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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장현근     작가명 : 최소리
조회 1003        20240205
[최소리 비평] -파토스(Pathos)적 공명(共鳴; resonance)과 접화(接化)된 연금술(Alchemy)-
 최소리 비평 -파토스(Pathos)적 공명(共鳴; resonance)과 접화(接化)된 연금술(Alchemy)- 1. 소리를 넘어 원시적 자유 욕망을 분출하다 최소리는 동네에 온 약장수 풍각쟁이의 등에 짊어진 북소리에 빠져 그를 따라 가출한 10살 이후 정규 공교육을 제대로 받아 본적이 없다. 예술가로서 천운을 타고난 셈이다. 태초부터 무한 자유 욕망을 내재한 채 진화한 사피엔스는 그 욕망을 억압하는 일체의 규제에 저항해 왔다. 특히 예술가들이 그렇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공교육은 표준화를 양산할 뿐이다. 예술가로서 최소리의 시작은 이렇게 억압에 저항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최소리는 이렇게 풍각쟁이 북소리에 미쳐 정규 교육 과정에서 이탈한 상태로 세상 속에 파묻혀 모든 물성을 가진 물체를 두드리며 그것들이 내는 소리 파장에 공명하며, 그가 두드리며 낸 소리 파동이 공기의 밀도를 밀어내며 물결 모양의 파장을 만들어내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못 보고 그만이 오롯이 오관을 통해 볼 수 있는 파동의 무늬였다. 잘 아시다시피 한국 유명 락밴드인 백두산의 메인 드러머를 넘어서, 이미 북소리 하나만으로 광저우 아시안 게임, 벤쿠버 동계 올림픽 개폐회식에서 한국의 소리로 전 세계인을 공명시킨 최소리는 이미 수십 년을 타악기인 북과 접화된 상태에서 북소리와 공명하며 살아왔다. 살아 숨 쉬는 시간 절반이 파토스 상태, 즉 광기와 도취와 삼매의 신명난 삶으로 작가 스스로도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상태에서 크고 작은 북을 쳐 세계를 공명 시켰다. 그때마다 대중은 못 보고 그의 눈에만 보이는 기의 흐름, 즉 북소리의 파장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 만 명의 사람들을 휘어 감아 그들의 세포 속 빈 공간을 공명시킬 때, 최소리는 문득 그의 눈에만 보이는 그 소리의 파장을 영구히 시각화하기로 결심을 한다. 그가 방출한 소리의 파동은 진원지를 이미 떠나 먼 우주 공간으로 사라지는 과정에서 그가 가졌던 응어리와 한은 비록 정화되었지만, 그를 떠난 소리 파동이 남긴 빈 공간의 공허함이 함께 남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최소리는 파동이 휩쓸고 가며 남긴 자국과 흔적을 격정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미술 정규 교육 과정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최소리 스스로 공명된 상태, 즉 파토스와 신명의 상태에서 느꼈던 삼매와 몰아의 감정들인 광기와 도취, 공포 그리고 격정과 황홀경, 심지어는 극한의 슬픔의 정서가 응어리진 한까지…. 비록 그것들이 소리가 아닌 시각으로 표현되었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 소리가 공명되며 내는 파장이 들리는 환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공감각이라고 한다. 최소리가 염원하던 소리를 보여주고자 했던 욕망은 평면 화폭의 조형미로 실현되어 우리는 드디어 소리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글은 공연과 같은 시간 예술은 신명에 이르는 그 효과가 즉흥적이지만 지속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소리의 공명을 통하여 세계를 정화시킨 선험적 메카니즘을 가진 최소리가 시각예술인 회화의 영역에서 그의 예술적 욕망을 분출하는 또 하나의 공명에 대한 글이다.   나는 최소리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품을 창조할 때 그의 내면에 격동했던 감정선을 찾아 그의 파토스적 공명으로 격동하는 미의식(美意識)을 탐구할 것이다. 또한 그의 격정적인 미의식이 표현되는 독창적이고 희소하며, 자연과 접화된 연금술인 미형식(美形式)에 대해 기술하고, 이렇게 나타난 결과물인 작품에 대한 미적 가치를 판단할 것이다. 2. 파토스적 공명으로 본 최소리의 미의식(美意識) 1) 예술적 욕망의 근원-미토콘드리아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대한 욕망은 다분히 유전적인 것으로 그 기원은 20억년 전 원시 진핵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다. 미토콘드리아는 우리 몸 속 각 세포 내에 300~400개씩 총 1경개가 존재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우리 몸 속에서 ATP형태의 에너지 저장 장소이며, 성을 구별하고 유전자 번식을 주도할 뿐만 아니라 세포를 자살시켜 노화나 죽음을 관장하고 있다. 