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에코 樂 갤러리’의 비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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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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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테 가나다 가나
글쓴이 : 장현근
20231129
[소리를 넘어선 또 하나의 공명(共鳴)]
만물을 무한소로 쪼개면 원자가 나오고, 그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중성자,그리고 그 주위를 구름처럼 떠도는 음전하로 나눠집니다.그 중 원자 속에 존재하는 핵의 크기는 원자 전체 크기의 10만 분의 1정도 매우 작고, 그 나머지 공간은 전자 구름이 채우고 있어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는 빈 공간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최근에 진전된 과학 기술의 힘으로 원자핵 내의 양성자와 중성자는 그보다 훨씬 작은 쿼크와 힉스와 같은 미립자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죠. 양자 물리학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원’은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물성을 가진 물체 뿐만 아니라, 뇌파와 빛, 그리고 소리 같은 전자기파도 무한소인 미립자 알갱이들로 나뉘며,그 미립자들이 물결 모양의 파동을 통해 다른 원자에 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자국을 남긴다는 의미는 바로 상대편에서 보낸 파동이 내 몸 안의 빈 공간에서 자신의 파동과 뒤엉켜 일으키는 공명을 말합니다.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몰려오는 이런 파동 때문에 우리는 예술 작품을 통해 진한 감동을 느끼는 것입니다. 빅뱅 이후 형성된 우주 화구가 점차 식어가자,이때 방출된 전자기파는 주파수가 높은 감마선, 엑스선,자외선, 그리고 우리의 눈으로 관찰 가능한 가시광선, 적외선, 전파 순으로 지구에 도달합니다. 그런 전자기파 중에 빛은 진공 상태에서도 파동으로 전파되지만, 오직 소리 만은 공기의 밀도에 따라 생성되는 파동으로 인간의 오관 중 청각과 촉각을 통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10의 28승 개의 원자 속 빈 공간에서 공명을 합니다.그렇다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 내 빈 공간에서의 공명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우리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공포,슬픔,연민,긴장,상처 같은 부정적 기제들을 격한 감정 유발, 즉 공명을 함으로써 몸 밖으로 배설하는 카타르시스[Katharsis]대해 이야기 합니다.일종의 정신적 승화 및 정화 작용으로 우리는 이 과정이 끝나면 묘한 쾌감과 개운함을 느끼거나, 슬픔이 사라지는 효과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술가는 파토스[Pathos]상태에서 우리 몸 안의 빈 공간을 관통하는 전자기파에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담아 공명으로 증폭 시킴으로서, 스스로를 정화하고 이때 발생되는 쾌감으로 보상 받습니다. 그 증폭된 파동을 받는 관객 또한 같은 경험을 하게 되지요. 음의 진동과 파장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함께 공명시켜 응어리진 恨과 슬픔이 풀어진 신명난 상태로 가야 비로소 마음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나 그 파동을 받아 공명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예술가가 파동을 증폭 시켜 방출할 때 관객 또한 그 파동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예술가와 같은 수준의 대역에 주파수를 연 파토스 상태여야 오롯이 그 감동의 파동을 받아 공명 할 수 있게 됩니다.영국의 정신 분석학자 M.클라인은 이성적인 로고스[Logos]에서 무의식 상태에 접어들기 힘든 어린이를 대상으로 ‘유희 요법’이라는 처방으로 치료를 했습니다.부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대한 의도적인 저항 때문에 어린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죠. 몰입 즉 파토스 상태에 이르게 한 뒤 치료한 것입니다. 이 ‘유희 요법’은 비단 어린이만 해당 되는 것은 아닙니다.