괴로운 현실속에서도 평온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혼란스러운 마음을 흡수 표용할 수 있는 명상적 차원의 미의식입니다.저자의 심오한 지혜가가 담긴 책 한권을 단 몇줄로 정리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치나 하겠습니까? 제 포스팅은 수박 겉 핥기이니...우리민족의 중흥에 관심을 가지셨다면 꼭 제가 언급한 책들을 정독하시길 바래봅니다.20.에필로그 고향인 전라북도 진안 마령에서 중학교 다닐때 우연히 들판에서 주운 구석기 시대 타제석기 몇점과 道가 있는 아홉 오랑캐의 나라인 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는 공자의 논어 한구절 말씀이 찰떡같이 달라붙어 우리 민족의 시원을 찾아 헤맨 좌충우돌 여정으로 지난 6개월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무릇 하나의 문화를 넘어선 문명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부(Money)와 문화섞임(Mix)의 결과물(m&m)이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중세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1,100년부터 200년동안 8차례에 걸쳐 진행된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과 근동 아시아의 문화의 섞임과 이탈리아의 십자군에 대한 군수와 약탈 무역의 결과에 따른 경제 부흥과 부의 축적 때문이지, 단지 학문과 예술의 부할만이 르네상스의 발생 원인은 아니지요.이러한 현상은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과 로마제국의 건설의 과정에서도 나타납니다. 속주에서 거둬들인 세금과 문화의 융합 심지어는 혼혈 권장 정책은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 내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 4대 문명 중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 문명의 발상지 언저리에는 항상 촉매 역할을 하며 지역을 휘젓고 다니는 북방 기마민족인 Skythai족이 있었지요.중국의 황하문명 또한 신석기 유적지 앙소지역에 방어시설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오랑캐라고 부르는 북방유목민족의 잦은 침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북방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의 정복과 약탈 무역은 주변 정주민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문화의 흐름을 용이하게 하고, 정착민과의 혼혈로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문명 탄생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이렇듯 역사적으로 보면 문명의 구성 요소인 경제적 부의 축적과 문화의 섞임의 이면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전쟁이나 정복...그리고 약탈을 수반한 폭력적인 과정들이 있었죠.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은 전쟁이나 약탈 무역없이 자력으로 경제적 부흥을 이루워냈습니다.문화 섞임 또한 첨단 IT산업의 발달로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상이한 문화의 융합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냈지요.아마도 우리는 다형질의 유일한 민족이기 때문에 문화의 수용 뿐만 아니라 체화와 전파를 통해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데 유리한 DNA를 가진것 같습니다.그 과정도 전쟁이나 정복 , 약탈이 아닌 지극히 평화로운 방법이니 별다른 저항 없이도 물 스며들듯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저는 21세기 한반도의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 현상을 제 5대 문명이자, 인류 '최후의 문명'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그동안 어설픈 이야기 들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단지 역사적 기록에만 의지하지 않고 기후학,인류학,미술 해부학,지리학,고고학 등등 그동안 주워들은 잡다한 지식을 비비고 비벼서 나름 말이되는...개연성있는 퍼즐을 맞춰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습니다.멋진 말로는 편집학,쉬운 말로는 짜깁기 신공....이렇게 숨 헐떡이게 하는 선사시대라는 고산지대에서 좌충우돌의 여정이 가능했던 것은 마음껏 상상하는 미술을 가까이 했기 때문이라고 우겨봅니다. 코로나 때문에 얻은 황금같은 시간을 절망만 하고 보내지않았다는 기록으로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그럼 종종 이번 공부 과정에서 저혼자만 알고 죽기에는 아까운 재미난 토막 이야기들을 에피소드로 남기겠습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20-06-16
최후의 문명[3]-한국미술의 미래를 향한 좌충우돌의 여정!
11.역사- 헤로도토스(BC484~425)서양 최초의 역사가이자 타고난 이야기꾼인 헤로도토스...페르시아와 그리스 전쟁의 시기(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에 당시 그리스 문화권이던 소아시아에서 태어납니다.타고난 관찰력으로 직접 여행하며 당시 벌어졌던 페르시아 전쟁사를 실증하죠.헤로도토스가 위대한 역사가인 이유는 특정한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고 비교적 제 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역사를 기록했다는 점입니다.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전해 들은 것은 전해 들었다 말합니다.'나는 들은대로 전할 의무는 있지만, 그것을 다 믿을 의무는 없다'.행여 자신의 판단을 기록할 때에는 다른 주장과 분리하여 '나는 이렇게 판단한다'며 그것을 믿고 안믿고는 모두 독자의 판단에 맡깁니다.역사 학자로서 매우 바람직한 자세이지요. 이러니 키케로가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 부를만 합니다.페르시아 제국의 아케메데스 왕조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침공전에 뒤쪽이 찜찜하여 동유럽 흑해 연안에 스키타이족을 먼저 눌러 놓으려고 합니다.참고로 다리우스 1세는 유명한스파르타의 몸짱왕 레오디나스가 나오는 '영화 300'의 못생긴 페르시아 왕인 크세르크세스1세의 아번님(무너) 되시겠습니다.ㅋ스키타이 정벌과정을 헤로도토스가 고스란히 기록하는데요.단순한 전쟁만이 아닌 지리와 인종..스키타이의 역사와 풍습까지 기록되어 있어 제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참 역사는 공시적으로 보면 더 재미납니다. 당시 중국은 춘추전국시대...공자(BC 551~479)께서 세상을 주유하시며 유세하던 시대쯤이고,우리로 치면 고조선 41대 단군 음차에서 44대 단군 구물의 시대가 되겠습니다.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족에 대해 제 4편 1~144장까지 매우 비중있게 다룹니다.우선 스키타이족이 주장하는 그들의 탄생 신화는 제우스와 흑해와 연결된 아조프 해신의 딸의 후손으로... 그리스인들은 헤라클라스와 반인반뱀녀의 후손으로...반면에 해로도로스는 역사학자 답게 북쪽의 맛사게타이족의 압박으로 남하한 부족으로 보지요.이에 대하여 해로도토스는 서사시인 아리스테아스가 언급한 북쪽 부족들에 대해 나열식으로 설명합니다.이들이 모두 다 스키타이족는 아니지만 스키타이와 연관된 부족들을 살펴보면 그리스계 스키타이인 칼립파다이족, 판매용 곡물을 재배하는 농경 스키타이인 보뤼스테네스족, 씨도 안뿌리고 쟁기질도 안하는 동쪽 게르로스강 유목 스키타이, 특히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튓사케타이족과 이위르카이족(이들은 뒤에 언급할 왕령 스키타이족에 게기다 쫒겨옴), 부족들의 분쟁을 조정하는 대머리족인 아르깁파이오이족, 남여가 평등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잇세도네스족, 외눈박이 아리마 스포이족, 대기가 깃털(눈발)로 뒤덮인 곳에 사는 엘리스족, 교역전문인 휘페르보레이오이족 등등....그중에 으뜸은 가장 고귀하고 규모가 큰 스키타이 부족으로 아조프해 지류인 돈강에 거주하는 왕령 스키타이족입니다.그들은 주위의 다른 부족들을 모두 노예로 여기며 황금으로 도배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저는 왕령 스키타이족이 스키타이 부족 연맹체의 수장이란 의미로 받아들입니다.믿거나 말거나 식인을 하는 안드로 파고이족과 대머리족도 있다고 하니....이상 약간 신빙성이 떨어지는 서사시인 아리스테아스의 흑해와 카스피해, 파미르 고원에 산개해 있던 북쪽 유목기마 민족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다음은 미스터 객관주의 해로도토스가 설명하는 북방 기마 민족인 스키타이 아홉 부족에 대해 정리하겠습니다.저는 이 아홉 부족이 한단고기의 삼성기 하편에 나오는 나반과 어만 사이의 아리사타(isata)의 후손인 환인국의 구환(九桓)의 무리로 굳게 믿고 싶습니다.ㅎㅎ12.역사- 헤로도토스(BC484~425)오늘은 어제에 이어 해로도토스의 스키타이 아홉부족을 소개할 시간이었지만, 마침 어제 어쩌면 제가 결말 부분에서 언급할 결론 부분에 대해 의미있는 기사가 나와 미리 살짝 간만 보고 가겠습니다.