즉 우리의 원초적인 본능을 조종하여 생존과 번성에 관계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불변하기 때문에 크게는 우주의 섭리, 자연의 법칙, 종교적으로 보면 신의 의지의 일종이고, 철학적으로 보면 참 진리(眞理) 이지만, 작게는 생존과 번성에 대한 사피엔스의 원초적 욕망 정도로 볼 수 있다. 모든 사피엔스는 공히 이 미토콘드리아를 체내에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의 ‘생존과 번성’, 그리고 ‘유대와 연대’에 관한 원초적인 욕망은 인류 공통의 유전자 언어다. 예술은 바로 이 원초적인 욕망에서 파생되기 때문에 이것을 모든 예술가들은 ‘예술적 욕망’이라고 부르고 모든 사피엔스는 이 유전적인 언어이자 원초적 욕망을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최소리가 그의 퍼모먼스를 통해 전 지구인과 쉽게 공명하는 이유다. 2) 최소리의 미(美)적 욕망의 탄생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고대 한국의 문자인 한문의 미(美)는 양(羊)자와 대(大)가 조합된 상형자이다. 무엇이 큰 양이 아름답도록 느껴지도록 했는지를 알면 미(美)의 시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빙하기의 북반구에 진출한 고인류는 채집 위주의 남방계와 달리 수렵이 강력한 생존 도구였으나, 인구의 증가에 따른 수렵 대상 동물들의 고갈은 필연적으로 동물의 가축화를 유발했다.    여러 가축의 대상 중에서 양(羊)은 털과 가죽, 그리고 젖과 고인류의 생존에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인 고기를 제공했으며, 특히 사납지 않고 온순했으며 장거리이동이 가능했고 마지막으로 다산(多産)의 상징이었다.    즉 큰 양은 한민족의 조상인 고대 북방 기마 유목 민족의 ‘생존(生存)과 번성(蕃盛)’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따라서 큰 양의 상형자인 아름다움의 ‘미(美)’는 인류의 ‘‘생존(生存)과 번성(蕃盛)’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 ‘큰 양’에게 인류가 특별한 관심을 유발하는 매우 독특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름다운 미(美)의 시원(始原)은 미(美)가 형성된 배경을 볼 때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시각적인 쾌(快)를 주는 것 만이 아닌, 바로 인류의 ‘생존(生存)과 번성(蕃盛)에 도움이 되는 쾌(快)와 불쾌(不快)의 감정을 표현한 모든 긍정적 또는 부정적 기제라는 것을 확장해서 유추 할 수 있다. 큰 양이 그랬듯이 단지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관계없는 공포, 슬픔, 고통, 상실, 훼손, 고독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기제들도 인류의 ‘생존과 번성’, 그리고 ‘유대와 연대’에 필요한 것이라면 미(美)의 범주에 포함해야 마땅하다. 즉 인류의 생존과 번성 그리고 연대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것이든 아름다운 것이다 3)생존과 번성의 절대적 요소인 유대와 연대 가. 생존 본능     우리의 생존 본능은 바로 눈앞의 현존하고 급박한 위험으로부터  회피하여 살아 남으려는 욕망이다. 이때 작동 되는 기제들이 바로 죽음과 신체 훼손에 대한 공포 및 고통, 상실과 이별에 대한 슬픔 등이 그것이다. 생존 본능은 주로 불쾌의 감정들로 미술에서는 추미(醜美)/숭고미 등으로 발현된다. 미술사의 거장들의 작품 중에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작품들이 명작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나. 번성 본능   일단 우리가 현존하는 위험으로부터 생존에 성공했다면, 그 다음의 목표는 자신의 종의 유전자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이때 발현되는 원초적인 본능인 번성 욕망은 전술한 바와 같이 미토콘드리아가 관장하며 주로 긍정적인 감정 기제들인 사랑(SEX)/행복/기쁨 등이 포함된다. 이때 발현되는 것들이 즐거움을 주는 쾌(快)의 감정들로 미(美)/우아미 등으로 표현된다.  다. 북소리와 유대와 연대 본능  선천적으로 나약했던 원시 인류는 생존과 번성을 위해 집단을 구성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집단적 욕망은 주로 집단 내 유대와 연대 본능으로 구현되는데, 고대 서양의 ‘디오니소스 제전’과 우리 한민족은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迎鼓]같은 상고 시대의 제천행사로 나타났다.특히 부여의 영고[迎鼓]는 다른 제천행사가 모두 10월에 열리는 것에 비하여 12월에 열리는데, 이는 농경을  업으로 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수렵과 유목이 주업인 까닭이다. 만주 벌판을 내달렸던 수렵 기마 민족의 기상을 북돋는 데에는 파장이 길며 낮게 깔려, 지평선 너머까지 멀리 공명시키기에 혁고[革鼓]만한 것을 없었을 것이다. 