어른들도 축구나 야구를 응원하거나, 영화 또는 공연을 보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러 전시장에 들리는 등 약간의 사전 준비와 환경만 조성되면 누구나 쉽게 공명이 가능한 파토스 상태에 이를 수 있지요. 인간의 뇌는 최초 파충류 때 형성된 밤 톨 만한 뇌간으로부터 외부로 진화를 하게 됩니다.뇌간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공격과 방어 행위 및 짝짓기 그리고 심장 박동과 호흡 활동 같은 생존과 번성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합니다.이후 포유류로 진화하게 된 인간의 뇌는 뇌간을 감싸며, 감정과 정서를 담당하는 변연계로 커집니다. 이윽고 영장류로 진화한 뒤에 비로소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그리고 영감이나 직관을 발현 할 수 있는 대뇌 피질을 갖게 되지요.우리의 대뇌 피질은 보다 많은 정보를 저장하기 위하여 마치 허파꽈리 처럼 진화합니다.이는 제한된 뇌 공간 내에서 보다 넓은 표면을 갖기 위한 신의 한 수인 셈이죠. 뇌 용량이 스스로 확장되는 방향으로 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과 번성에 필요한 정보가 급증하는 바람에 더 이상 자체 저장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양이 증가하자, 인류의 조상들은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바로 정보를 육체 밖으로 저장하는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마치 오늘날 블록체인[Block Chain]처럼 자기가 가진 소중한 정보를 타인의 뇌에 복사해서 붙여 넣어 공유하는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반드시 필요했던 집단 연대 및 유대 관계의 시작입니다.바로 이때 모여 집단적으로 필요했던 정보를 공유했던 방식이 오늘날 예술의 장르인 연극, 음유시, 회화, 춤, 음악의 탄생 배경입니다. 이런 집단 행사는 서양의 ‘디오니소스 제전’으로 발전되고, 우리 한민족은 고구려의 동맹,동예의 무천,부여의 영고[迎鼓]같은 상고 시대의 제천행사로 나타납니다.특히 부여의 영고[迎鼓]는 다른 제천행사가 모두 10월에 열리는 것에 비하여 12월에 열리는데, 이는 농경을 업으로 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수렵과 유목이 주업인 까닭입니다.만주 벌판을 내달렸던 수렵 기마 민족의 기상을 붇돋는데에는 파장이 길며 낮게 깔려, 지평선 너머까지 멀리 공명시키기에 혁고[革鼓]만한 것을 없었겠지요.둔탁하게 낮게 울리는 북소리는 그 파장이 길어 듣는 사람 모두의 가슴을 공명시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킵니다.단시간에 집단 파토스 상태를 유발하기에는 북소리가 최고의 방법이었을 겁니다.하물며 전쟁터도 아닌 생존과 번성의 정보가 공유되는 연대와 축제의 마당인 제천행사에서의 북소리는 그 행사의 이름을 영고[迎鼓]라 했을 정도로 상징적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미 소리 하나만으로 광저우,벤쿠버 올림픽 개폐회식에서 한국의 소리를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알린 작가 최소리는 이미 십 수년을 북과 접화된 상태에서 북소리와 공명하며 살아왔습니다. 살아 숨 쉬는 시간 절반이 파토스 상태, 즉 광기와 도취와 삼매의 신명난 삶이었죠.작가 스스로도 내가 나비인지..나비가 나인지 모를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상태에서 크고 작은 북을 쳐 세계를 공명 시켰습니다.그때마다 대중은 못 보고 그의 눈에만 보이는 기의 흐름, 즉 북소리의 파장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 만명의 사람들을 휘어 감아 그들의 세포 속 빈 공간을 공명시킬 때, 작가 최소리는 문득 그의 눈에만 보이는 그 소리의 파장을 영구히 시각화하기로 결심을 합니다.공연과 같은 시간 예술은 신명에 이르는 그 효과가 즉흥적이지만 지속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이미 소리의 공명을 통하여 세계를 정화시킨 선험적 메카니즘을 가진 작가 최소리가 시각예술인 회화의 영역에서 추구하는 또 하나의 공명을 과연 무엇일까요? 어린시절부터 소리에 미쳐 정규 교육 과정에서 이탈한 상태로 자연 속에 파묻혀 모든 물성을 가진 물체를 두드리며 그것들이 내는 소리 파장에 중독되고, 득음 아닌 득음을 한 작가 최소리는 그가 두드리며 낸 소리가 공기의 밀도를 밀어내며 물결 모양의 파장을 만들어내는 것을 온몸으로 느낍니다.우리는 못 보고 그만이 오롯이 오관을 통해 볼 수 있는 파동의 무늬이죠.소리의 파동은 진원지를 이미 떠나 먼 우주로 사라지자 비록 응어리와 한은 정화 되었다지만. 공허함도 함께 남는다는 것을 깨달은 작가는 첫 단계로 파동이 휩쓸고 가며 남긴 자국을 수묵 담채로 화폭에 담기 시작합니다.