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가 대표로 있는 국내 게놈 해독기업 '클리노믹스'가 현대인과 고대인 게놈 273개 분석해 도출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우리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라 수만 년 동안 혼혈로 진화한 '다인족(ethnic group) 민족'이라는 연합뉴스 보도입니다.약100만년 부터 호모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확산했지요.일단 근동,소아시아로 이동한 뒤 갈라져, 빙하기가 되면 기온이 따듯하고 해수면이 낮아진 해안로를 따라 동남아 순다랜드를 통해 한반도로 올라옵니다.간빙기에는 해수면이 높아진 해안로 대신 우랄과 알타이 산맥 사이의 초원길이 열려 동진해 도착하지요.그뒤를 이어 호모사피엔스도 기후변화에 따라 두경로를 따라 순차적으로 이동해 옵니다.기사에 의하면 순다랜드를 거쳐 한반도에 먼저 도착한 아슐리안 석기를 쓰는 호모에렉투스를 선남방계(북아시아 지역) 인족으로 보는 것 같군요.학계에서는 이들을 고아시아인으로도 부릅니다. 이윽고 약 4천년 전 북쪽 초원길을 통해 청동기·철기인...(북방기마유목민,스키타이족,환웅의 배달국으로 추정)이 동북아시아에 도착했음에도 선남방계와 그뒤에 이동한 후남방계가 3:7 정도 비율로 혼혈되었다며 ,오직 '수만 년 동안 동북아 인구 펌프 역할을 했던 동남아시아 순다랜드에서 여러 차례 올라온 사람들과 그 자손들의 복잡한 혼혈'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립니다.이 결론은그동안 유력설이었던 '중앙아시아 쪽에서 동쪽으로 대륙을 건너온 북방계와 남쪽에서 온 중국계 남방계가 혼합해 한국인이 형성됐다'는 학설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하는군요.제 의견은 이 결론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는 생각입니다.그들이 북방으로 왔던 남방으로 왔던 그들의 출발점은 소아시아였으며 같은 유전자를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서울 오는데 중부 고속도로로...아니면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한 것처럼요.그러니 유전자 게놈은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모두 주시안이 우시안인 남방계 채집인의 분기이기 때문이죠.또 다른 하나는 절대적인 인구수입니다.비교적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생존환경의 채집형 남방계는 그들의 이동경로의 환경이 아무래도 척박하고 험난한 북방계 수렵형 유목 기마 민족의 환경보다 나아 절대적 인구수의 우위를 점합니다.동부 유럽과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를 유린한 스키타이와 관련된 유적들을 살펴보면 주로 방어시설인 성과 해자를 쌓은 정착민...원시 도시인들은 그 인수가 월등히 많았았음에도 노마드인 스키타이의 정복과 약탈을 피할 수 없었지요.수렵과 약탈 유전자를 가진 북방 유목민족은 적은 수로 다수의 정착민인 남방계를 지배하는 지배층을 형성합니다.따라서 다수의 남방계가 포함된 표본조사는 당연히 남방계 우위의 결과를 내겠지요.마지막으로 이번 연구는 158명의 현대인과 115개의 고대인 게놈(genome·유전체)을 분석했다고 하는데....그 고대인이 홀라세 이전인 BC1 만 1,000여년 이전의 표본이라면 이 연구 결과는 맞는 것입니다.하지만 그 이후라면 간빙기로 접어든 이시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북방계가 우랄과 알타이 산맥 사이...지금의 카자흐스탄의 터진 초원길로 동진해 왔기 때문에 결과는 달라 질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북방계 혼혈없이 다양한 남방계만의 혼혈 후손이라는 결론은 성급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이 문제는 더 다양한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연구해서 판단할 문제인것 같습니다.이부분에 대해서는 결말 부분에 다른 유전자 조사 등을 인용하여 자세히 다뤄 보겠습니다.약속한대로 내일은 삼성기에서 언급한 구환의 무리로 추정되는 아홉 스키타이족들의 다양한 풍속과 특질을 해로도토스를 빌어 정리해보겠습니다.13.역사- 해로도토스 /스키타이족의 이해와 풍습*청소년과 심장이 약한 분들은 마지막 부분을 읽지 말아주시고, 강한 사람들은 원본책을 읽어보세요.스키타이의 아홉부족을 소개하기 이전에 그들 부족의 공통된 풍속을 잠시 살펴봅니다.당시 흑해와 가스피해 연안에 산개해 있던 초원지대의 여러 부족들은 스키타이족을 제외하고 지혜롭지 않은 무지한 부족들로 알려졌습니다.해로도토스는 스키타이족을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을 능가하고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그들이 따라 잡히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은 따라 잡지 못한다'라며 아나카르시스 즉 현인으로 기록했지요.이말은 당시 다리우스 1세가 페르시아 정예병 70만명과 배 600척을 동원하여 흑해에 진입 스키타이족을 정벌 할때 스키타이족의 전략에서 비롯된 말입니다.페르시아 대군을 눈앞에 둔 스키타이 부족 연합군은 하루 정도 걸리는 거리에 진을 치고 기다리다 페르시아군이 진군하면 다시 하루정도 거리의 지역으로 후퇴 하지요.물론 우물과 식량...목초지를 모두 초토화 시켜 페르시아군을 곧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후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침입한 외적들에게 사용한 청야전술(방어적 초토전술)의 시발점인것 같습니다.다리우스는 스키타이에 패하기 보다는 그들을 찾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 하지요.드디어 그들은 보이지도 않은 허상만 쫓아 다니다 지치게 되자 기마술로 인한 뛰어난 기동력과 초원지대의 지리에 익숙한 장점을 살려 적을 초원 깊숙한 곳으로 유인한 뒤 스키타이의 대반격이 시작됩니다.일종의 치고 빠지는 전술....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에 나오는 도망가면서 마상에서 상체를 180도 돌려 활을 쏘는 파르티안 사법도 구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이리하여 저 유명한 다리우스 1세의 페르시아 대군은 속수무책..단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다가 결국 패배하여 되돌아 갑니다.해로도토스는 스키타이족이 도시도 없고 성벽도 없으며, 집을 수레에 싣고 말은 타고 활쏘기에 능한 불패의 부족으로 기록합니다.전형적인 북방 기마 민족의 전형이죠.특히 청동 가마솥을 말 등뒤에 싣고 다니며 취식을 했는데,자칭 흉노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신라의 상형 토기에 등장하는 동북이 바로 그것입니다.특히 장작더미 모양의 신전을 세웠는데, 사각형의 단으로 3면은 가파르고,한 면만 오르게 되어 있는데 그너비가 3 스타디온(옛 단위라 얼마나 넓은지 잘모름)...높이는 그보다 작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마치 북만주의 요하문명(BC4,700년)또는 홍산 문화지에서 발견된 제단형 피라미드를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고구려 20대 장수왕릉은 그 축소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암튼 수레로 150대 분의 장작을 제단위에 쌓아 놓고 단검을 꽂아 놓은 다음 포로 100명당 한명씩 참수한 다음 죽어서도 복수 하지 말라고 오른팔을 잘라 단아래로 던졌다고 합니다.ㅠㅠ 이러한 풍속을 가진 스키타이의 조상 중 일부는 동진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아즈텍 문명의 태양의 신전에서도 인신공양이 그대로 재현됩니다.전쟁은 맨 처음 죽인 적의 피를 마시고 수급을 왕께 바쳐야 전리품을 배분받을 수 있으며, 적의 머리가죽 벗겨 손수건처럼 사용했다고 하니 이런 풍습은 베링해협를 건너간 아메리카 인디언 풍속에서도 이어지지요.지금 기준으로 보면 무자비하고 잔인하기가 이를데 없습니다.문명화 이전의 원초적 폭력이 남무했을 당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좀 유난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이러니 주위의 모든 민족이 두려워 할수 밖에요. 특히 맹약을 신성시 했는데 항아리에 술을 붓고 단지하여 피을 섞은 다음 활,칼,도끼 등을 담그고 나눠마셨다고 합니다.칭기스칸 테무친과 쟈무카의 형제결의,유비 관우,장비(모두 북방기마민족)의 도원결의, 오늘날 동네 발좀 떠는 형님들의 결의가 바로 스키타이의 맹약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우겨봅니다.ㅎ왕이 죽으면 미이라 상태로 만들어 예하 부족을 순회하다 게르로스 지역(오늘날 흑해 북안)에 매장을 하게 되는데,(스키타이 황금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되고 있음...)순장을 하고, 동도 아니고, 은도 아닌 오직 황금으로 도배를 한다음....경쟁적으로 거대한 봉분을 쌓아 올렸다고 합니다. 오늘날 고구려와 신라..백제에서 발견된 왕릉들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사후 1년뒤 차마 여기서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너무 잔인...ㅠㅠ) 순종 스키타이 청년들과 말을 미이라로 만들어 왕릉을 호위하게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이러한 장례 제의식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만 순장제도는 신라 지증왕때까지 남아 있었죠. 그 이전에도 순장제도가 등장하는데 가야 시절...김훈 선생의 '현의 노래'를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다음은 외부 문화에 배타적인 스키타이족의 습성과 원더우먼 탄생에 기여한 것으로 보이는 여인국 아마조네스와 스키타이 족과의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로 잠시 쉬어가겠습니다.14.