둔탁하게 낮게 울리는 북소리는 그 파장이 길어 듣는 사람 모두의 가슴을 공명시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단시간에 집단 파토스 상태를 유발한다. 전쟁터도 아닌 생존과 번성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인 연대와 유대의 축제 마당인 제천행사에서의 북소리는 그 행사의 이름을 영고[迎鼓]라 했을 정도로 상징적이었으며, 집단 내 구성원을 공명시켜 집단 파토스 상태로 이끌어 유대와 연대 의식을 고취시켰다. 3. 접화(接化)된 연금술(Alchemy)로 본 최소리의 미형식(美形式) 빅뱅 이후 형성된 우주 화구가 점차 식어가자, 이때 방출된 전자기파는 주파수가 높은 감마선, 엑스선, 자외선, 그리고 우리의 눈으로 관찰 가능한 가시광선, 적외선, 전파 순으로 지구에 도달한다. 그런 전자기파 중에 빛은 진공 상태에서도 파동으로 전파되지만, 오직 소리 만은 공기의 밀도에 따라 생성되는 파동으로 인간의 오관 중 청각과 촉각을 통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10의 28승 개의 원자 속 빈 공간에서 공명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 내 빈 공간에서의 공명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우리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공포, 슬픔, 연민, 긴장,상처 같은 부정적 기제들을 격한 감정 유발, 즉 공명을 함으로써 몸 밖으로 배설하는 카타르시스[Katharsis]대해 이야기 했다. 일종의 정신적 승화 및 정화 작용으로 우리는 이 과정이 끝나면 묘한 쾌감과 개운함을 느끼거나, 슬픔이 사라지는 효과를 경험하게 되는데, 최소리는 파토스[Pathos]상태에서 우리 몸 안의 빈 공간을 관통하는 전자기파에 자신의 예술적 욕망(집단 파토스 상태로 공명시켜 유대와 연대감 고취시키려는 염원)을 담아 공명으로 증폭 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정화하여 이때 발생되는 쾌감으로 보상 받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증폭된 파동을 받는 관객 또한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음의 진동과 파장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함께 공명시켜 응어리진 한(恨)과 슬픔이 풀어진 신명(神明)난 상태로 가야 비로소 마음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그 파동을 받아 공명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최소리가 파동을 증폭시켜 방출할 때 관객 또한 그 파동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최소리와 같은 수준의 대역에 파동 주파수를 연 파토스 상태여야 오롯이 그 감동의 파동을 받아 상호 공명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감동받았다고 한다. 영국의 정신 분석학자 M.클라인은 이성적인 로고스[Logos]에서 무의식 상태에 접어들기 힘든 어린이를 대상으로 ‘유희 요법’이라는 처방으로 치료를 했는데, 부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대한 의도적인 저항 때문에 어린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유희적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즉 몰입 즉 파토스 상태에 이르게 한 뒤 치료한 것이다. 이 ‘유희 요법’은 비단 어린이만 해당 되는 것은 아니라, 어른들도 축구나 야구를 응원할 때, 또는 영화나 공연을 보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러 전시장에 들리는 등 약간의 사전 준비와 환경만 조성되면 누구나 쉽게 공명이 가능한 파토스 상태에 이를 수 있다. 1) 소리와 빛의 입자 파동이론 만물을 무한소로 쪼개면 원자가 나오고, 그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중성자, 그리고 그 주위를 구름처럼 떠도는 음전하로 나눠진다. 그 중 원자 속에 존재하는 핵의 크기는 원자 전체 크기의 10만 분의 1정도 매우 작고, 그 나머지 공간은 전자 구름이 채우고 있어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는 빈 공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최근에 진전된 과학 기술의 힘으로 원자핵 내의 양성자와 중성자는 그보다 훨씬 작은 쿼크와 힉스와 같은 미립자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심지어 물성을 가진 물체뿐만 아니라, 뇌파와 빛, 그리고 소리 같은 전자기파도 무한소인 미립자 알갱이들로 나뉘며, 그 미립자들이 물결 모양의 파동을 통해 다른 원자내의 빈 공간에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즉 소리가 담긴 음악도, 가시광선의 반사로 인한 회화도 같은 파동 입자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파동화된 소리나 빛의 입자들이 감상자의 몸에 자국을 남긴다는 의미는 바로 상대편에서 보낸 파동이 감상자의 몸 안의 빈 공간에서 감상자 자신의 파동과 뒤엉켜 일으키는 공명을 말한다. 