작가가 스스로 공명된 상태, 즉 파토스와 신명의 상태에서 느꼈던 삼매와 몰아의 감정들인 광기과 도취,공포 그리고 격정과 황홀경, 심지어는 극한의 슬픔의 정서가 응어리진 한까지…비록 그것들이 소리가 아닌 시각으로 표현되었지만,우리는 소리가 공명되며 내는 파장을 들리는 환청을 경험하게 됩니다.바로 공감각이라는 우리 인체의 오묘함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이렇게 그가 염원하던 소리를 보여주고자 했던 욕망은 평면화폭의 조형미로 실현되어 또 하나의 단단한 나이테를 추가 합니다. 양자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피조물에는 고도의 지능을 가진 미립자들로 만들어져 있으며, 이 미립자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파동에 의한 자국을 남기는 방법으로 온갖 다양한 정보를 저장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오래된 성당이나, 절에 가면 저절로 숙연함을 느끼고, 선대로 부터 받은 유품에 유난히 더 정이 가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의미있는 선물이 소중해지는 이유입니다.이 오묘한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법칙을 스스로 체득하고, 자각한 작가 최소리는 소리의 파장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회화적 작품에 소리를 저장하여 보여주는 데 성공하지요.소리의 파장을 직접 기록하게 될 매체은 소리의 파동 주파수가 가장 높고 에너지가 큰 금속 재질 매체들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기에 충분한 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이젠 한 단계 더 진전된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소리가 저장되고 그 파동이 물결처럼 퍼져 나오는 차원 높은 공감각적 공명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작가 최소리의 이러한 장르와 매체를 초월한 공감각의 예술적 행위는 우리 한민족의 미의식인 신명[神明]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신명은 합리적인 이성이 우리 뇌를 주관하는 때가 아닌, 내 몸에서 귀신이 나타나는 상태인 바로 신명[神明]난 상태,순식간에 삼매[三昧]의 일심불란(一心不亂),무아지경,몰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나타납니다.누구나 이 신명에 이르면 정신적으로 樂하게 되고 육체는 興에 취하게 되지요. 상고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신명난 상태를 절대적 일자,하늘,우주,대자연과 접화하는 유일한 통로로 인식합니다.우주는 하늘과 땅사이에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천지인[天地人]사상에는 천지를 이어주는 사람인 무인[巫人]의 존재가 필연적입니다.누구보다도 신명난 상태,즉 파토스의 경지에 쉽게 빠져들어 대중을 집단 최면 상태로 이끄는 사람 말입니다.이와 같이 상고시대 제천행사에서 발원한 천지인의 신선 사상은 화랑도에 이어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의 풍류 정신으로 발현되며 오늘날은 모든 예술가들에게 이어져 발현되는 우리 고유의 사상입니다. 작가 최소리는 이미 소리를 통하여 그의 신명을 공명시켜,전 지구인을 집단 최면인 황홀경과 광란,그리고 도취와 격정의 상태를 유발 시킨 경험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의 신명난 한판 소리는 그 자체가 무아지경, 몰아지경의 ‘興과 樂’의 공명으로 전 지구를 연대와 대동의 장으로 만들었지요.작가 최소리는 즐겁고 행복한 樂의 정신적 상태와 어깨춤이라도 덩실거릴 육체적 興에 취하는 신명에서 파생된 樂&興이라는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지닌 초유의 무인[巫人]입니다.이번 전시는 그의 넘치는 에너지가 소리를 넘어서 그 소리를 보여주고 저장시켜, 또 다른 장르로 대중의 공감각을 자극시켜 공명 시키겠다는 욕망이, 조형의식으로 반영된 회화로도,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전시입니다. 그의 예술적 욕망의 본질과 근원은 예술 장르에 상관없이 동일하며, 다만 구현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번 전시는 이미 파토스와의 신명[神明]의 경지를 수시로 넘어본 작가 최소리의 또 다른 예술적 욕망의 분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비록 소리의 파동과 달리 즉시성은 떨어지지만 선사시대 동굴벽화처럼 수 만 년 동안 지속될 소리의 공명을 시각화하려는 그의 욕망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가 소리로 지구를 공명시켰듯이 소리의 저장과 파동이 담겨 조형의식이 반영된 평면회화도 전 지구인을 또 한번 공명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쓴이 : 테스트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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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장현근
