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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비평] 최서원 조회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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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視覺的 낯섬의 美學, 그리고 슈필라움[Spielraum]
작성자 장현근
등록일 2023-11-28 10:45:56
내용
1. 들어가며
   생존과 번성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은 우주의 섭리이고, 자연의 법칙이며, 神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본성은 사피엔스 공통의 유전자의 언어이며, 아울러 모든 예술가들은 이것을 ‘예술적 욕망’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예술가들의 원초적인 욕망이 분출된 결과물을 우리는 예술 작품이라고 하고, 그것은 회화 뿐 만 아니라 문학이나 영화, 음악, 사진과 같은 다양한 예술 장르로 표현됩니다.
   작가의 예술적 욕망이 분출된 작품은 작가 스스로 理性的이거나 合理的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의 근원은 이론적으로 설명이 불가한 본능과 욕망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학이나 비평은 작가를 대신해서 왜 작가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욕망의 세계에서 거닐며, 그것을 표출하는 작품 활동을 하는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으로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조자인 대중이 오롯이 작가의 작품 세계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대체로 작가의 예술적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은 미(美)로, 그리고 그 미의식이 표현된 결과물은 술(術)인 미형식(美形式)으로 구성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미술(美術)을 완성합니다. 작가는 욕망의 분출인 미의식(美意識)에서 출발하여 표현 양식인 미형식(美形式)으로 나아가지만, 관조자(觀照者)인 대중은 반대로 미적 형식의 관조를 통하여 작가의 예술적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을 찾아 작가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 갑니다.
     작품을 주의 깊게 감상하는 관조자(觀照者)의 입장에서 작가 최서원의 작품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술(術)의 영역인 미형식(美形式)부터 출발하여, 작가의 예술적 욕망이 분출의 근원인 미의식에 도달하는 경로를 선택해야 합니다. 작가 최서원은 우리 민족에게 이미 익숙한 민화를 현대적 재해석한 작품 활동을 합니다. 일시점의 원근법과 명암법을 해체하여 다차원의 관념적 공간을 구현함으로써 우리에게 ‘낯선 미적 형식’을 제시하며 시선을 포획합니다. 이를 통하여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욕망의 시원이자, 미의식의 총합인 현대적 유토피아인 ‘슈필라움’에 이르는 길을 보여 줍니다.

2. 시각적 낯섬의 미형식(美形式)
     미형식은 작가의 예술적 욕망을 효율적으로 분출하기 위해 일종의 도구입니다. 자연의 원형의 재현과 모방의 미형식에 치중했던 회화는 근대에 이르러 그 원형을 과감히 해체하는 탈정형으로 탈주합니다. 그동안 철옹성처럼 지켜지던 전통적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시점이 붕괴되어 오늘날 현대 미술에 이르렀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해 오던 회화가 과장과 축약 그리고 다시점의 비정형을 추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 일까요? 원형의 비례와 균형을 해체하는 것은 그렇게 형성된 ‘시각적(視覺旳) 낯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피엔스의 원초적 본성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정형, 탈정형을 통한 ‘시각적 낯섬’은 시선이 포획된 관조자로 하여금 각별한 관심을 갖게 만들고, 더 나아가 그 원형을 향한 보충적 환상을 유도합니다. 역설적으로 이렇듯 惡畵는 관조자(觀照者) 심상에 良畵를 구축합니다.
    미술 해부학 국내 최고 권유자인 조용진 교수에 의하면, 우리 조상들은 동쪽으로 이동해 오는 동안 거주지 환경과 기후에 따라 형성된 서로 다른 유전 형질을 우리에게 물려 주었다고 합니다. 주로 빙하기에 낮아진 해수면으로 개방된 해안로를 따라 이동해 온 남방계는 울창한 밀림 속의 효과적인 채집을 위해 근거리에 맞춰진 시각을 후대에 유전으로 물려 주게 됩니다. 명암이 없고, 원근감이 무시 되며,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하기에 특화된 부분시가 반영된 평면적이고 개념적인 성향이 유전적 형질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근거리에 시(視) 감각을 DNA를 지닌 남방계는 필요 이상의 디테일한 미술적 표현이 가능해집니다. 특히 본적도 없는 세계를 주로 상상해서 그린 관념화에 능숙합니다. ‘보이는 대로’가 아닌 ‘상상하는 대로’ 그린다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유라시아 대평원으로 이동한 간 인류의 조상들은 울창한 밀림 대신 탁 터진 초원을 마주하고 채집대신 수렵에 유리한 시각을 가진 북방계는 부분시(部分視) 가 아닌 눈앞의 풍광 전체를 조망하는 전체시(全體視)를 갖게 됩니다. 덕분에 명암법, 원근법 등 공간감과 거리감에 특화된 시각을 가지고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는 유전적 특성을 보유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서양화가 일시점 원근법과 명암법의 북방계 미술의 고유한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원근법과 명암법으로 유전자를 장착한 북방 기마 유목들이 빙하기전 미리 이동해 정주해 있던 선주민인 남방계와 혼혈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민족은 이 두 미술적 형질의 DNA가 5천 년 넘게 치환된 유일한 민족입니다.