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몰려오는 이런 파동 때문에 우리는 예술 작품을 통해 벅찬 감동 혹은 전율과 소름을 느끼는 것이다. 최소리는 이미 타악 소리 파동으로 지구인의 세포를 공명시킨 경험이 많다. 이제 그 공명을 연금술로 단련된 동판이나 알루미늄 화폭에 녹음하여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2) 감동 전달 매커니즘으로서 ‘거울 뉴런 이론’  영장류인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는 행동을 할 때 그 원숭이 뇌의 특정 부위의 뉴런이 활성화되는데, 다른 장소에서 시간차를 두고 그 영상을 지켜보는 다른 원숭이들까지 뇌에 '동일한 뉴런'이 활성화는 현상을 ‘거울 뉴런 이론’이라고 한다. 이 이론은 해당 개체 입장이 되어 그 개체가 행동하거나 사고할 때 마치 자신이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비슷한 기분을 자각하는 것으로 거울 뉴런 이론은 모방과 학습을 통해 인간의 사회성 구축을 설명하는데 유익한 교육이론이지만, 미술 작품 감상을 포함한 각종 예술 감상에도 아주 유용한 이론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작가가 보고, 느꼈던 것을 표현한 작품을 지켜 봄으로써, 당시 화가의 두뇌에 발생했던 자극과 흥분이 전달되는 뉴런의 활성화가 감상자에게도 발생하는 것이다.   최소리는 이미 수없이 많은 타악 공연 퍼포먼스에서 삼매 상태에서 활성화된 최소리의 뇌 뉴런을 감상자 대중에게 공명시켜 집단 파토스 상태를 유발하여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결정적 기여를 할 ‘유대와 연대’를 이끌어 냈다. 이제 그 시간예술에서 조형예술로 방법을 달리 한 것뿐이다. 3) 최소리, 지리산과 접화하다 작가 최소리가 수년째 은둔하고 있는 지리산 청학동은 지리학적으로 지구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한반도의 모산(母山)이다. 특히 청학(靑鶴)동은 태평한 땅에서만 나타나서 운다는 전설의 새인 청학이 나타난다는 이상향이자 샹그릴라다. 이 청학(靑鶴) 또한 일겁(一劫)에 한번 나온다는 전설 속의 귀조이다. 최소리는 이 청학동의 무한무량의 시간 속에 뛰어들어 자연인 지리산에 흡수 동화되거나 응축되지 않고, 대등하게 맞서되 조화를 이루는 접화(接化)의 경지에 이른다.    대부분 작품의 밑그림은 대자연인 지리산의 사계가 그리는 것을 인내하며 지켜보다, 이윽고 때가 되면 이어 받아 작품을 완성한다. 이러한 접화는 사람과 자연이 각자의 존재를 서로 인정하는 한민족 고유의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최소리는 하늘과 땅 사이의 사람이 우뚝 서있는, 즉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무인(巫人)이자 메신저이다. 청학의 이상향을 세속인 서울로 이어주는 巫人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공감각으로 공명하고, 삼매에 빠져 신명나며, 접화를 통해 비로소 이상향인 청학에 이를 수 있다.   4) 자연과 접화된 연금술 고대 이집트의 야금술에서 시작된 연금술은 구리, 주석, 납 등의 비금속으로 금과 같은 귀금속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불가능한 원시적 화학기술이었다. 연금술이 비록 실패한 과학이었지만, 성공한 예술의 시금석으로 수많은 철학과 예술에 영감을 준 것이 사실이다.    현자의 돌이라는 연금술은 정작 과학에서보다 우리는 관념의 세계에서 생과 사, 빛과 어둠, 물과 불 같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 관계의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고 상호 의존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상호 교감하는 것이라는 철학적인 사고와 예술적 상상력에서 오히려 빛이 났다.    최소리 자신도 자연과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이뤘듯이 그의 작품 또한 이 연금술적 상상력이 발동한 것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결코 놀랍지 않다. 캔버스 천 대신 황동과 알루미늄 같은 비금속을, 위로는 지리산의 불과 공기, 아래로는 물과 흙의 4원소에 합금하여, 본래와 화학적, 물리적 성질이 전혀 다른 제 5원소인 작품을 만들어 낸다. 비록 아리스토텔레스의 5원소인 에테르나 바슐라르의 정신적, 언어적인 실천은 아니지만, 최소리의 ‘현자의 돌’은 실체와 물성이 있는 그의 작품들인 것이다. 대자연과의 접화를 통해 지리산의 물, 불, 공기, 흙 등 4원소가 각 원소의 독특한 물성을 각인한 비금속 화판에 연금술사인 최소리가 그의 예술적 욕망인 사피엔스의 생존과 번성을 위한 강력한 ‘유대와 연대’를 공감각적으로 분출하여 그만의 독특한 제 5월소를 창출했다. 4. 