20231128
視覺的 낯섬의 美學, 그리고 슈필라움[Spielraum]
1. 들어가며 생존과 번성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은 우주의 섭리이고, 자연의 법칙이며, 神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본성은 사피엔스 공통의 유전자의 언어이며, 아울러 모든 예술가들은 이것을 ‘예술적 욕망’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예술가들의 원초적인 욕망이 분출된 결과물을 우리는 예술 작품이라고 하고, 그것은 회화 뿐 만 아니라 문학이나 영화, 음악, 사진과 같은 다양한 예술 장르로 표현됩니다. 작가의 예술적 욕망이 분출된 작품은 작가 스스로 理性的이거나 合理的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의 근원은 이론적으로 설명이 불가한 본능과 욕망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학이나 비평은 작가를 대신해서 왜 작가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욕망의 세계에서 거닐며, 그것을 표출하는 작품 활동을 하는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으로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조자인 대중이 오롯이 작가의 작품 세계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대체로 작가의 예술적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은 미(美)로, 그리고 그 미의식이 표현된 결과물은 술(術)인 미형식(美形式)으로 구성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미술(美術)을 완성합니다. 작가는 욕망의 분출인 미의식(美意識)에서 출발하여 표현 양식인 미형식(美形式)으로 나아가지만, 관조자(觀照者)인 대중은 반대로 미적 형식의 관조를 통하여 작가의 예술적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을 찾아 작가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 갑니다. 작품을 주의 깊게 감상하는 관조자(觀照者)의 입장에서 작가 최서원의 작품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술(術)의 영역인 미형식(美形式)부터 출발하여, 작가의 예술적 욕망이 분출의 근원인 미의식에 도달하는 경로를 선택해야 합니다. 작가 최서원은 우리 민족에게 이미 익숙한 민화를 현대적 재해석한 작품 활동을 합니다. 일시점의 원근법과 명암법을 해체하여 다차원의 관념적 공간을 구현함으로써 우리에게 ‘낯선 미적 형식’을 제시하며 시선을 포획합니다. 이를 통하여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욕망의 시원이자, 미의식의 총합인 현대적 유토피아인 ‘슈필라움’에 이르는 길을 보여 줍니다. 2. 시각적 낯섬의 미형식(美形式) 미형식은 작가의 예술적 욕망을 효율적으로 분출하기 위해 일종의 도구입니다. 자연의 원형의 재현과 모방의 미형식에 치중했던 회화는 근대에 이르러 그 원형을 과감히 해체하는 탈정형으로 탈주합니다. 그동안 철옹성처럼 지켜지던 전통적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시점이 붕괴되어 오늘날 현대 미술에 이르렀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해 오던 회화가 과장과 축약 그리고 다시점의 비정형을 추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 일까요? 원형의 비례와 균형을 해체하는 것은 그렇게 형성된 ‘시각적(視覺旳) 낯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피엔스의 원초적 본성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정형, 탈정형을 통한 ‘시각적 낯섬’은 시선이 포획된 관조자로 하여금 각별한 관심을 갖게 만들고, 더 나아가 그 원형을 향한 보충적 환상을 유도합니다. 역설적으로 이렇듯 惡畵는 관조자(觀照者) 심상에 良畵를 구축합니다. 미술 해부학 국내 최고 권유자인 조용진 교수에 의하면, 우리 조상들은 동쪽으로 이동해 오는 동안 거주지 환경과 기후에 따라 형성된 서로 다른 유전 형질을 우리에게 물려 주었다고 합니다. 주로 빙하기에 낮아진 해수면으로 개방된 해안로를 따라 이동해 온 남방계는 울창한 밀림 속의 효과적인 채집을 위해 근거리에 맞춰진 시각을 후대에 유전으로 물려 주게 됩니다. 