스키타이족 삼성기(三聖記) 하편에는 '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 한다.처음 아만과 만난 곳은 아이사타(ista,아사달)라 한다.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구환(九桓) 무리는 그의 후손이다.(~ 則九桓之族皆基後也).고대 중국의 많은 문헌에서 언급된 東夷,九夷,九黎(구려)등이 九桓과 같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아이사타(ista), 즉 아사달...광명,아침의 땅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오늘날 이스탄불,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심지어 아프가니스탄이 강역이 있는 흑해와 카스피해, 아랄해 그리고 텐산 산맥까지 흩어져 살았던 구환의 무리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지네요.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제우스와 아조프해신의 딸 보뤼스테네스사이에서 스키타이족 탄생에 관한 신화를 잠시 언급했었지요.어느 민족이나 다 마찬가지로 그 시원은 신화로부터 시작합니다.이제 신화의 시대를 넘어 해로도토스가 기록한 스키타이 아홉부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1)타우로이족난파선이나 바다에서 사로 잡은 헬라스인(그리스인)을 처녀신인 아르테미스 여신에게,인신공양을 합니다.적을 사로 잡으면 머리를 베어 굴뚝위에 메달아 놓습니다.그들은 노략질과 약탈한 전리품으로 먹고 산 모양입니다.2)아카퇴르소이족스키타이 여러 부족 중 가장 세련된 부족으로 대개 황금장신구로 멋을 내고 아내를 공유합니다.모두 가족이고 친족이라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일 없이 모두 화목하게 살아갑니다.3)네로우이족뱀떼 출몰 때문에 나라를 버리고 잠시 이웃 부족인 부디노이족에 얹혀 삽니다.네로우이족은 모두 마법사인지 일념에 한번씩 늑대로 변한다고 하는데..해로도토스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요..ㅎ4)안드로파고이족스키타이 부족 중 가장 야만적인 삶은 살며,정의나 법에 관한 개념도 없고 스키타이족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유목민으로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스키타이 부족 중 유일하게 인육을 먹는다고 하네요.후덜덜...5)멜랑클라이노이족모두 검은 옷을 입고 다녀서 부족이름도 멜랑크라이...스키타이족 관습을 따릅니다.6)부디노이족인구수가 많은 대부족으로, 눈은 회청색,모발은 붉은 색으로 나무로 지은 도시에 삽니다.이들의 말의 절반은 그리스어이고 반은 스키타이 말을 썼습니다.하지만 부디노이족은 유목민들로 약간의 농사도 짓고 수달과 비버를 사냥하여 외투를 만들고 고환은 자궁병의 약제로 활용했습니다.7)겔노스인부디노이족 강역내에 살며, 나무로 지은 그리스식 신상과 제단 및 신전을 갖춘 그리스 성역이 있습니다.특이할 점은 이 부족은 3년에 한번씩 디오니소스 축제를 열고 모두 광란과 망아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네요.헬라스계인 겔로노스인(그리스인들)이 이주했기 때문입니다.8)사우로마타이족헤라스인이 전설상 호전적인 여인족인 아마조네스족(스키타이인들은 아마조네스족을 오이오르 파타-남자를 죽이는-로 부름)과 싸우다 포로로 잡은 아마조네스족을 3척의 배에 싣고 출항했는데, 선상 반란이 일어나 배안의 그리스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스키타이 영내로 들어와 약탈을 하던 중 몇차례 교전 끝에 그들의 사체에서 그들이 남자가 아닌 여자인것을 말고 용감한 후손을 얻기 위해 스카타이 훈남들로 편성된 부대를 활용하는 미남계를 써서 결국 그들을 복속(그 과정이 얼레리 꼴레이 한 19금)시킵니다. 하지만 여인들에게 설득당한 스키타이족 남자들이 여인들을 따라 바다를 건너 세운 부족이 바로 사우로마타이족이죠.9)왕령 스키타이족마지막을 스키타이족의 의뜸인 왕령스키타이족은 가장 고귀하고 규모가 큰 스키타이 부족으로 아조프해 지류인 돈강에 거주하며,그들은 주위의 다른 부족들을 모두 노예로 여기며 황금으로 도배한 나라에 살았습니다.암튼 느슨한 부족 연맹체였던 왕령 스키타이부족은 다리우스에 맞서 항전을 하려고 부족 연맹체 회의를 소집했는데...멜랑클아이족,게로노스족,부디노이족,며느리국인 사우로마타이족 만 참전을 합니다.그래서 스키타이 연합군을 앞서 설명한 청야전략(방어적초토화전략)을 참전을 포기한 다른 부족의 땅으로 페르시아 대군을 유인하면서 시작합니다.쫌 비겁하긴 하지만 반 강제로 그들을 참전시키는 부수적인 효과를 거둡니다.결과는 스키타이 부족 연합군 승....참! 외부문화에 대한 스키타이의 배타적인 면을 들여다 볼 수있는 에피소드는 오늘날 서양 예술의 탄생이라고 믿고 있는 디오니소스제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내일 소개드리겠습니다.ㅎ15.디오니소스신 제전과 스키타이 -해로도토스의역사논리와 이성 그리고 합리적 사고의 상징인 아폴론의 로고스(Logos)! 출생부터 신들의 사랑과 축복 속에서 태어나 균형,조화,절제,지식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반면에 출생부터 고통스러웠던 디오니소스는 도취와 광란,격정과 광기 그리고 몰입,몰아,무아,망아의 심리와 감정 상태인 파토스 (Pathos)표방합니다.아폴론의 로고스는 학문,디오니소스의 파토스는 예술의 시발점으로 보는데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디오니소스 박코스는 바람둥이 신 제우스와 인간인 세멜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는데,모친이 감전사하자 제우스의 넓적다리로 이식하여 출생했다고 하는 믿기 어려운 탄생 신화를 가지고 있죠.그래서인지 변신과 모방의 신이기도 하지만,인간에게는 포도 재배 기술을 전파하여 술을 발명한 酒神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고 헬렐레 해지는 도취와 격정, 황홀경에 빠집니다.이런 치명적인 유혹 때문에 디오니소스 밀교가 생기기도 했지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주로 풍요를 기원하며 파종을 하는 봄의 사육제나, 추수가 끝나는 가을의 추수 감사제와 같은 대중적 축제로 디오니소스 제전을 즐겼습니다.디오이소스 제전는 주로 장엄한 신화적 주제와 영웅 설화의 비극적 내용을 주제로 한 비극과 익살스러운 토속적인 이야기가 담긴 희극을 7:3의 비율로 공연했지요.아마 생존과 번성을 위해서는 아름답고 행복한 아야기보다,공포스럽고 슬픈 비극적 서사가 더 도움이 된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부정적이고 슬픈 뉴스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뉴스보다 훨씬 많은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그림도 예쁜그림보다 뭔가 우울하고,공포스럽고,괴기스러운 그림이 더 주목 받은 이치와 비슷합니다.암튼 수많은 미술사의 화가들이 이 디오니소스신과 제전을 작품으로 남깁니다.이 디오니소스 박코스!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신,로마에서는 박카스신이라 불리는데. 해로도토스의 기록에 의하면 한방에 비오니소스 박코스신이라고 하는군요. 디오니소스신과 스키타이족과 관련하여 한꼭지의 슬픈 서사가 나옵니다.외국의 관습,특히 그리스의 관습을 받아들이기 몸시 꺼려 했는데 왕족인 아나카르시스가 그리스 축제를 재현했다는 이유로 아우인 스키타이왕 사울리오스에게 살해 당하기도 했습니다.스키타이 왕 아리아페에테스는 이스트리아 출신인 그리스여인 결혼하여 아들인 스퀼레스를 낳습니다.어머니로부터 그리스 말과 글을 배우고 자란 스퀼레스가 왕위에 오르자 그리스식 생할과 풍습에 매료되어 군대를 이끌고 스리스인 부족이 사는 보뤼스테네스족 도시로 정기적으로 원행을 합니다. 군대는 교외에 주둔시키고 본인만 성안으로 시종과 호위도 없이 그리스인 의복으로 갈아입고 한달정도 잠행을 한 모양입니다.심지어 저택도 구입하고...그리스 여인과 결혼까지 하지요. 대 스키타이 왕을 이렇게 중독 시킨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그가 디오니소스 박코스신을 모시는 秘儀, 즉 밀교에 빠졌기 때문입니다.해로도토스에 의하면 스키타이족들은 이 그리스인들의 박코스 축제를 혐오했다고 하네요.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신(술에 과도하게 취하면 개되는 것은 예나지금이나..ㅋㅋ) 과 그들이 버리는 광란의 축제...제정신을 가졌다면 당근 싫어 했겠지요.ㅎㅎ 드디어 드라마에서 처럼 밀고자가 등장합니다. '스키타이족이여! 그대들은 우리가 박코스 신을 숭배한다고 우리를 비웃고 있소.그런데 그대들의 왕도 그 신에게 미쳐있소.이말이 믿기 어려우면 내가 그 장면을 보여 주겠소' 나머지는 굳이 설명 안해도...ㅠㅠ 이윽고 본국으로 송환된 스퀼레스는 반란으로 새로 왕이 된 동생에게 쫓겨 트라케로 도망갑니다.스키타이족은 스퀼레스을 잡으려고 트라케와 전쟁까지 합니다. 결국 스퀼레스는 그동안 달고 다니던 머리와 슬픈 이별...ㅠㅠ 디오니소스가 뭐라고...그 깟 박카스(박카스가 왜 여기서 나와...ㅋㅋ)가 뭐라고...ㅠㅠ암튼 이런 풍습을 지닌 스키타이족들의 조상이 동진하여 그 후손들이한반도에 세운 나라들인 고구려 동맹,동예의 무천,부여의 영고 등 추수 감사제에 외제 술신인 디오니소스 박코스 대신 순수 토종인 하늘신과 조상들을 향해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제사를 모셨다는 슬픈 전설이 있었습니다.ㅎ 다음은 역사 이전의 시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구전되는 신화와 전설이 어떤 과정으로 탄생되는지....조지 프레이져 경의 명저 '황금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20-06-16
최후의 문명[2]-한국미술의 미래를 향한 좌충우돌의 여정!