    작가 최서원은 이미 치환된 이 두 유전자 형질을 모두 보유하여, 북방계 뿐 만 아니라 남방계의 미적 형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매우 보기 드문 작가입니다. 최서원 작가가 미적 대상으로 인식한 전통 민화는 태생적으로 원근법과 명암법이 무시되는 전형적인 남방계 성향의 미적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화를 재현, 반복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작가 최서원은 북방계 특성을 더하여, 서양 회화의 원근법과 전통 민화의 역원근법은 물론 일시점과 다시점, 심지어 무시점인 평면성까지 자유 자재로 구사하여 3차원의 공간감을 극한의 2차원 평면적인 공간을 표현해 냅니다. 이처럼 미형식이 상이한 유전적 형질의 융합적인 구현은 작가 최서원이 전통 민화의 질료인 한지에 수묵이나 채색을 넘어서, 서양화의 재료인 캔버스나 아크릴 물감의 거리낌 없는 접목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모든 예술 작품은 시대를 각인합니다. 우리 전통 민화도 마찬가지로 조상들의 길상적(吉祥旳) 상징인 다양한 문양과 상징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민화의 존재 이유는 이 도상을 해석함에 있어 당시 시대 속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욕망을 충족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귀물들의 상징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중은 이를 소장하거나 관조하는 과정에서 그 욕망들의 직, 간접적인 충족과 해소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 상징들이 과거와 변화 없이 반복 재현된다는 것은 민화의 정통성을 감안하더라도 또 다른 전통의 모방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즉 현대는 이 시대에 맞는 상징성의 귀물이 등장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대중의 욕망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 최서원의 작품은 과거 전통적인 민화를 배척하지 않고, 이것을 다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현대적 길상(吉祥)의 상징인 도상(圖像)과 그것을 표현하는 미적 형식의 융합을 시도한 한국 최초의 작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이상향에 대한 미의식(美意識), 슈필라움[Spielraum]
    작가 최서원이 원근법과 명암법을 해체하고 평면성을 강조한 우리 전통 민화를 차용한 상태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공간을 재구축합니다. 구석에서 중앙을, 위에서 아래를, 그리고 아래에서 위를 보는 공간의 분할과 해체를 다시 한 화면에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미형식(美形式)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낯섬의 미형식’을 통하여 분출하려고 한 작가의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은 무엇일까요? 
    작가가 인간의 미의식(美意識)의 영역에 속하는 ‘생존과 번성’이라는 원초적 본능이 현대적으로 재해석 된 예술적 욕망으로 치환되어, 작품 속에 표현된 모든 길상의 상징들은 바로 이 시대를 갈음 하는 욕망의 대체물들 입니다. 비록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다양한 시대적 욕망들이 함축되거나 암시(暗示)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 동진의 고개지의 ‘형(形)으로써 정신(神)을 묘사해야 한다(以形寫神)’와 심상(心象)에 의존해야지 단순히 눈에 의존하는 외형모사는 천박하며, 의(意)가 붓보다 앞서야 그림이 끝나도 의(意)가 남는다(意存筆先 畵盡意在)는 중국의 의경미학(意境美學)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특히 작품 속 모든 길상의 상징들이 가리키는 곳, 즉 모든 욕망들의 총합이 바로 ‘슈필라움’입니다. 슈필라움은 개인의 독립된 은밀한 유희 공간입니다. 현대 사회내의 대중은 집단의 생존과 번성을 위하여 스스로를 규제하는 다양한 법률이나 규칙, 도덕과 윤리 때문에 인류가 태초부터 가졌던 원초적 자유 본능이 절제되고 그 욕망이 억압 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중에게는 일종의 탈주처나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할 이상향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억제된 자유 욕망이 분출되고 해소되는 ‘슈필라움’ 이 바로 그 이상향입니다. ‘슈필라움’에서 작가가 예술적 욕망을 분출할 때, 그리고 관조자는 작품을 통하여 원초적 자유 욕망이 완성될 때, 비록 그곳이 실질적 공간이 아닌 2차원의 환상의 공간일지라도 온전한 쾌(快)를 느끼게 됩니다. 특히 작가 최서원의 작품인 ‘슈필라움’ 의 쾌(快)는 단순한 쾌를 넘어선 새로운 창조의 원천이자 강력한 에너지원이며, 이것은 작가가 관조자에게 주는 창조의 욕망을 해소시키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4. 결론
   우리는 원초적 본능 상태에 노출되어 그 욕망이 충족되거나, 억제된 욕망이 해소될 때 쾌(快)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 최서원은 우리에게 현대적으로 재해석 된 민화를 통하여, 억제되어 있던 현대인의 원초적 자유 욕망들을 ‘슈필라움’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해소시켜 줍니다. 작가의 ‘슈필라움’에서 대중은 단순한 위로와 안식, 그리고 쾌(快)을 넘어선 재창조의 유희공간으로써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대중의 소유할 수 없는 욕망을 해소 시키는 작가의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은 작가 자신 뿐만 아니라 관조자인 대중에게도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 숭고한 예술가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작가 최서원은 자신의 예술적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을 공간을 자유자재로 해석하고 재구성한 미형식(美形式)으로 완벽하게 치환합니다. 작가의 예술적 욕망이 제대로 분출된 것 입니다. 한 화면에 여러 시점이 난무하는 다차원의 공간이 창조되고, 조명에도 그림자가 없는 비현실적인 공간감이 연출 되며, 원근법과 역 원근법의 교차로 시각적으로 매우 ‘낯선 화면’ 구성은 ‘파격적인 원색’과 함께 관조자의 시선을 포획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만의 이상향인 ‘슈필라움’을 갖게 합니다. 작가의 욕망이 비로소 대중에게 이식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진보는 과거의 전통을 전복하는 과정에서 잉태됩니다. 우리 고유 문화 유산 중의 하나인 민화는 그 자체만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만약 우리가 전통에 얽매이면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바야흐로 전 세계적으로 K-신드롬이 불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것만으로는 세계적인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K-미술도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융합이 대안입니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북방계와 남방계의 고유의 미술적 DNA형질을 보유한 작가 최서원이 풀어낼 미래의 작품세계 또한 사뭇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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