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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비평] 오종보 조회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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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종보 비평
작성자 장현근
등록일 2024-01-16 13:18:37
내용

 

오종보 비평
                                    
장현근

1. 서설(序說)

  세계 도자사(陶磁史) 9세기부터 17세기까지 동북아시아의 중국과 우리 한민족 주도한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 가세하고 18세기에 이르고 나서야 기술이 유입된 유럽까지 확산하여 비로소 세계화가 된다.

특히 한민족은 비록 중국으로부터 도자기술을 유입했지만, 단순한 답습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창적인고려 상감 청자와 분청사기, 그리고 조선백자를 만든다. 중국과 함께 세계 도자사의 양축을 담당한 것이다.

중국과 한국 도자사의 중첩된 부분에 21세기 대한민국 청년 도공 오종보가 작업하는 조선 백자와 중국 청화백자가 있다. 이 글은 대한 민국 청년도공 오종보가 작업하는 조선백자와 청화백자의 세계 도자사의 차지하는 계보와 단순한 공예가 아닌 예술 작품으로서 작품의 미형식(美形式)을 설명하고, 그의 예술적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1) 세계 도자사(陶磁史)의 중심, 중국과 한국

고대 문명의 확산은 문화 연속설을 바탕으로 한 문명 이동설이 정론이다. 아침 태양이 뜨는 곳을 향한 동진으로 그 경로는 1)해안로, 2)오아시스로, 3)초원로로 나뉜다.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각 간선의 주요 특징이 바로 토기나 도기(陶器)이동 경로로 구분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 문화는 주로 초원길을 통해 전래되었으며, 도기에 색을 입힌 채도 문화는 오아시스로를 통해 동북아로 인입 되었다. 따지고 보면 고대 인류의 문명의 이동에 대한 결정적 증거는 토기나 도기에 의해 좌우된 것이다. 그만큼 토기와 자기는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의 토기와 도기(陶器) 문화는 구석기 시대 단순 점도 높은 진흙과 풀과 같은 유기물을 섞어 만든 제주 고산리 토기를 시작으로, 신석기 시대에 중앙아시아 초원으로부터 시베리아, 몽고를 거쳐 들어온 빗살 무늬 토기, 청동기 시대의 각종 동기와 무문토기, 그리고 가야, 신라, 백제의 다양한 도기(陶器)를 통해 그 우수성이 입증되었다.

도기(陶器)와 자기(磁器)의 구분은 1,300도 이상의 고열로 가열하면서 나뉜다. 1,300도 이상이면 번목의 나무재가 녹아 자기의 표면에 유리질을 형성시켜 방수 기능을 부가한 경질(硬質)자기이고, 그보다 낮은 온도로 구우면 연질 도기가 되는 것이다. 고대 가야의 도기 표면에서 이미 나무재가 녹아 이미 자기의 특성을 지닌 흔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자기 기술의 시발점은 중국 본토나 한반도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한국 도자(陶磁)의 독창성

우리의 우수한 토기 및 도기 문화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도기(陶器) 1,300도 이상의 고열을 가해 구워낸 자기(磁器) 문화, 특히 청자는 중국에서 습합(習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론(異論)은 존재하지만 9세기 후 삼국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에 당시 황금기를 구가하던 당의 월주요로 부터 전래되었다는 것이 유력설이다. 신안 앞바다의 무역선에 실린 원대의 중국 청자가 청자의 원산지가 중국이라는 방증이다.
 
비록 청자 제작법은 중국에서 왔지만 창의력을 발휘하여 전 세계 유래없는 상감 기법을 적용한 독창적인 고려청자를 개발하였다. 이후 원의 수탈과 와 왜구의 침탈로 인해 쇠퇴한 관요의 청자 대신 관의 규제 없이 비교적 자유로운 예술적 특징을 지닌 민간요의분청사기또한 전 세계 도자사(陶磁史)의 한 축을 세웠다.

3) 유럽을 흔든 중국의 청화백자
 
청자 이후 중국은 청화 백자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 청화 백자가 18세기 유럽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특히 1717년 동양 도자기를 열정적으로 사랑한 신성로마제국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2세는 중국의 청화 백자 151점을 받는 조건으로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과 정예 창기병 600명과 교환하기도 한다.