5-2.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스키타이 유적 발굴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헤르만 파르칭거! 세계에서 몇 안되는 선사시대 고고학 전문가입니다.오직 유물과 유적으로만 말을 하죠.해석이나 연결이 안되는 부분은 그대로 잘 모르겠다고 인정합니다.어쩌면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일지도 모르는데,천하의 파르칭거라도 어찌 다 알겠습니까?자 그러면...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의 스키타이족이 어디서 왔는지...파르칭거가 안내하는 선사시대로 들어가 봅니다.그러니까 10년도 아니고,100년도 아니고,1,000년도 아닌 무려 700만년전...아프리카중부 어딘가의 나무위에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라는 인간과 침펜지가 분화 직전의 유인원이 살고 있었습니다.이때 우리 원시뇌에 각인된 원초적 공포인 고소공포증,파충류(뱀...나무위에 올라와 인류의 조상을 괴롭히던...),거미와 같은 곤충류(어쩌면 송충이도..ㅎ)등이 형성 되었을 것입니다.이윽고 390~320만년전 기후변화로 울창했던 숲이 사라지고 건조한 사바나 초원으로 변하자, 호미니드는 더이상 더이상 올라갈 나무가 없어지지요.그들은 바로 지상으로 내려와 직립보행하기로 큰 결심을 합니다.에디오피아에서 침펜지 보다 약간 큰 루시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그로부터 100만년이지난 270만년전 동아프리카 올두바이 협곡에서 올도안 석기(자갈석기...자갈을 바위에 세게 던지면 여러분들도 만들 수 있음..)...돌맹이를 의식적으로 깨뜨려 목적있는 도구로 만든...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등장하지요.드디어 유인원과 인간이 분화되는 결정적 순간이 온 것입니다.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채식주의자 비건이었습니다.하지만 200만년전 좀더 진화한 인류는 짐승의 사체에서 썩은 고기를 도구를 활용하여 발라먹어 단백질을 섭취합니다.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 다니는 호모 하빌리스!!!잘 아시다시피 단백질은 근육과 뇌 형성에 필요한 영양소입니다. 한번 고기맛을 맛본 인류는 드디어 썩은 고기 말고...싱싱한 고기를 찾기 시작하지요.바로 사냥을 본업으로 하는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합니다.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단백질 섭취는 근육과 체격...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뇌를 비약적으로 발달 시킵니다.게다가 불까지 활용하게 됩니다. 드디어 인류는 따뜻한 아프리카를 떠나 멀리 추운 유럽지방까지 장거리 여행을 할 준비가 된 것이지요.혹독한 빙하기에도 생존하고, 열대 우림을 통과하여 우여와 곡절 끝에 한국에도 왔어요.ㅎ다음엔 선사시대 인류의 이동과 식생에 대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빙기와 간빙기와 같은 기후변화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겠습니다.그리고 호모 에렉투스의 유럽과 서아시아 정착과 네안데르탈인과의 관계...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동굴에 그려논 엄청난 분량의 동굴벽화들...드디어 미술이야기가 시작됩니다.이 구석기부터 신석기 시대 주인공들의 한 지류가 후에 스키타이족이 될지도 모릅니다.ㅎ5-3.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잃어버린고대문명-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대빙하기와 지질연대인 플라이스토세가 거의 끝날 무렵인 1만2,800년전 지구에 불청객이 찾아옵니다.그린란드 히아와타 지역에 소행성급 운석이 충돌하지요.히아와타 빙하 밑에 서울 크기만한 대형 충돌구가 발견된 것입니다.간빙기를 눈앞에 둔 지구는 충돌로 인한 먼지와 재..그리고 수증기로 태양빛을 가려 다시 빙하기가 강화되는 신(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기를 맞습니다.신생대 3기 플라이 스토세는 180만년 전부터 1만1,800년 사이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인류의 구석기 시대가 관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학자들은 70만년전~12만년전 까지를 전기 구석기 시대,12만년전 부터~3만5,000년 까지를 중기 구석기 시대,3만5,000년 부터 1만 1,800년을 후기 구석기 시대로 보고 있지요.플라이스토세 다음이 간빙기인 홀로세인데, 그 홀로세가 시작되기 약 1,000년 전쯤에 소행성이 충돌되었다는 것입니다.다시 혹독한 추위가 엄습해서 지구표면에 갑자기 엄청난 빙하가 쌓입니다.물론 충돌 자체도 지구적 대사건이었지만,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 빙하가 녹으면서 지구상에는 대이변이 속출합니다.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지구상의 많은 대륙이 사라지거나 열도로 변하고(인도네시아,필리핀,일본도...) 이때 구석기인들이 건넜던 아메리카 대륙과의 연결 통로인 베링 육교가 침수되지요.이때의 상황은 전세계 각 민족의 신화와 전설...그리고 고문서에 고스란히 담겨있으며,특히 수메르와 잉카 고대 달력은 정확히 1만1,652~3년을 특정합니다.빙하기는 인류의 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발생 원인에 대해 잠시 살펴봅니다.지구 자전축이 주기적으로 변해 생긴다는 설이 있지요.(극소수설이긴 하지만 싸이의 강남스타일 때문에 지구 자전축이 기울었다는 썰도 있습니다.ㅋㅋ) 또한 태양의 복사열과 관련된 설로, 간빙기가 되어 기온이 올라가면 해수면이 높아지게 되고 육지 면적이 줄어들게 됩니다.(우리는 대륙을 도모하면 되지만....일본은 어쩔...ㅠㅠ)그러면 지구의 복사열이 적어지고 지구는 다시 추워지기 시작하여 바닷물이 빙하로 변합니다.그러면 해수면이 다시 낮아져 사라진 육지도 다시 나타나고 열도도 랜드가 되는 것이죠. 아이러니 하게도 인류는 이 빙하기에 대규모 이동을 합니다.날씨가 추워지고 건조해지니...식량이 부족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겠지요.마침 육지가 드러난 해안가를 따라 해뜨는 동방을 향해 떠납니다.1만1,800년전에 간빙기가 시작되어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북극 빙하가 녹아 북극곰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 것을 보니 확실히 간빙기인 것은 맞습니다.특히 예전과 달리 도시에서 내뿜는 복사열이 많아 빙하기 주기가 빨라 질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하지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빙하기가 오려면 아주 멀었고요.설령 빙하기가 오더라도 연평균 6~10도 기온이 낮아지는 수준이지 재난 영화속의 그런 추위는 아닙니다.자랑스런 우리 조상인 호모에렉투스,네안데르탈인,호모사피엔스도 그 빙하기에도 살아 남았으니까요.잠시 제가 삼천포로 빠졌었군요. 다시 아프리카 호모에렉투스로 돌아와서...빙하기가 오고...울창한 숲이 사바나 초원으로 변하자 그동안 고기먹고 체력을 비축한 호모에렉투스....드디어 정든 아프리카를 떠나 먹이를 찾아 북진합니다.이윽고 북아프리카인 이집트에 도착하자 좌익과 우익으로 갈서게 됩니다.ㅋㅋ 국내 미술해부학 최고 권위자 조용진 교수님은 선천적으로 주시야가 좌시안인 사람은 좌측으로...주시야가 우시안인 사람은 우측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합니다.두눈을 부릎뜬채 오른손을 쭈욱 내밀어 10여m거리의 특정한 물건을 겨냥해 봅니다.그리고 왼쪽 눈을 감아도(오른쪽 눈을 감으면 핀트가 나감) 그대로 있으면 주시야가 우시안.... 그 반대면 죄시안이죠.각자 해보시고 댓글로 그 결과를 달아 주세요. 대부분 우시안 일 것입니다.우리는 우익 호모에렉투스...사피엔스의 후손입니다.ㅋㅋ여하튼 진행 방향으로부터 좌측으로 이동한 일부 좌시안들은 지금의 지중해 남단 해안가를 따라 이동하다 당시에 육지가 된 이베리아 반도를 건너 유럽에 진입합니다. 우시안들은 훗날 비옥한 초승달 지역으로 알려진 소아시아 근동으로 이동하지요.이들 중 좌시안을 가진 일부는 발칸반도,이탈리아,남프랑스 해변을 따라 산개됩니다.바로 빙하기에 동굴속에 거주하며 주로 사냥을 하며 흔적을 남긴 동굴벽화의 주인공들이죠.미술 해부학에서는 좌-우 시안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좌시안을 관장하는 우측 뇌는 동작과 거리..그리고 공간감을 관장하기 때문에 수렵에 특화된 눈이라고 해석합니다.아무래도 척박한 환경속에서 한정된 식량 쟁취와 생존를 위해 살아움직이는 들소나 사슴을 사냥하려면 원근법과 공간감에 익숙한 눈을 가지도록 유전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전형적인 싸움군,약탈자 ,정복자로 진화 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 결과 이 좌시안들의 미술이 역동적이고..공간감, 특히 원근법과 명암 표현에 능합니다.남유럽의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를 보면 이미 원근법이 그 당시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죠.미술사에서는 원근법을 르네상스 초기의 브르넬레스키가 원리를 발견했다고 하지만,이전 암흑기 천년 동안 기독교 이콘화는 기독교의 탄생지이자, 우시안들의 정착지인 소아시아에서 왔기 때문에 단면적이고 개념적인 것과 대비해서그런 것이지 사실은 원근법의 재발견이 맞습니다.그렇다면 우측으로 따뜻한 열대 우림의 해안가 따라 이동한 우시안의 우익 인류는 어떨까요? 꽉 막힌 열대림은 우신안들의 시각을 가로 막아 상대적으로 촉각,청각,후각에 예민하게 진화 됩니다.이들의 미술은 눈에 뵈는게 근거리 것 밖에 없어 원근과 명암없이 단면적이 개념적이지만 굉장히 디테일합니다.우리 문인화나 초상화, 그리고 민화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심지어 원근법과 하나의 소실점도 개무시하는 역원근법...다시점도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세잔이 울고갈 정도....)또한 채집할 식량들이 지천에 널려 있어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이 순둥이들로 진화하게 되지요.이들은 순차적으로 메소포타미아...인도...등지에 정주하지만, 인구가 계속적으로 늘어나자다시 이동을 시작합니다.동남아 순다랜드에서 분화하여 일부는 호주로..나머지는 남중국을 거쳐 서해를 걸어서 한반도와 육지화된 일본을 거쳐 베링육교를 지나 아메리카로 진입하지요.문제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기상 대이변...1만1,800~1만1,650여년 사이에 해수면이 차올라 더이상 도미하지 못하고...한반도와 만주등에 꼼짝없이 갇히게 됩니다.아프리카 호모에렉투스가 가지고 다니던 전기 구석기 시대의 아슐리안 석기가 임진강변인 연천 전곡리에서 발견된 이유입니다.적어도 우리 조상은 70만년~12만년 전에 한반도에 도착했다는 증거가 되죠.이제 반만년..5,000년 역사는 식민사관을 만든일본에게 되돌려 줘야겠습니다.ㅎ5-4.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잃어버린고대문명-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호모사피엔스- 유발 하라리호모 에렉투스는 올도안 석기로 200만년~150만년을 아프리카에서 버티다,150만년 전후로 아슐리안 주먹도끼로 무장한 채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됩니다.자바원인과 베이징 원인이 바로 그들이죠.한반도에는 유골이 발굴된 적이 없고 아슐리안 석기만...(국제 특송으로 온것은 아닐테고...ㅠㅠ) 특히 약 50만년 전에는 이들중 좌시안의 호모에렉투스가 알프스 이북 중부유럽에 나타납니다.바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인데요.당시 유럽은 엘스터 빙하기로 매우 추웠습니다.이들은 타고난 사냥꾼으로 180cm~250cm의 창을 왼발을 앞으로 두고(왼발을 먼저 내딪는 것은 좌시안들의 특징...왼발을 앞에 두는 그리스 동상들...미군의 행군시 왼발,외발-your left..your left...,특히 문자도 왼쪽부터 시작...) 몸통의 회전력을 극대화 시켜 창을 70m나 날려 사냥을 했습니다.지금의 우리보다 근육이 발달했으며 공간지각능력(원근법,공간,명암법 등이 잘 발현된 서양화) 월등히 뛰어났다고 보면 되겠습니다.이러한 사냥 능력은 당시 발견된 유골에는 돌칼로 베인 흔적이 남아 있어 전쟁과 약탈에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학자들은 빌칭 슬레벤에서 출토된 규칙적 선이 그어진 코끼리 정강이뼈는 인류 최초의 미술작품으로 추정합니다.중기 구석기시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 부터 분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은 43만년 전부터 4만2천년까지 북 아프리카와 유럽 전역,근동 및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합니다.