최소리 예술적 욕망과 미형식에 대한 미적 가치 평가 최소리는 지리산 청학동의 무한무량의 시간 속에 뛰어들어 때로는 스스로 그것의 찰나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대자연의 시간에 맞서면서 겁(劫)을 찰나(刹那)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 왔다. 시간 예술을 조형예술로 변환하는 실험적 작업을 한 것이다. 최소리는 지리산의 청학동이 품은 이 겁((劫)의 시간을 중간에 싹둑 베어낸 찰나(刹那)의 순간을 사계, 24절기, 12간지, 월화수목금토(日月火水木金土)등의 시간을 압축하는 작품으로 표현했다. 순환적이고 물리적이며 심지어 대자연의 시간인 크로노스[Kronos]를 재빠르게 잡지 않으면 놓치는 기회의 시간, 오직 최소리 만의 주관의 시간이고 특별한 시간인 카이로스[Kairos]로 포획하는 작업이다 포획 방법 또한 범상치 않았다. 일단 자연의 시간이자 겁(劫)의 시간인 지리산의 시간이 물, 불, 공기, 흙 등 4원소를 활용하여 스스로 스며들게 내버려 두었다가, 홀연히 탈취하여 최소리 자신의 시간을 강제로 소리로써 녹음하여 금속 화면에 그 찰나의 시간을 가둬버리는 격이다. 최소리는 이 과정을 음악을 작곡한다고 한다. 그에게 작품 하나는 마치 노래처럼 한 곡을 작곡한 것처럼 단위가 한 곡인 것이다. 이렇게 화면에 갇힌 최소리의 시간, 즉 소리 입자는 고스란히 태초의 우주 미세입자인 중성미자의 바다 위에 출렁이는 파동을 타고 엄습해와 우리의 세포핵을 뒤흔드는데 그것이 바로 작가와 작품을 통해 공명하는 것이다.   최소리는 일반 대중이 근접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겪은 격렬하고 충격적인 경험, 즉 쾌(快) 혹은 불쾌(不快)의 선험하고 그 경험을 복기, 재현, 표현함으로써, 그것을 대중과 공유하려는 욕망인 생존과 번성, 그리고 연대의 이타성이 최소리 예술의 본질이다. 물론 대중은 공유된 경험을 통해 감동을 얻고, 최소리의 이타적 욕망의 분출은 작품으로 구현된다. 그것이 음악이든 회화든 또는 강렬한 삼매의 퍼포먼스든 상관 없는 것이다 화극가무시문동원(畵劇哥舞詩文同源)! 미술과 연극, 음악과 무용, 그리고 시와 문학 등 모든 예술의 근원은 모두 한 시원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은 인류의 생존과 번성, 그리고 유대와 연대를 위해 인간의 본성인 욕망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렇게 예술을 통해 형성된 문화가 된 밈(Meme)이 오랜 세월이 지나 체화되면 유전적 형질인 진(Gene)즉, 유전자 언어가 되어 또 다른 예술의 형태로 발현된다. 어쩌면 인류 역사는 예술을 매개로 한 밈(Meme)과 진(Gene)의 상보작용을 자양분 삼아 발전해 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인간 본성에 관한 예술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표현할 술(術)에 따라 그것이 음악이든 회화든 문학이든 다양한 장르로 표출되어도 당연한 일이다. 최소리가 그것을 증명했다. 이렇듯 최소리의 장르와 매체를 초월한 공감각의 예술적 행위는 한민족의 미의식인 신명[神明]에서 찾을 수 있다. 신명은 합리적인 이성이 우리 뇌를 주관하는 때가 아닌 때를 말한다. 내 몸에서 내가 아닌 귀신이 나타나는 상태가 바로 신명[神明]난 상태다. 순식간에 삼매[三昧]의 일심불란(一心不亂), 무아지경, 몰아의 경지에 이르는 최소리는 대중을 신명난 한판으로 공명시켜 정신적으로 樂하게 만들고 육체는 興에 취하게 하는 특별난 재주를 가졌다.  상고시대부터 고대 인류는 이 신명난 상태를 절대적 일자(一者)인 하늘, 우주, 대자연과 접화하는 유일한 통로로 인식해 왔다. 우주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한국의 고대 철학 사상인 천지인[天地人]사상에는 우주와 소통하려면 천지를 이어주는 사람인 무인[巫人]의 존재가 필연적이라고 말한다. 누구보다도 신명난 상태, 즉 파토스의 경지에 쉽게 빠져들어 대중을 집단 최면 상태로 이끄는 최소리와 같은 무인(巫人;샤먼)을 말하는 것이다. 최소리는 이미 소리를 통하여 그의 신명을 공명시켜, 전 지구인을 집단 최면인 황홀경과 광란, 그리고 도취와 격정의 상태를 유발 시킨 경험이 셀 수 없이 많다. 그의 신명난 한판 소리는 그 자체가 무아지경, 몰아지경의 ‘興과 樂’의 공명으로 전 지구를 연대와 대동의 장으로 만들었다. 최소리는 즐겁고 행복한 樂의 정신적 상태와 어깨춤이라도 덩실거릴 육체적 興에 취하는 신명에서 파생된 樂&興이라는 한민족 고유의 미의식을 지닌 초유의 무인[巫人]이자 예술가이다. 그의 넘치는 에너지가 소리를 넘어서 그 소리를 보여주고 저장하여, 또 다른 미술 장르로 대중의 공감각을 공명시켜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절대적 기여를 하는 ‘유대와 연대’ 욕망을 조형의식으로 연금술화된 회화로도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예술가이다.   그의 예술적 욕망의 본질과 근원은 예술 장르에 상관없이 동일하며, 다만 구현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글은 이미 파토스와의 신명[神明]의 경지를 수시로 넘어본 예술가 최소리의 또 하나의 다른 예술적 욕망의 분출과 그가 창출한 제5원소인 ‘유대와 연대’에 관한 비평이다.     