이후 이 청화 백자는 하얀 금으로 불리며 강건왕으로 하여금 유럽식 자기(磁器) 개발에 집착하게 하여 이윽고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라는 연금술사가 통해 경질 자기를 개발하게 된다. 오늘날 마이센 도자기가 바로 그것이다.

4) 일본 도자의 유럽 진출

청화백자의 유럽 수출을 담당해 왔던 중국이 명청 교체기에 혼란해진 틈을 타 1659년 일본은 처음으로 아리타현 에나멜화가 그려진가키에몬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통해 유럽에 수출한다. 임진왜란 후 끌려간 조선 도공들의 후손들이 만든 자기들이다. 당시 유럽 무역의 중심지였던 플랑데르를 통해 전 유럽에 공급된 일본의 도자기를 접한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이 일본 도자기인 '가키에몬'을 사랑한 나머지가키에몬도자기들로 별도의 궁전을 꾸미기까지 했다.

이렇듯 세계 도자사를 보면 한국 도자기는 독창적이고 예술성이 강한 것에 비하여 세계 도자사에서 소외되어 있어 다소 억울한 측면이 많다. 이에 21세기 대한민국 청년도공 오종보가 유럽을 흔든 중국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은 조선 청화백자와 순백자에 방점을 찍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세계도자사의 대표적인 조선 청화백자와 순백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상감기법이 접목된 독창적인 청화백자 작품과 양구 백토의 순백자로 선대 도공들이 못다한 한을 풀고, 늦었지만 한국 도자사를 세계 속에 제대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2. () 상감기법의 청화 백자와 양구(陽溝) 백토로 만든 순백자

  1) () 상감기법

오종보는 드물게 고등학교부터 도예에 입문한다. 어릴 적부터 미술계에 계신 부친의 영향으로 무엇이든 손으로 만지는 것을 좋아하던 소년이 드디어 이른 시기에 조형 교육에 입문 한 것이다. 이어 오종보는 2008년 한국도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예술 조형대학, 동 대학원 도예학과를 졸업하고 강원도 양구 백자 박물관의 학예사로 일하고 있다. 오종보의 석사 논문은 ()상감을 응용한 청화백자 항아리 제작에 대한 연구. 기존의 정형화된 문양 상감에서 탈정형하여 면이 아닌 선()에 상감을 입힘으로써 청화 백자와 조선백자의 조합을 독창적으로 풀어냈다. 고려의 상감과 중국 청화백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 양구(陽溝) 백토로 제작한 오종보의 순백자

오종보의 모든 작품은 강원도 양구군에서 출토되는 백토에서부터 시작된다. 한반도 맨 동쪽 끝 양구군(楊口郡)의 옛 고구려 지명은 볕 , 도랑 자를 쓴 양구(陽溝). 즉 볕이 잘 드는 시냇가란 의미다. 양구는 북한강 상류 지류가 있는 곳이다. 양구는 순우리말의 음차이므로 별 의미는 없지만, 유라시아 전역을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극서 지역은 포르투갈 리스본이고, 서양에서 보면 극동이 바로 양구다. 유라시아 대륙을 통틀어 아침 해, 즉 태양의 기()를 가장 먼저 맞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조선 왕실에서도 이점을 높이사 왕실의 음식과 연회 전담 부서인 사옹원 분원을 경기도 광주에 설치하고 왕실에 소요되는 모든 백자를 만들었다. 비록 번목 때문에 관요를 매 10년마다 광주 지역 내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백토는 광주 백토와 강원도 양구에서 북한강 수계인 수로를 통해 관납된 양구 백토를 사용하였다. 양구는 북한강 수계의 상류지점에 자리 잡아 가능했던 일이다. 양구 백자 박물관의 학예사인 오종보도 바로 이 양구 백토로 작업을 한다.

청화백자의 제작 과정은 부드러운 양구 백토로 만든 태토를 1차 소성 구이로 구워낸 다음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려 넣는다. 오종보는 코발트 안료의 접착력을 높이기 위해 안료에 백토를 참가하기도 하며, 때론 선명한 발색을 위해 코발트 안료에 산화철을 첨가하기도 한다. 이후 투명유를 덧칠하고 2차 재벌 소성하면 비로소 하얀 백자 위에 푸른 장식이 들어간 청화백자가 완성되는 것이다.