북아프리카에서 좌측으로 분기되어 지중해 남안을 따라 유럽에 진입한 인류의 후손으로 보이네요. 혹독한 빙하기에도 생존했으며 다부진 체격에 얼굴이 길고,상체에 비해 하체가 숏 다리(그래서 말을 탔나?ㅎㅎ)이며, 저처럼 눈썹 윗부분이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특징이 있지요.특히 코가 크고 긴데....추운 빙하기에 폐에 공기가 닿기 전에 약간 데워서 보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 한것으로 보입니다.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코큰이가 있는지..ㅎㅎ 영국의 스완즈컴 원인과 바덴뷔르템베르크 원인은 후기 호모에렉투스임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둘이 꽁냥꽁냥 했든지,아니면 에렉투스가 진화한 것으로 봅니다.네안데르탈인은 전형적인 사냥 전문가로 메머드,털 코뿔소를 집단 사냥하며 살았는데 부상당한 흔적이 있는 유골을 보아 그들의 삶도 녹녹치 않은것 같습니다.특히 사후 세계를 믿었는지 최초로 죽음을 의식한 장례를 치릅니다.이쯤에서 나와야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유발 하라리의 호모사피엔스입니다.네안데르탈인은 비록 멸종했지만 그들의 유전자는 현생인류에도 남아있지요.유전자의 약 1.2~2.1%가 섞여있어,학자들은 호모사피엔스 종의 편차내에 있다고 봅니다.특히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은 아프리카 게놈보다...유럽 아시아 게놈에 가깝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장황하게 좌시안을 가진 유럽과 서아시아,중앙아시아의 선사시대 인류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우리 민족을 구성하는 선조들 중 다수는 우시안을 가지고 따듯한 해안가를 따라 먼저 한반도에 도착했지만....(평화를 사랑하는...),먼 훗날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초원길을 통해 한반도에 도착하는 북방 기마민족의 선조들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구요.호모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사냥과 끈질긴 생존 본능이 그대로 유전된 호모사피엔스의 한 지류가 스키타이족으로 진화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다음은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와 총균쇠,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에 나오는 호모사피엔스가 근동의 비옥한 초승달지역과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인더스강 등지에서의 정착과 흑해,카스피해 연안의 스키타이족과의 관계에 대해서 풀어보겠습니다.5-5.호모사피엔스- 유발 하라리/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잃어버린고대문명-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유발하라리는 원래 '중세전쟁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끝은 서로 통해 다양한 영역을 넘나 들며 지적 유희를 즐기고 있지요.참고로 중세 십자군 전쟁에서의 특수작전만을 그린 그의 초기 작 '대담한 작전'과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곁드려 읽으면 더 재미납니다.유발 하라리는 다른 인류학자들과 약간 결이 다른 주장을 하면서 호모 사피엔스를 시작하는데요.바로 인류는 순차적인 진화를 한 것이 아니라....200만년전부터 1만년전까지 지구상에는 다양한 종의 인류가 살았다고 보더군요.마치 오랑우탄,침펜지,고릴라,개코원숭이 등이 지금도 공존하듯이 말입니다.네안데르탈인,호모에렉투스,호모사피엔스 등이 공존하다 다른 종들은 다 멸종하고 사피엔스만 살아남은 셈이죠.호모사피엔스의 흔적은 25만년전~15만년전 사이에 호모에렉투스가 떠난 아프리카 남부와 동부에서 유골이 발굴됩니다.해부학적 특징으로 불을 활용하여 음식을 익혀먹었기 때문에 치아와 턱이 작아지고 뇌크기는 현대인 수준이었는데, 호모에렉투스의 이동경로를 따라 7만년 전에 아라비아 반도로 나타나더니, 이후 유라시아 전 대륙으로 산개됩니다.믿고 싶지 않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도착하면 토착 인류는 거의 몰살합니다.바로 언어를 통한 사회적 기능 (의사소통,교역)과 생존 기술의 발달...그리고 미적 감각을 가진 심미안 때문에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에서 폭력과 전쟁,그리고 대량 학살을 하며 인종 청소를 한 셈입니다.이른바 언어와 미술과 같은 상징체계로 지식과 경험의 축적함으로써 생존 정보의 교류와 전파가 가능했기 때문에 막강한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죠.이런 호모 사피엔스 중 좌시안을 가진 약 7만 5,000년 전에 근동 아시아를 거쳐 아랄해,카스피해 너머 중앙아시아 초원지대까지 진출합니다.나머지는 우시안은 아프리카와 환경이 비슷한 해안로를 따라 이란,인도,순다랜드,일부는 호주...남중국, 한반도,배링 육교, 아메리카로 넘어 가지요.중국 남부는 5만년 전 도착했으니..한반도에는 늦어도 4만년 전에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학자들은 후기 구석기 시대를 3만5,000년 전부터 ~홀로세 시작 전후인 1만년까지를 보기 때문에 한반도에 나타난 사피엔스는 후기 구석기시대를 주도한 것으로 보이네요. 얼마전 임진강변에 있는 구석기 유적지인 주월리 유적은 5만년 전이라고 하니 얼추 들어 맞습니다.이 우시안의 사피엔스는 비교적 수렵과 채집 환경이 풍부한 지역을 통과해서 별다른 경쟁 없이올라왔기 때문에 유럽과 중앙 아시아로 진출한 사피엔스에 비해서 성정이 순했을 것으로 보입니다.오늘날 우리 한민족을 형성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사피엔스는 근동(소아시아,지금의 중동,서아시아)에서 좌시안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우시안은 인도와 순다 랜드로 향하는 분기를 이룬 후 먼 훗날 순차적으로 한반도에 도착하여 운명적 해후를 합니다.다시 동유럽과 중앙 아시아로 진출한 사피엔스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사피엔스의 진출은 앞서 언급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 관계가 있는데요. 이부분에서 파르칭거와 하라리는 견해를 달리 합니다.파르칭거에 의하면 약 12만 5,000년 전 간빙기가 도래하고 유럽과 중앙아시아는 극도로 건조해져 전 유럽에서 나무가 사라지자 환경이 바뀌면 행동양식을 바꿔 적응하는 사피엔스와 달리 그런 능력이 없는 약 4만년전에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한다는 주장입니다.반면에 하라리는 7만 5,000년전 지중해 북부까지 진출했으나 네안데르탈인이 저항,기후,병균등으로 이주에 실패하고, 다시 7만년전 앞에 설명된 인지혁명을 바탕으로 재도전하여 유럽을 장악한다고 하지요.이런 협력과 유대 및 연대의 가능은 개인별로 힘센 네안데르탈인을 이기기에 충분합니다.소규모 씨족사회을 구성했던 네안데르탈인은 대규모 집단으로 연대한 사피엔스을 당해낼 수 없었겠지요.다음엔 후기 구석기 시대를 주도하고 인지혁명의 핵심인 호모사피엔스의 미술실력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5-6.호모사피엔스- 유발 하라리/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드디어 후기 구석기 시대인 호모사피엔스가 유럽과 동부유럽,그리고 일부는 시베리아로 등장합니다.이미 사냥 전문가로 성장했으며,주로 움막이나 동굴에서 가족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심미안이 생겨 동물 이빨이나 조개껍데기로 목걸이나 펜던트를 만들어 걸고 다녔지요.죽음을 의식하고 사자에 대한 연민으로 희생제물이나 심지어는 인신 공양을 한 흔적들까지 보입니다.특히 그림이나 상징으로 생존과 번성에 필요한 정보를 주고 받고 의사소통을 했습니다.바로 인류 최초미술의 탄생 배경입니다.생존에 절대적 요소였던 동물들이 모델 역할을 했음은 당연했죠. 3만4,000년전부터 1만1,000여년 전까지 지금의 프랑스 남부 유적지를 중심으로 북 스페인,북 이탈리아 등지에서 다양한 동물과 19금의 음문,남근 등이 동굴 벽화나 암벽화에서 발견됩니다.모두 생물학적 번식기제를 인지 했으며 풍요와 번성을 기원한 듯 보입니다.특히 3만년전 쇼베 동굴의 음각화는 역동적이고 원근법 요소가 담긴 동물 스케치들과 '사자인간상'으로 유명한 독일 슈바벤 알프동굴의 '홀렌 슈타인 -슈타델' 등이 이 시기가 예술의 탄생기였음을 알려주지요.이후 남부 프랑스 북부 스페인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 동굴벽화는 표현 수준과 주제의 다양성이 현대 미술 못지 않습니다.그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 비너스'이시기에 제작되어 시베리아를 거쳐 고조선 강역이었던 요하문명지인 극동까지 전파됩니다.라스코와 알타미라의 벽화는 점차 상징이 사라지고 대신 윤곽이 선명하며 원근법이 적용되고, 겹친부분으로 공간감을 표현한 전형적인 북방계 좌시안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미술의 탄생기! 후기 구석기 시대의 호모사피엔스는 무슨 이유로 그림을 그렸을까요?이 질문에 답을 구할 수만 있다면 오늘날 예술...특히 미술이 존중받아, 신성한 성소와 제단과 같은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작가들이 존경받는지에 대한 답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단순한 의문을 풀기 위해 지난 3년간 좌충우돌하며 닥치는대로 관련 자료를 들여다 봤습니다만, 아직 선명한 답은 구하지 못했네요.지금까지의 유력설은 동굴이 숭배의식의 장소였고 미술이 숭배와 제의식의 도구였다는 것입니다.뭔가 2% 부족한 느낌이지요.그래서 어설프지만 우기기 신공으로 저 나름대로 정리한 3만여년전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호모사피엔스가 그림을 그렸는지 라스코 벽화 하나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아래 그림은 들소 사냥중 불행한 사고를 당한 새머리 남자(완전히 새됐어...ㅠㅠ)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입니다.앞서 호모에렉투스는 무게 중심이 앞에 있는 창을 70m을 던져 사냥을 했지요.사피엔스는 이보다 진일보하여 투창 가속기를 활용, 시속1 00km의 속도로 창을 던지는 사냥 전문가였습니다.물론 집단으로 사냥감을 한 곳으로 몰아서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사냥을 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에서 사냥하다 다친 흔적이 발견된 것을 보더라도 사냥은 매우 위험한 일임은 틀림이 없습니다.내장이 흘러내린 것을 보니 들소는 이미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상처를 입어 화가 잔뜩난 들소에게 동료가 당한 모양입니다.이미 사피엔스는 죽음과 사후세계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동료의 영혼이 새가 되어 하늘나라로 날아간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 합니다.어쩌면 일상 중의 하나였으며, 사냥중 발생 할 수도 있는 일을 왜 그렸는지에 주목합니다.사냥에 실패한 동료를 숭배했을 리는 없지요.다만 그 동료의 희생을 기리고 그의 평안한 사후세계를 기원하는 장제의식일 수 는 있겠습니다.하지만 저는 그것을 넘어선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봅니다.바로 생존에 필요한 방어기제...즉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부족민들에게 전파하거나 후손들게 경각심을 심어줄 목적으로 그렸다는 것입니다.이 그림을 본 부족민들이나 후손들은 대를 이어 들소 사냥을 할때는 각별한 주의를 했을 겁니다.이렇듯 미술은 그 태동기부터 인류의 생존과 번성을 위해 숭고한 의무를 다했습니다.역사를 관통해서 현재까지도요.우리가 세상의 모든 작가님들을 존경하는 이유입니다.다음은 이렇게 사피엔스가 유럽과 중앙아시아지역에서 빙하기를 보내고 간빙기를 맞는 1만여년전 전후하여 동유럽의 흑해와 카스피해,남쪽으로 지금의 터기 북부인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에서 난동을 부린 북방계 악동 스키타이에 대한 이야기를 인류 최초의 역사학자 그리스 헤로도토스의 이야기를 빌려 해보겠습니다.그들 중 일부가 동진하여 미리 도착해 있던 남방계와 혼혈하여 우리 조상이 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20-06-16
최후의 문명[1]-한국 미술의 미래를 향한 좌충우돌의 여정!