글쓴이 : 장현근     작가명 : 오종보
조회 413        20240116
오종보 비평
 오종보 비평                                      장현근 1. 서설(序說)   세계 도자사(陶磁史)는 9세기부터 17세기까지 동북아시아의 중국과 우리 한민족 주도한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 가세하고 18세기에 이르고 나서야 기술이 유입된 유럽까지 확산하여 비로소 세계화가 된다. 특히 한민족은 비록 중국으로부터 도자기술을 유입했지만, 단순한 답습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창적인 ‘고려 상감 청자와 분청사기, 그리고 조선백자를 만든다. 중국과 함께 세계 도자사의 양축을 담당한 것이다. 중국과 한국 도자사의 중첩된 부분에 21세기 대한민국 청년 도공 오종보가 작업하는 ‘조선 백자와 중국 청화백자’가 있다. 이 글은 대한 민국 청년도공 오종보가 작업하는 조선백자와 청화백자의 세계 도자사의 차지하는 계보와 단순한 공예가 아닌 예술 작품으로서 작품의 미형식(美形式)을 설명하고, 그의 예술적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1) 세계 도자사(陶磁史)의 중심, 중국과 한국 고대 문명의 확산은 문화 연속설을 바탕으로 한 문명 이동설이 정론이다. 아침 태양이 뜨는 곳을 향한 동진으로 그 경로는 1)해안로, 2)오아시스로, 3)초원로로 나뉜다.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각 간선의 주요 특징이 바로 토기나 도기(陶器)이동 경로로 구분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 문화는 주로 초원길을 통해 전래되었으며, 도기에 색을 입힌 채도 문화는 오아시스로를 통해 동북아로 인입 되었다. 따지고 보면 고대 인류의 문명의 이동에 대한 결정적 증거는 토기나 도기에 의해 좌우된 것이다. 그만큼 토기와 자기는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의 토기와 도기(陶器) 문화는 구석기 시대 단순 점도 높은 진흙과 풀과 같은 유기물을 섞어 만든 제주 고산리 토기를 시작으로, 신석기 시대에 중앙아시아 초원으로부터 시베리아, 몽고를 거쳐 들어온 빗살 무늬 토기, 청동기 시대의 각종 동기와 무문토기, 그리고 가야, 신라, 백제의 다양한 도기(陶器)를 통해 그 우수성이 입증되었다. 도기(陶器)와 자기(磁器)의 구분은 1,300도 이상의 고열로 가열하면서 나뉜다. 1,300도 이상이면 번목의 나무재가 녹아 자기의 표면에 유리질을 형성시켜 방수 기능을 부가한 경질(硬質)자기이고, 그보다 낮은 온도로 구우면 연질 도기가 되는 것이다. 고대 가야의 도기 표면에서 이미 나무재가 녹아 이미 자기의 특성을 지닌 흔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자기 기술의 시발점은 중국 본토나 한반도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한국 도자(陶磁)의 독창성 우리의 우수한 토기 및 도기 문화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도기(陶器)에 1,300도 이상의 고열을 가해 구워낸 자기(磁器) 문화, 특히 청자는 중국에서 습합(習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론(異論)은 존재하지만 9세기 후 삼국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에 당시 황금기를 구가하던 당의 월주요로 부터 전래되었다는 것이 유력설이다. 신안 앞바다의 무역선에 실린 원대의 중국 청자가 청자의 원산지가 중국이라는 방증이다.   비록 청자 제작법은 중국에서 왔지만 창의력을 발휘하여 전 세계 유래없는 ‘상감 기법’을 적용한 독창적인 ‘고려청자’를 개발하였다. 이후 원의 수탈과 와 왜구의 침탈로 인해 쇠퇴한 관요의 청자 대신 관의 규제 없이 비교적 자유로운 예술적 특징을 지닌 민간요의’ 분청사기’ 또한 전 세계 도자사(陶磁史)의 한 축을 세웠다. 3) 유럽을 흔든 중국의 청화백자   청자 이후 중국은 청화 백자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 청화 백자가 18세기 유럽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특히 1717년 동양 도자기를 열정적으로 사랑한 신성로마제국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2세는 중국의 청화 백자 151점을 받는 조건으로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과 정예 창기병 600명과 교환하기도 한다. 이후 이 청화 백자는 ‘하얀 금’으로 불리며 강건왕으로 하여금 유럽식 자기(磁器) 개발에 집착하게 하여 이윽고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 라는 연금술사가 통해 경질 자기를 개발하게 된다. 오늘날 마이센 도자기가 바로 그것이다. 4) 일본 도자의 유럽 진출 청화백자의 유럽 수출을 담당해 왔던 중국이 명청 교체기에 혼란해진 틈을 타 1659년 일본은 처음으로 ‘아리타현 에나멜화’ 가 그려진 ‘가키에몬’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통해 유럽에 수출한다. 임진왜란 후 끌려간 조선 도공들의 후손들이 만든 자기들이다. 당시 유럽 무역의 중심지였던 플랑데르를 통해 전 유럽에 공급된 일본의 도자기를 접한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이 일본 도자기인 '가키에몬'을 사랑한 나머지 ‘가키에몬’ 도자기들로 별도의 궁전을 꾸미기까지 했다. 이렇듯 세계 도자사를 보면 한국 도자기는 독창적이고 예술성이 강한 것에 비하여 세계 도자사에서 소외되어 있어 다소 억울한 측면이 많다. 이에 21세기 대한민국 청년도공 오종보가 유럽을 흔든 중국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은 조선 청화백자와 순백자에 방점을 찍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세계도자사의 대표적인 조선 청화백자와 순백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선(線)상감기법’이 접목된 독창적인 청화백자 작품과 양구 백토의 순백자로 선대 도공들이 못다한 한을 풀고, 늦었지만 한국 도자사를 세계 속에 제대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2. 