조선 왕조에서 사용하는 청화백자는 처음엔 주 무늬인 회화적 무늬와 그 배경이 되는 종속 무늬가 나타나더니 이후 종속 무늬는 사라지고 회화 무늬만 나타난다. 한편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사대부의 순백의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일체의 무늬가 없는 순백색의 달 항아리가 선호 되었다. 오종보는 이러한 조선의 청화백자와 순백자에 선()상감기법을 적용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종보가 선()상감기법과 양기 가득한 양구 백토로 분출하고자 하는 그의 예술적 욕망, 즉 미의식(美意識)은 무엇인가?

3. 오종보의 자기는 인류의 생존과 번성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미술과 공예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와 술()을 구분해야 한다. ()는 작가의 미적 욕망이 담긴 미의식(美意識)이고, ()은 그런 미의식이 담긴 미형식(美形式)이다. 따라서 작가의 예술적 욕망이 표현된 형태는 곧 미술 작품이 되지만, 작가의 미의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단지 완성도 높은 형태의 시각적 쾌만 준다면 단순한 공예품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종보의 백자와 청화백자가 단순한 공예품으로 단순한 쓰임새를 넘어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오종보의 미적 욕망, 즉 미의식의 탐구가 필수적이다.

1) 생존과 번성의 욕망을 충족하다

 한자 인 아름다울 미() 자는 양()이 크다()는 상형 자이다. 양이 크면 왜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면 미()의 시원(始原)에 대해 알게 된다. 척박한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에서 북방 민족의 생존과 번성에 지대한 기여를 한 것이 바로 양이다. 가죽과 고기를 주고 온순하며 다산으로 가축화할 수 있으며, 게다가 사람을 따라 멀리 이동까지 한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양이 크면 매우 특별하게 주목을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양처럼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특별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즉 그 원초적이고 특별한 느낌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문명을 구성하는 하위문화를 토기의 발전이나 이동 과정으로 정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시 인류는 지금 고릴라나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처럼 수렵과 채집 생활로 식량 저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농업혁명 이후 정주하게 되면서, 점차 인구가 늘고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식량을 보관하거나 저장하는 일 인류의 생존과 번성의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다. 토기와 도기, 그리고 자기는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매우 중요하여 매우 특별하게 느끼도록 진화된 것이다. 마치 양이 크면 아름답게 느껴지게 된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자기가 실사용기뿐만 아니라 아닌 관상용으로도 제작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오종보의 백자와 청화백자가 바로 그 원초적인 본능이자 욕망을 충족 시켜 주는 셈이다.   

2)
시훤미학과 백자

어둠은 원시 인류가 겪는 모든 공포의 총합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아서 불안하던 밤이 가고 아침이 밝아 광명의 세상이 오면 비로소 인류는 안심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이때 밝고 따듯한 태양이 뜨는 동쪽은 그야말로 선망과 동경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모든 인류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본능적으로 이동하게 된다.

BC11,000 전 간빙기가 시작되기 전의 중앙아시아는 알타이,천산, 힌두쿠시 산맥으로 가로막혀 아시아와 괴리되어 있었다. 중앙아시아 대 초원 동쪽의 거대한 설벽 너머로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곳이 바로 우리 민족의 시원인 환인국(桓因國)로 추정된다. 한단고기의 삼성기 하편에 환국의 시원에 대해 나와 있는데, 나반(那般)과 아만(阿曼) 사이에서 아리사타(阿耳斯)가 태어났는데, 이 아이샤타가 아사달(阿斯達)의 어원이다. 이것을 영어로 발음하면 바로 이스타(-isata)’가 되다. 오늘날 중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쓰고 있는데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키르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바로 그 설벽 아래 국가들이다.

아사달(阿斯達) 즉 아침 해가 뜨는 땅이라는 이스타는 거대한 설벽 산맥 위로 아침 해가 환하게, 또는 훤하게 떠오르는 '해 뜨는 동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순우리말로 밝은 터이며, 고대 그리스 알렉산더 시대에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박트리아라고 불렀다. 환인국의 환웅이 동점하여 지금의 만주벌판, 즉 또 다른 아사달에 세운 나라가 밝달국(배달국)이니 우리 민족은 태양을 숭배하는 환하거나 밝은 미적 욕망 즉 미의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 민족 고유의 시훤 사상이 탄생한다.