1. 논어로논어를풀다- #이한우 지음 모든일이 그렇듯이 일은 전혀 엉뚱한데서 시작되지요. 2017년 9월 존경하는 이한우 교장선생님의 '논어등반학교'에 입교하여,천자문 한번도 완독하지 못한 제가 '논어' 필사를 필사적으로 도전하던 중에 발견한 이 한문장이 운명적인 시작으로 다가옵니다.역병이 역설적으로 저에게 준 시간을 확찐자 대신 확든자가 되기 위해 겁도 없이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의 끝을 덜컥 부여 잡고 미증유의 미로속으로 들어가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아직도 출구 찾기가 요원합니다. 논어 자한 13편에는 공자가 구이에 살고 싶다고 하니,어떤 사람이 거기는 겁나 누추한 곳이라고 하자 공자는 군자가 사는 곳이 어찌 누추하겠는가'(子欲居九夷 或曰陋, 如之何 子曰君子居之, 何陋之有?)도대체 아홉 오랑캐가 사는 곳,구이가 어디길래 당대의 지성인 공자가 살고 싶어했을까요?주희는 논어 집주를 통해 좀더 구체적인 힌트를 줍니다.동쪽에 독수리 오형제도 아닌 구형제가 사는 땅에 공자가 가서 살고 싶어했다.그런데 거길 가려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東方之夷有九種. 欲居之者, 亦乘桴浮海之意.)동방의 아홉부족의 오랑캐, 즉 부족 연맹체인 동이족이 사는 곳은 바로 고조선입니다. 주자는 동이족이 사는 곳은 원래 도가 없어 누추하지만 공자가 가면 방유도(邦有道)한다고 해석했지요.중화사상에 쩔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주희의 말대로 라면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의 중원이 방무도(邦無道)한것을 설명하지 못합니다.즉 공자가 판단하건데...도가 있는 고조선에 가서 폼나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로 저는 해석했습니다.그렇다면 공자가 언급한 구이가 동이족...그리고 고조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만 증명하면 되겠군요.그 연결고리는 1911년 윤초 계연수가 삼성기,단군세기,태백일사,북부여기를 한권으로 엮은 한단고기 를 통해 풀어보겠습니다.2. 실증 한단고기 -이일봉 지음공자와 주희가 도가 있는 곳이라고 언급한 동쪽의 독수리 구형제의 나라!... 九夷의 실체에 대해 '한단고기'를 통해 알아봤습니다.우선 한단고기는 위서라는 논란이 있지요. 그부분은 저처럼 필사 수준의 정독을 한 뒤 여러분이 각자 판단 하시면 되겠습니다.선사시대의 역사는 후대에 학자가 전문이나 전언을 집대성 한 것이므로 그 실체의 불분명함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따라서 그 내용과 유적과 유물..그리고 주변국의 역사 뿐만 아니라 과학적 실증 방법,진화 생물학이나 인류학,기후학,문명교류,미술 해부학등 다른 학문들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된다고 봅니다.어째든 저는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나 역사시대인 고구려 건국까지 무려 1900여년 통치했다는 신화수준의 황당한 이야기 보다, 한단고기의 내용이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합니다.백번 양보하더라도 이책이 위서라면 저자는 고대 동북아 역사에 통달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천재성을 보유했음이 틀림없지요.한단고기의 내용은 방대해서 틈 나는대로 가져다 붙이기로 하고 이번에 九夷의 정체를 밝히기로 합니다.고려 공민왕 원중동에 의해 쓰여진'삼성기'하편에 의하면 환인이 세운 환국에서 갈라져 나온 지류의 아홉종족을 의미합니다.중국의 사서인 '사기'의 '삼황본기'에 '....형제 아홉사람이 9주로 나누어 각기 우두머리가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또한 중국정사 조선열국전에 따르면,'東方曰夷. 夷者, 灏也, 言仁而好生, 萬物灏地而出. 故天性柔順, 易爾御, 至有君子ㅗ不死之國焉. 夷有九種,曰哯夷, 于夷, 方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 故孔子欲居九夷也.동방을 '이夷'라 하였다. '이夷'라는 것은 '근본이 되는 뿌리'라는 의미이니, 어질고 자애심이 많아 살생을 꺼려 마치 만물이 뿌리 되는 땅으로부터 솟아나오는 것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천성이 유순하여 법도로서 다스리기 쉬워 군자의 나라(君子國), 또는 죽지 않는 나라(不死國)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 '이夷'에는 아홉 종류이 있으니 견이 우이 방이 황이 백이 적이 현이 풍이 양이 등이다. 때문에 공자는 구이九夷에 머무르고자 하였다.' 이렇듯 고대 중국의 중원에서는 九夷,九黎(구려)라고 부르고 이것은 고구려때까지 이르러 고구려를 구려(九驪)라고 부릅르게 됩니다. 여러 중국 고서에서는 구이를 東夷,숙신(말갈-읍루-여진-만주족),부여,배달,청구,해동,군자국 등으로 모두 동이족의 일원으로 보는 것에 이견이 없습니다.송나라 범엽이 편찬한 후한서에는 '동방을 동이라 하는데,夷는 근본을 말한다.말하기가 인자하며,만물이 생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근본이 땅에서 나온다.때문에 천성이 유순하며,도로써 제어하며,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에 이르렀다.'와 중국 지리서 '산해경' 또한 '군자 나라는 북쪽에 있다'란 기록이 있습니다.더 재미있는 것은 '후한서'의 삼국지 동이전에는 '東夷率皆土著, 憙飮酒歌舞, 或冠弁衣錦, 器用俎豆. 所謂中國失禮, 求之四夷者也'동이는 거의 모두 토착민으로 음주와 가무를 좋아하였으며, 혹은 예복에 관을 쓰고 비단옷을 입으며 생활의 기구로 제기祭器를 사용하였다. '중국에서 예禮를 잃어버리면東夷에게 구하는 것처럼 사방의 夷에게서 이를 구하면 된다'지금까지 공자가 논어에서 도가 있는 곳으로 언급한 九夷...즉 군자국인 東夷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역사의 기록이란 승자의 기록,기록 주체의 입장에서의 기록임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역사 이전의 시대는 당시의 중원보다는 문화의 수준이 한단계 높았던 것은 분명합니다.자! 그러면 고대 중국에서 자기네보다 한수 높았다고 쳐주던 동이족..구이족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문자는 없고 오직 말없는 유적과 유물만 있는 심연의 세계로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다음은 마치 뜬구름 잡는 문자 기록을 넘어서 동이족의 실체로 추정되는 SKYTHAI에 대해 간첩 깐수로 유명한 유라시아 문명교류의 전문가인 정수일 교수의 저서인 '고대문명교류사'를 소개하겠습니다.3.고대문명교류사-정수일 지음1991년 10월 경찰이 되기 위해 열심히 형법공부를 하고 있던 제가 뜬금없이 지금 광화문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에 갑니다.바로 '스키타이 황금전'이라는 전시를 보러 가는데요. 스키타이 황금 유물들이 흑해연안을 출발하여 바이칼 호수를 지나더니 신라 왕릉에서도 출토(그것이 왜 거기서 나와...) 되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우리는 유구한 반만년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으로 찬란한 문화유산..어쩌구..저쩌구...라는 얇팍한 지식에 쩔어 있던 제 뇌 껍닥이 한 꺼풀 벗겨진 느낌이랄까?그 이후부터 스키타이란 단어는 제 뇌리에 각인됩니다.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어느날...우연히 들린 파주 출판단지내 '지혜의 숲'에서 정수일 교수의 명저 '고대문명교류사'을 발견하고 급한대로'스키타이'부분만 단숨에 읽었지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가 간첩 깐수로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산 천재였더군요(전향했습니다..)회사에 돌아와서 애를 좀 쓴 다음에 책을 구해 비로소 우리민족의 형성과정에 스키타이족의 밀접한 관계..어쩌면 스키타이의 한 지류가 우리 조상의 DNA에 한부분을 채워줬다고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닌게야...ㅠㅠ)그리스 신화에도 스키타이는 사람의 머리 가죽을 뼈로부터 분리시켜 허리춤에 말아차고 다닌다 하여 수골리족(首骨離)이라 불립니다.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행태와 비슷하죠.야들의 후손이 베링육교를 통해 건너가서 갸들이 된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스키타이는 성경에도 언급되는데,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아는 '보라 한 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니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고,자비가 없으며,그 목소리는 바다가 흉용함 같은 지라, 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같이 다 항오를 벌리고, 딸 시온 너를 치려 하느니라(예레미아서 6장 22~23절).겁나게 살벌합니다. 스키타이는 국가이전의 부족 연맹체 정도로 보이는데요. 동부 유럽,흑해,카스피해,아랄해,아나톨리아 고원,메소포타미아 북부,심지어는 그리스,이집트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카자흐초원,우랄 알타이산맥을 휘젓고 돌아다닌 난봉꾼 북방 유목 기마민족이었습니다.떼로 뭉쳐 돌아다니며 정주민들을 정복하고 약탈하느라 바빠 문자를 만들지 못해 기록이 없습니다.ㅠㅠ 다만 그들이 남긴 호화스러운 유적과 유물이 바로 스키타이 황금 유물이고..스키타이에 대해서는 이들에게 당한 정주민들의 역사 기록(미개,파괴,야만의 문명파괴자로 기록) 에 의존해서 가늠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그리스 역사가 해로도토스는 '누구도 그들로부터 도망갈 수 없고, 누구도 그들을 잡을 수 없다'며 신출귀몰하는 스키타이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깁니다.스키타이의 후손들은 BC800년부터 AD 300년까지 약 1,000년동안 이지역에서 활개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다 잔인하고 혹독한 약탈로 민심을 잃어 통일국가로의 발전 없이 정주민에 동화되어 역사속에서 사라집니다.스키타이는 귀를 덮는 뽀족모자,헐렁한 통바지,버선모양의 가죽단화,짧은 상의, 허리를 졸라맨 복장인데 이는 북방 기마 민족의 공통된 차림으로 고구려 벽화속에 나오는 옷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형제 관계를 신성시 해서 의형제를 맺게 되면 손가락 잘라 피를 서로 나눠마시면서 엄숙한 서약식을 진행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위계가 분명하여 호위병,하인,후궁,말,전차까지 순장하는 풍습과 포로를 인신공양하는 제의행위의 악습을 가지고 있습니다.