선(線) 상감기법의 청화 백자와 양구(陽溝) 백토로 만든 순백자   1) 선(線) 상감기법 오종보는 드물게 고등학교부터 도예에 입문한다. 어릴 적부터 미술계에 계신 부친의 영향으로 무엇이든 손으로 만지는 것을 좋아하던 소년이 드디어 이른 시기에 조형 교육에 입문 한 것이다. 이어 오종보는 2008년 한국도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예술 조형대학, 동 대학원 도예학과를 졸업하고 강원도 양구 백자 박물관의 학예사로 일하고 있다. 오종보의 석사 논문은 ‘선(線)상감을 응용한 청화백자 항아리 제작에 대한 연구’다. 기존의 정형화된 문양 상감에서 탈정형하여 면이 아닌 선(線)에 상감을 입힘으로써 청화 백자와 조선백자의 조합을 독창적으로 풀어냈다. 고려의 상감과 중국 청화백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 양구(陽溝) 백토로 제작한 오종보의 순백자 오종보의 모든 작품은 강원도 양구군에서 출토되는 백토에서부터 시작된다. 한반도 맨 동쪽 끝 양구군(楊口郡)의 옛 고구려 지명은 볕 ‘양’자, 도랑 ‘구’자를 쓴 양구(陽溝)다. 즉 볕이 잘 드는 시냇가란 의미다. 양구는 북한강 상류 지류가 있는 곳이다. 양구는 순우리말의 음차이므로 별 의미는 없지만, 유라시아 전역을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극서 지역은 포르투갈 리스본이고, 서양에서 보면 극동이 바로 양구다. 유라시아 대륙을 통틀어 아침 해, 즉 태양의 기(氣)를 가장 먼저 맞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조선 왕실에서도 이점을 높이사 왕실의 음식과 연회 전담 부서인 사옹원 분원을 경기도 광주에 설치하고 왕실에 소요되는 모든 백자를 만들었다. 비록 번목 때문에 관요를 매 10년마다 광주 지역 내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백토는 광주 백토와 강원도 양구에서 북한강 수계인 수로를 통해 관납된 양구 백토를 사용하였다. 양구는 북한강 수계의 상류지점에 자리 잡아 가능했던 일이다. 양구 백자 박물관의 학예사인 오종보도 바로 이 양구 백토로 작업을 한다. 청화백자의 제작 과정은 부드러운 양구 백토로 만든 태토를 1차 소성 구이로 구워낸 다음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려 넣는다. 오종보는 코발트 안료의 접착력을 높이기 위해 안료에 백토를 참가하기도 하며, 때론 선명한 발색을 위해 코발트 안료에 산화철을 첨가하기도 한다. 이후 투명유를 덧칠하고 2차 재벌 소성하면 비로소 하얀 백자 위에 푸른 장식이 들어간 청화백자가 완성되는 것이다. 조선 왕조에서 사용하는 청화백자는 처음엔 주 무늬인 회화적 무늬와 그 배경이 되는 종속 무늬가 나타나더니 이후 종속 무늬는 사라지고 회화 무늬만 나타난다. 한편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사대부의 순백의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일체의 무늬가 없는 순백색의 달 항아리가 선호 되었다. 오종보는 이러한 조선의 청화백자와 순백자에 선(線)상감기법을 적용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종보가 선(線)상감기법과 양기 가득한 양구 백토로 분출하고자 하는 그의 예술적 욕망, 즉 미의식(美意識)은 무엇인가? 3. 오종보의 자기는 인류의 생존과 번성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미술과 공예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美)와 술(術)을 구분해야 한다. 미(美)는 작가의 미적 욕망이 담긴 미의식(美意識)이고, 술(術)은 그런 미의식이 담긴 미형식(美形式)이다. 따라서 작가의 예술적 욕망이 표현된 형태는 곧 미술 작품이 되지만, 작가의 미의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단지 완성도 높은 형태의 시각적 쾌만 준다면 단순한 공예품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종보의 백자와 청화백자가 단순한 공예품으로 단순한 쓰임새를 넘어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오종보의 미적 욕망, 즉 미의식의 탐구가 필수적이다. 1) 생존과 번성의 욕망을 충족하다  한자 인 아름다울 미(美) 자는 양(羊)이 크다(大)는 상형 자이다. 양이 크면 왜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면 미(美)의 시원(始原)에 대해 알게 된다. 척박한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에서 북방 민족의 생존과 번성에 지대한 기여를 한 것이 바로 양이다. 가죽과 고기를 주고 온순하며 다산으로 가축화할 수 있으며, 게다가 사람을 따라 멀리 이동까지 한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양이 크면 매우 특별하게 주목을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양처럼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특별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즉 그 원초적이고 특별한 느낌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문명을 구성하는 하위문화를 토기의 발전이나 이동 과정으로 정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시 인류는 지금 고릴라나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처럼 수렵과 채집 생활로 식량 저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농업혁명 이후 정주하게 되면서, 점차 인구가 늘고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식량을 보관하거나 저장하는 일 인류의 생존과 번성의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다. 