명암이 없고, 원근감이 무시 되며,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하기에 특화된 부분시가 반영된 평면적이고 개념적인 성향이 유전적 형질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근거리에 시(視) 감각을 DNA를 지닌 남방계는 필요 이상의 디테일한 미술적 표현이 가능해집니다. 특히 본적도 없는 세계를 주로 상상해서 그린 관념화에 능숙합니다. ‘보이는 대로’가 아닌 ‘상상하는 대로’ 그린다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유라시아 대평원으로 이동한 간 인류의 조상들은 울창한 밀림 대신 탁 터진 초원을 마주하고 채집대신 수렵에 유리한 시각을 가진 북방계는 부분시(部分視) 가 아닌 눈앞의 풍광 전체를 조망하는 전체시(全體視)를 갖게 됩니다. 덕분에 명암법, 원근법 등 공간감과 거리감에 특화된 시각을 가지고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는 유전적 특성을 보유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서양화가 일시점 원근법과 명암법의 북방계 미술의 고유한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원근법과 명암법으로 유전자를 장착한 북방 기마 유목들이 빙하기전 미리 이동해 정주해 있던 선주민인 남방계와 혼혈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민족은 이 두 미술적 형질의 DNA가 5천 년 넘게 치환된 유일한 민족입니다. 작가 최서원은 이미 치환된 이 두 유전자 형질을 모두 보유하여, 북방계 뿐 만 아니라 남방계의 미적 형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매우 보기 드문 작가입니다. 최서원 작가가 미적 대상으로 인식한 전통 민화는 태생적으로 원근법과 명암법이 무시되는 전형적인 남방계 성향의 미적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화를 재현, 반복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작가 최서원은 북방계 특성을 더하여, 서양 회화의 원근법과 전통 민화의 역원근법은 물론 일시점과 다시점, 심지어 무시점인 평면성까지 자유 자재로 구사하여 3차원의 공간감을 극한의 2차원 평면적인 공간을 표현해 냅니다. 이처럼 미형식이 상이한 유전적 형질의 융합적인 구현은 작가 최서원이 전통 민화의 질료인 한지에 수묵이나 채색을 넘어서, 서양화의 재료인 캔버스나 아크릴 물감의 거리낌 없는 접목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모든 예술 작품은 시대를 각인합니다. 우리 전통 민화도 마찬가지로 조상들의 길상적(吉祥旳) 상징인 다양한 문양과 상징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민화의 존재 이유는 이 도상을 해석함에 있어 당시 시대 속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욕망을 충족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귀물들의 상징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중은 이를 소장하거나 관조하는 과정에서 그 욕망들의 직, 간접적인 충족과 해소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 상징들이 과거와 변화 없이 반복 재현된다는 것은 민화의 정통성을 감안하더라도 또 다른 전통의 모방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즉 현대는 이 시대에 맞는 상징성의 귀물이 등장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대중의 욕망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 최서원의 작품은 과거 전통적인 민화를 배척하지 않고, 이것을 다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현대적 길상(吉祥)의 상징인 도상(圖像)과 그것을 표현하는 미적 형식의 융합을 시도한 한국 최초의 작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이상향에 대한 미의식(美意識), 슈필라움[Spielraum] 작가 최서원이 원근법과 명암법을 해체하고 평면성을 강조한 우리 전통 민화를 차용한 상태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공간을 재구축합니다. 구석에서 중앙을, 위에서 아래를, 그리고 아래에서 위를 보는 공간의 분할과 해체를 다시 한 화면에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미형식(美形式)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낯섬의 미형식’을 통하여 분출하려고 한 작가의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은 무엇일까요? 