한국인은 다양한 상황에서 쾌()를 느끼면 되면 본능적으로시훤하다라고 말한다. 바람도 시훤하고 동치미국물도 시훤하다 심지어는 뜨거운 국물도 시훤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권선징악의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면 시훤함을 느낀다. 시훤은 갑갑한 마음이 풀려 상쾌함을 느끼거나 후련하거나, 높은 산에 올라 타트인 공간을 보면 느끼는 본능적인 쾌()이다.

시훤의 은 환의 음차(19부터 이 탈락하여 원이 된다) 밝고 훤한 태양이나 밝은 하늘을 상징한다. 이런 밝음과 환한 해와 하늘을 숭배하는 것이 고대 북방민족의 고유 신앙인 탱그리신앙이다. 여러 색을 섞으면 섞을수록 어두워짐에 비하여, 빛은 섞을수록 밝아진다. 흰색은 모든 자연 빛의 총합인 빛과 광명의 상징으로 곧 태양과 그 너머의 우주를 의미한다.

3) 청화 백자는 하늘색이다

태양을 뜻하는 하얀 백색과 더불어 우리에게 시훤함을 주는 또 다른 색이 있다. 바로 하늘을 상징하는 파란색이다. 따라서 태양과 하늘의 조합이 바로 청화백자다. 밝은 해와 파란 하늘이 완전하게 결합해야 비로소 온전한 우주가 되는 것이다. 오종보의 청화백자에 등장하는 의도적인 우연성은 바로 우리 우주의 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언뜻 보기엔 혼돈의 우주 같아 보이지만 이 혼돈마저도 질서 있게 배치되었다면 질서의 우주가 되기도 한다. 하얀 양구 백자 도판 위의 오종보의 탈 형태의 자유로운 점//면 도상들이 작가 자신만의 우주에 대한 표현이다.

오종보의 양구 백자와 청화 백자는 태양의 양기를 유라시아 대륙을 통틀어 가장 먼저 받은 양구에서 출토되는 백토를 가지고 만든다. 희다 희다 못해 푸른빛이 감도는 오종보의 백자 위의 코발트색 도상들은 모두 우리 고유의 시훤 사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와 하늘을 집안에 가져다 둘 수 없으니 대신 오종보의 백자와 청화 백자를 두는 것이다. 태양과 하늘, 그리고 우주를 집안에 놓고 즐기는 와유(臥遊) 문화의 전형이다.

4. 오종보 자기의 美的價値判斷

오종보의 예술 세계의 미적 형식을 담당하는 술() 분야는 이미 고등학교부터 도예에 입문하여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다른 도자기에 비해 달 항아리는 반원형의 두 개의 그릇을 만들고 그중 하나를 뒤집어 붙이는 업 다지기기법으로 제작하는 과정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불완전한 두 요소의 합일로 온전함을 이루는 동양의 음양 철학과 헤겔의 변증법인 정//합의 철학적 의미가 있다.

또한 전형적인 백자의 상징인 백자 대호의 업다지기기법은 전체는 항상 부분의 총합보다 크다는 게슈탈트 이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두 개의 불완전한 구의 접합은 실사용을 넘어선 관상과 와유의 대상까지 백자대호의 쓰임새를 확장한다. 분명 반구 두 개를 합한 것뿐인데, 이렇게 제작된 백자 대호는 고대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 태양과 하늘, 그리고 우주를 상징하는 것이다.

조선백자 대호의 제작 과정은 칸트의 취미판단 기준의 하나인 목적 없는 합목적성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반구 하나는 지향하는 목적이 없다. 단지 하나의 그릇일 뿐이다. 하지만 두 개의 반구가 서로 합일에 이르면 드디어 목적이 생겨난다. 단순히 어떤 것을 담아 두는 역할을 넘어 태양과 하늘, 그리고 우주를 방안으로 가져와 와유(臥遊)가 가능한 것이다.

오종보의 백자가 다른 이유는 단순히 기술의 축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미형식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기인하는 식량의 저장성에 대한 예술적 욕망을 태양과 우주의 승화 시켜 관상과 와유(臥遊)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의 청화 백자 또한 백자를 바탕 삼아 코발트색 드로잉으로 과거의 청화백자에 등장하는 문양과 대상의 정형을 과감히 해체하거나 현재적으로 재해석하여 자연스럽게 배치한다. 이 또한 오종보의 7년 넘은 양구라는 자연 속에서 오종보 스스로 자연이 된 듯 백토와 더불어 산 기억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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