순장제도는 지증왕이 금지 시키기 전까지 신라에도 있었지요. 안장과 가죽 등자의 발명으로 말을 길들여 드디어 원거리까지 원정을 나갑니다.또한 야금술이 뛰어나, 청동제 무기로 무장했으니 당대에 천하무적이었겠네요.여하튼 이 스키타이의 조상들은 세계 3대 문명인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 문명 언저리 지역을 싸돌아 다녀 정주민을 괴롭혔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교역과 문화의 교류를 통해 문명의 태동을 시키는데 일조하게 됩니다.다음엔 이 스키타이의 조상들은 누구이며,어디서 왔는지...그리고 우리민족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선사시대 심연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4.총,균,쇠 -재레드 다이아몬드총,균,쇠는 코로나 역병이 창궐해서 절정기에 이르렀을 때, 재소환된 책으로 인류의 역사를 바꾼 금속,무기 그리고 병균에 관한 이야기가 시공을 관통하며 전개됩니다.전염병의 가공할만한 위력이 현재 상황과 맞물려 공포스럽게 다가오지만,여기서는 스키타이와 관계있는 금속과 무기에 대해 집중해 봅니다.금속을 다루어 무기를 만드는 야금술은 반드시 불의 사용을 전제합니다.불은 호모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사용했는데 음식을 익혀 먹음으로써 소화가 빨라 더 많은 에너지를 활용 할 수 있는 체력과 체격 형성에 도움이 되지요.드디어 아프리카를 떠날 준비가 된 것입니다.또한 불은 혹독한 빙하기 시절에 추위로부터 생존을 담보하여, 따뜻한 아프리카를 순차적으로 떠난 호모에렉투스와 사피엔스가 알프스 너머의 유럽 평원과 동부 유럽의 스텝지대에서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 을 하죠.어느날 누군가가 불피운 모닥불 아래에서 용해되었다 굳어진 금속 덩어리를 발견하게 됩니다.쓰고 있던 석기류보다 단단하며 날카롭기까지 한 신기한 금속이 바로 청동이며,우랄산맥과 알타이산맥 인근에 구리채굴 유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지역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청동기 시대의 주역임에 틀림없습니다.뿐만 아니라 이사람들은 그렇게 확보된 야금술로 황금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데,바로 갸들이 스키타이족입니다.드디어 BC 4000년경...(어쩌면 지위리 환인의 서자부 대인 환웅이 환인국을 떠나 동진했다는 BC 3898년 즈음)....스키타이의 활동 지역으로 알려진 흑해 북쪽 연안에 드디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말을 가축으로 사육하게 됩니다.이로써 스키타이는 행동반경이 커지고 전광석화와 같은 기습 공격이 가능해져 북으로는 흑해와 카스피해...서쪽으로 지중해...남으로는 홍해와 페르시아만 사이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마음껏 유린합니다.만약 스키타이 부족 연맹체가 환인국이 맞다면 환인국의 한 지류인 환웅은 청동제 무기로 무장하고 말을 탄채 우랄과 알타이 산맥 사이의 초원길을 넘어 동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후 말과 청동제 무기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말대로 인류의 운명을 바꾸는 가장 위력적인 전략 무기가 되지요. 다음은 환인국과 스키타이의 관계,그리고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추정되는 유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헤르만 파르징거의 명저'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를 통해 짜깁기 신공을 발휘해 보겠습니다.5-1.#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칼 세이건 가라사대 원시 인류의 3대 공포는 고소공포,파충류,어둠이라고 했습니다. 11m의 티라노 사우르스와 같은 공룡을 피해 그보다 높은 나무위에 살다보니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당연히 끔직한 공포였겠죠.지금 우리가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면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쫄깃해지는 고소 공포증은 우리 유인원 조상들이 우리에게 준 떨어짐 방지 선물입니다.파충류는 구태여 설명 안해도(뱀조심...ㅎㅎ) 마지막으로 어둠은 원시 인류가 겪는 모든 공포의 총합이었습니다.아침이 밝아 광명의 세상이 오면 비로소 인류는 안심을 합니다.그러니 태양이 뜨는 동쪽은 그야말로 선망과 동경과 호기심의 원점이었습니다.그래서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인류의 대이동이 시작됩니다.가자 해뜨는 동방으로(동방신기는 요즘 뭐하나?)...삼국유사는 우리 역사가 단군 왕검의 고조선이 아닌 桓因의 桓國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한단고기의 삼성기 하편에 환국의 시원에 대해 나와 있는데요. 나반(那般)과 아만(阿曼) 사이에서 아리사타( 阿耳斯它)가 태어나고,이어 앞에서 설명한 九桓 무리, 즉 구이(동이)가 태어납니다.학자들은 나반을 하나반,하나버지,할아버지 즉 시조로...아만은 어비,어마니,어머니의 어원으로 봅니다.아사달(阿斯達)의 어원인 아리사타는 영어로 어디서 많이 들어 봄직한 이스타( -isata), 어디일까요? 오늘날 중앙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쓰고 있습니다.우즈베키스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키르키스탄,카자흐스탄....심지어 터키의 이스탄불까지...ㅎㅎ 바로 이스타는 '해뜨는 동방'을 의미하기 때문이랍니다.아사달은 해뜨는 동네...아침동네...朝鮮...(따라쟁이 일본말도 아침은 あさ)...이미 눈치채셨겠지만...아프리카를 출발해 무조건 동쪽을 향해 해안가를 따라 올라온 호모에렉투스....그리고 한참 후에 도착한 호모 사피엔스....(이부분은 별도로 심도있게 논해야 합니다.) 드디어 해안길이 아닌 유라시아 초원길로 해뜨는 동네를 향해 말을 타고 청동기로 무장한 채 한반도에 도착한 스키타이.... 그 스키타이의 발원지는 '-이스탄'나라들이 포진한 중앙 아시아 어디쯤이겠죠. 남북 오만리...동서 2만리의 환국,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남쪽으로 아나톨리아 고원,서쪽으로는 지중해와 동유럽...동쪽으로 텐샨과 알타이 산맥...북쪽으로 우랄 산맥 사이의 거대한 평원의 12분국의 부족연맹체....다음엔 스키타이 환인국 발원지로 추정되는 파르칭거가 연구한 유적들을 둘러보겠습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2019-11-11
[외부아트컬럼_박상순님] 사공이 많은 배 _ 김보미 작가
박상순님어디에 두어도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주제나 대상, 독특한 표현기법, 남다른 시각, 절묘한 색감 등 이유도 다양하다.작품이 주는 매력이 여러 가지인 것처럼 애호가들의 선호도 각양각색이며, 그들의 눈을 사로잡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눈길을 끈다는 것 자체가 일단은 성공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김보미작가는 일련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전시회를 할 때마다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회장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며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이미 그의 전시를 기다리는 일군의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김보미작가는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이다.한 자리에 머물러 앉아 열매를 따는데 만족하는 유형이 아니다. 어쩌면 태생적으로 그런 DNA를 타고 났다.사회와 삶의 구석구석을 헤집어 놓고 "어이쿠나..." 비명이 날 만큼 아픈 질문을 날린다. 이번 전시에도 그만의 독특함이 드러난다.많은 고민의 흔적이 그동안 지나온 삶이 안겨준 기쁨, 당혹, 혼란과 오버랩된다."2019년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티벳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30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삶의 대한 생각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 스스로 자랑스럽고 안쓰럽기가 교차했다.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가치를 담고 넓은 시야를 가지려는 노력이 사공이 많은 배를 타고 표류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 작가 노트사공이 많은 배...요즘같은 시절에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나이 먹도록 여전히 흔들리며 살아내고 있는 나로서는 "표류"라는 말에 아~ 하는 공감도 가지만 아련한 아픔도 함께 느끼게 된다.제목이 주는 선입견이 있다. 약간은 부정적인... 의도한 대로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단정을 하게 된다.최근 다양성 존중, value difference (차이를 가치롭게 여기기)에 대한 인식이 강조되고 있다.한국 사회에 편입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단일민족"의 깃발을 내릴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또한 급속도로 변화하는 digital transformation은 우리의 의사에 상관없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세대들이 동거하게 했다.같은 세대내에서도 가치관에 따라 차이는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불균형이고 충돌이고 혼란이다.그런데 정작 작품을 보면 살짝 의아하다. 사공이 많아서 방향을 잃고 엉뚱하게 산에 올라온 배는 에덴[같은 꽃동산]에 "안착"했다.애초에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 아름다운 동산에서 표류라니... 산책이 맞지 않을까? "표류"라는 라벨을 붙일 만한 단서를 못찾겠다.사공이 많아서 더 좋아진 듯한 느낌이다. 인생이 주는 짜릿한 반전인가?The Great Journey 五體投地 : 김보미 개인전전시기간 : 2019.11.07(목) - 2019.11.19(화)관람시간 : 평일 : 11:00 ~ 20:00주말 : 11:00 ~ 18:00장소 : 에코樂갤러리... 3호선 신사역 1번 출구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130 하림타워 2층전시주최 : 에코樂갤러리문의 : 02-6942-7550작품보기 ▶http://www.ecorockgallery.com/author/view.htm?idx=190원문보기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200482590141218&set=a.108820092640812&type=3&theater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2019-10-24