작가가 인간의 미의식(美意識)의 영역에 속하는 ‘생존과 번성’이라는 원초적 본능이 현대적으로 재해석 된 예술적 욕망으로 치환되어, 작품 속에 표현된 모든 길상의 상징들은 바로 이 시대를 갈음 하는 욕망의 대체물들 입니다. 비록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다양한 시대적 욕망들이 함축되거나 암시(暗示)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 동진의 고개지의 ‘형(形)으로써 정신(神)을 묘사해야 한다(以形寫神)’와 심상(心象)에 의존해야지 단순히 눈에 의존하는 외형모사는 천박하며, 의(意)가 붓보다 앞서야 그림이 끝나도 의(意)가 남는다(意存筆先 畵盡意在)는 중국의 의경미학(意境美學)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특히 작품 속 모든 길상의 상징들이 가리키는 곳, 즉 모든 욕망들의 총합이 바로 ‘슈필라움’입니다. 슈필라움은 개인의 독립된 은밀한 유희 공간입니다. 현대 사회내의 대중은 집단의 생존과 번성을 위하여 스스로를 규제하는 다양한 법률이나 규칙, 도덕과 윤리 때문에 인류가 태초부터 가졌던 원초적 자유 본능이 절제되고 그 욕망이 억압 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중에게는 일종의 탈주처나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할 이상향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억제된 자유 욕망이 분출되고 해소되는 ‘슈필라움’ 이 바로 그 이상향입니다. ‘슈필라움’에서 작가가 예술적 욕망을 분출할 때, 그리고 관조자는 작품을 통하여 원초적 자유 욕망이 완성될 때, 비록 그곳이 실질적 공간이 아닌 2차원의 환상의 공간일지라도 온전한 쾌(快)를 느끼게 됩니다. 특히 작가 최서원의 작품인 ‘슈필라움’ 의 쾌(快)는 단순한 쾌를 넘어선 새로운 창조의 원천이자 강력한 에너지원이며, 이것은 작가가 관조자에게 주는 창조의 욕망을 해소시키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4. 결론 우리는 원초적 본능 상태에 노출되어 그 욕망이 충족되거나, 억제된 욕망이 해소될 때 쾌(快)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 최서원은 우리에게 현대적으로 재해석 된 민화를 통하여, 억제되어 있던 현대인의 원초적 자유 욕망들을 ‘슈필라움’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해소시켜 줍니다. 작가의 ‘슈필라움’에서 대중은 단순한 위로와 안식, 그리고 쾌(快)을 넘어선 재창조의 유희공간으로써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대중의 소유할 수 없는 욕망을 해소 시키는 작가의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은 작가 자신 뿐만 아니라 관조자인 대중에게도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 숭고한 예술가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작가 최서원은 자신의 예술적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을 공간을 자유자재로 해석하고 재구성한 미형식(美形式)으로 완벽하게 치환합니다. 작가의 예술적 욕망이 제대로 분출된 것 입니다. 한 화면에 여러 시점이 난무하는 다차원의 공간이 창조되고, 조명에도 그림자가 없는 비현실적인 공간감이 연출 되며, 원근법과 역 원근법의 교차로 시각적으로 매우 ‘낯선 화면’ 구성은 ‘파격적인 원색’과 함께 관조자의 시선을 포획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만의 이상향인 ‘슈필라움’을 갖게 합니다. 작가의 욕망이 비로소 대중에게 이식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진보는 과거의 전통을 전복하는 과정에서 잉태됩니다. 우리 고유 문화 유산 중의 하나인 민화는 그 자체만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만약 우리가 전통에 얽매이면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바야흐로 전 세계적으로 K-신드롬이 불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것만으로는 세계적인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K-미술도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융합이 대안입니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북방계와 남방계의 고유의 미술적 DNA형질을 보유한 작가 최서원이 풀어낼 미래의 작품세계 또한 사뭇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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