[외부아트컬럼_박상순님] white-1 _ 유희선 작가
white - 1 박상순님▲ 유희선, white - 1,100.0 x 80.3cm,oil on canvas, 2015그냥 딱 보아도 불편한 모습이다. 어린이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뽀로로 주변을 온통 쓰레기가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담배 꽁초까지 있다.배경으로 보이는 온갖 튼튼한 "이빨"들의 모습은 더 당혹하게 한다. 이젠 역겨움마저 든다. 뽀로로의 순수한 영혼은 멍한 눈동자만 남기고 사라진 듯하다.작가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했을까?2018 5/24 - 6/5일까지 에코락갤러리에서 진행된 <신정물전>에서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내 이목을 끈 이유는 "불편함"이었다.짙게 두리운 "무기력"이었고 안타깝지만 "어찌 할 수 없음"이었다. 내안의 뭔가를 건드리고 있었다. 목구멍 뒷쪽에 박힌 생선가시 같은...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이 이에서 멀지 않다. 어느 날 이런 환경/상황에 던져졌지만 떠날 수도, 그만둘 수도 없다.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그것마저도 누구의 힘을 빌어야 한다. 당연히 일탈의 실체는 알 수 없다. 일탈 또한 막연해진다.몸을 칭칭 감고 있는 저 초라한 끈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건 영화에나 나올 법한 통쾌한 반전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싶다.아직 남은 힘을 쏟아부어 저 끈을 당기고싶다. 어디로 갈 줄은 모르겠지만...어떠 해야만 한다는 이상과 초라하기 짝이없는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 하며, 오늘도 일탈을 꿈꾸지만 길들여진 대로 살아가는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 여전히 불편하다.작품보기▶ http://www.ecorockgallery.com/artwork/view_new.htm?idx=10342원문보기▶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87213624801448&set=a.108820092640812&type=3&theater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2019-10-15
[외부아트컬럼_박상순님] 하트카드 _ 김보미 작가
하트카드 박상순님▲ 김보미, 하트카드,91.0cm*116.7cm,acrylic on canvas, 2015오래전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살기 시작하면서 영특하게도 역할이 생겼습니다. 서로 같은 것을 하면서 욕심스럽게 다툴 일이 없어졌습니다. 가장과 아내의 도리가 만들어집니다.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부족을 이루어 살면서 관습(규칙)이 만들어졌습니다. 무엇이 부족의 이익에 바람직한 행동인지 따지기 시작했습니다.더 큰 무리가 만들어져 국가가 되면서 사회 시스템이 갖춰지고 법이 생겨납니다.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공유된 가치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같이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 생겨난 역할과 규칙, 법은 오랜 세월이 지나고 이젠 서로를 공격하는 도구로 전락했습니다.자신들이 믿는 옳고 그름으로 상대를 몰아 세우고 철저하게 굴복시킵니다. 관용과 포용은 교과서에나 있는 말입니다. 사랑, 평화, 화합과 배려 같은 말들은 이상적인 상태를 일컬을 때 또는 아주 기만적인 상황을 포장할 때 사용합니다. 사회는 기회주의로 물들고 공유되었던 가치에 대한 헌신은 약해집니다.축구에서 옐로우카드는 경고를, 레드카드는 퇴장을 의미합니다. 규칙을 어기는 선수를 제재하는 수단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하트카드는 용서를, 포용을 의미합니다. (상대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궤도에서 벗어난 구성원들을 다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입니다. 상처받고 부서진 각 구성원들이 회복으로 향하는 첫 단추입니다.지금 우리에게는 하트카드가 필요합니다.작품보기▶ http://www.ecorockgallery.com/artwork/view_new.htm?idx=639원문보기▶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79518252237652&set=a.108820092640812&type=3&theater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19-07-10
[그리스 보물전에서 우리의 미래를 읽다]
[그리스 보물전에서 우리의 미래를 읽다]조용진교수님의 '한국인의 몸,얼굴,뇌,문화'의 내용을 중심으로...아주 오랜 옛날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가 시작되자 나일강이 범람하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던 육로가 사라집니다.다행히 아프리카 중부 사바나 초원을 출발한 인류의 조상중에 좌시야(우뇌형) 유전자를 가진 수렵인들은 이집트까지 올라와 이미 열렸던 육로를 통해 좌측 방향(좌측것이 커보여 좌측으로 이동...)인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남유럽의 해안선을 가로 질러 이베리안 반도까지 진출 한 뒤였습니다. 마침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수렵형 유전자를 지닌 유럽인들의 조상의 이동로를 일시적으로 끊어 놓습니다.그러자 발칸 반도에는 그 기간동안 수렵형 유전자의 공백기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미 수천년전에 먼저 아프리카를 출발,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북유럽까지 북상했던 일군의 무리들이 북극에 가로막혀 거대한 설벽(우랄산맥,알타이산맥,히말라야산맥)을 끼고 다시 남하하다,그중 일부가 발칸반도에 들어오게 됩니다.나머지는 순차적으로 중동, 인도로 남하하거나, 간빙기가 시작되자 열린 우랄과 알타이 산맥사이의 골짜기를 지나 동진하게 되지요.같은 시기 우시야/좌뇌형 채집 유전자 형질을 가진 인류의 조상들은 이집트까지 같이 올라오다가 우측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이들은 중동,인도을 거쳐 이윽고 오늘날 인도네시아/필리핀 열도에 도착하게 되지요.이후 이들이 해안선을 타고 한반도까지 올라와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를 연 우리 민족의 채집형 남방계의 시조가 되겠습니다.일부는 빙하기때 낮아진 해수면 때문에 훨신 가까워진 호주로 이동합니다.(디즈니 만화영화 모아나의 시대 배경) 이부분은 나중에 이야기 할 별도의 시간이 있을 겁니다.이번에 그리스 보물이 주인공이니 다시 그리스로 가보겠습니다.당시 그리스가 있는 발칸반도에는 우시야/좌뇌형인 채집형 선주민들인 남방계가 이미 들어와 정착하고 있었습니다.이들과 북유럽에서 남하한 수렵형의 북유럽계가 혼혈된 것입니다.아직 분화되기 전인 이집트에 이어 인류 역사상 두번째의 혼혈이 발생한 것입니다.이 혼혈이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겠지만 인류문명의 역사의 이면엔 반드시 이 혼혈의 역사가 있었습니다.수렵형/채집형 분화 직전인 이집트 문명이 그랬고,첫번째 혼혈인 그리스 문명,두번째인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후 인도의 인더스 문명,중국의 황하 문명,그리고 발해만의 요하문명 등이 그렇습니다.동양의 문명은 1만5천년전 간빙기의 시작으로 우랄과 알타이 사이의 계곡이 열리자 스키타이와 훈족으로 통칭되는 북유럽 북방계의 동진으로 혼혈이 이루워진것입니다.이렇듯 유전자가 상극인 인류가 만나 혼혈되면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수렵형 유전자를 지닌 북방계 유럽인들은 사냥에 특화된 시야인 전체시를 갖게 됩니다.먼곳을 넓게 봐야하고 움직임에 민감하기 때문에 시청 감각에 뛰어나,투시원근법,명암법의 표현에 특출난 능력을 보유합니다.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 가능하지요. 오늘날 남유럽의 모든 동굴에서 발견되는 구석기 시대의 벽화를 상기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겠습니다.반면에 열대 우림속에서 채집생활을 하던 남방계는 시각과 청각보다는 후각과 촉각, 그리고 미각이 절대적인 후미촉 감각을 보유하게 됩니다.열대우림으로 시야가 제한되니 보이는 것보다는 상상하는 개념이 발달하게 되고, 디테일에 매우 강한 부분시의 유전적 형질을 갖게 되지요.자 이제 상상해 보세요. 이 두 형질이 섞이니 어찌 문명이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북방계와 남방계,전체시와 부분시,수렵형과 채집형,우뇌와 좌뇌,현실과 개념...의 유전자 융합의 결과가 어떤 보물들을 만들어 냈는지 그리스 보물들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그리고 이제 우리는 세형 청동검과 방울,그리고 거울을 가지고 동진한 스키타이 북방계와 시베리아 타이가 숲에서 빙하기를 보냈으며, 하체가 유난히 강한 퉁구스 북방계와 오밀조밀 디테일에 강한 채집형 남방계가 반도에 갇혀 5천년 동안 혼혈로 숙성된 우리 한민족의 디지털 문명급 문화 저력을 즐기시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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