토기와 도기, 그리고 자기는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매우 중요하여 매우 특별하게 느끼도록 진화된 것이다. 마치 양이 크면 아름답게 느껴지게 된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자기가 실사용기뿐만 아니라 아닌 관상용으로도 제작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오종보의 백자와 청화백자가 바로 그 원초적인 본능이자 욕망을 충족 시켜 주는 셈이다.    2) 시훤미학과 백자 어둠은 원시 인류가 겪는 모든 공포의 총합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아서 불안하던 밤이 가고 아침이 밝아 광명의 세상이 오면 비로소 인류는 안심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이때 밝고 따듯한 태양이 뜨는 동쪽은 그야말로 선망과 동경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모든 인류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본능적으로 이동하게 된다. BC11,000 전 간빙기가 시작되기 전의 중앙아시아는 알타이,천산, 힌두쿠시 산맥으로 가로막혀 아시아와 괴리되어 있었다. 중앙아시아 대 초원 동쪽의 거대한 설벽 너머로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곳이 바로 우리 민족의 시원인 환인국(桓因國)로 추정된다. 한단고기의 삼성기 하편에 환국의 시원에 대해 나와 있는데, 나반(那般)과 아만(阿曼) 사이에서 아리사타(阿耳斯它)가 태어났는데, 이 아이샤타가 아사달(阿斯達)의 어원이다. 이것을 영어로 발음하면 바로 ‘이스타(-isata)’가 되다. 오늘날 중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쓰고 있는데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키르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바로 그 설벽 아래 국가들이다. 아사달(阿斯達) 즉 아침 해가 뜨는 땅이라는 이스타는 거대한 설벽 산맥 위로 아침 해가 환하게, 또는 훤하게 떠오르는 '해 뜨는 동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순우리말로 ‘밝은 터’이며, 고대 그리스 알렉산더 시대에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박트리아’라고 불렀다. 환인국의 환웅이 동점하여 지금의 만주벌판, 즉 또 다른 아사달에 세운 나라가 밝달국(배달국)이니 우리 민족은 태양을 숭배하는 환하거나 밝은 미적 욕망 즉 미의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 민족 고유의 시훤 사상이 탄생한다. 한국인은 다양한 상황에서 쾌(快)를 느끼면 되면 본능적으로 ‘시훤하다’라고 말한다. 바람도 시훤하고 동치미국물도 시훤하다 심지어는 뜨거운 국물도 시훤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권선징악의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면 시훤함을 느낀다. 시훤은 갑갑한 마음이 풀려 상쾌함을 느끼거나 후련하거나, 높은 산에 올라 타트인 공간을 보면 느끼는 본능적인 쾌(快)이다. 시훤의 ‘훤’은 환의 음차(19부터 ‘ㅎ’ 이 탈락하여 원이 된다) 밝고 훤한 태양이나 밝은 하늘을 상징한다. 이런 밝음과 환한 해와 하늘을 숭배하는 것이 고대 북방민족의 고유 신앙인 ‘탱그리’ 신앙이다. 여러 색을 섞으면 섞을수록 어두워짐에 비하여, 빛은 섞을수록 밝아진다. 흰색은 모든 자연 빛의 총합인 빛과 광명의 상징으로 곧 태양과 그 너머의 우주를 의미한다. 3) 청화 백자는 하늘색이다 태양을 뜻하는 하얀 백색과 더불어 우리에게 ‘시훤함’을 주는 또 다른 색이 있다. 바로 하늘을 상징하는 파란색이다. 따라서 태양과 하늘의 조합이 바로 청화백자다. 밝은 해와 파란 하늘이 완전하게 결합해야 비로소 온전한 우주가 되는 것이다. 오종보의 청화백자에 등장하는 의도적인 우연성은 바로 우리 우주의 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언뜻 보기엔 혼돈의 우주 같아 보이지만 이 혼돈마저도 질서 있게 배치되었다면 질서의 우주가 되기도 한다. 하얀 양구 백자 도판 위의 오종보의 탈 형태의 자유로운 점/선/면 도상들이 작가 자신만의 우주에 대한 표현이다. 오종보의 양구 백자와 청화 백자는 태양의 양기를 유라시아 대륙을 통틀어 가장 먼저 받은 양구에서 출토되는 백토를 가지고 만든다. 희다 희다 못해 푸른빛이 감도는 오종보의 백자 위의 코발트색 도상들은 모두 우리 고유의 ‘시훤 사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와 하늘을 집안에 가져다 둘 수 없으니 대신 오종보의 백자와 청화 백자를 두는 것이다. 태양과 하늘, 그리고 우주를 집안에 놓고 즐기는 와유(臥遊) 문화의 전형이다. 4. 오종보 자기의 美的價値判斷 오종보의 예술 세계의 미적 형식을 담당하는 술(術) 분야는 이미 고등학교부터 도예에 입문하여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다른 도자기에 비해 ‘달 항아리’는 반원형의 두 개의 그릇을 만들고 그중 하나를 뒤집어 붙이는 ‘업 다지기’ 기법으로 제작하는 과정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불완전한 두 요소의 합일로 온전함을 이루는 동양의 음양 철학과 헤겔의 변증법인 정/반/합의 철학적 의미가 있다. 또한 전형적인 백자의 상징인 백자 대호의 ‘업다지기’기법은 전체는 항상 부분의 총합보다 크다는 게슈탈트 이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두 개의 불완전한 구의 접합은 실사용을 넘어선 관상과 와유의 대상까지 백자대호의 쓰임새를 확장한다. 분명 반구 두 개를 합한 것뿐인데, 이렇게 제작된 백자 대호는 고대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 태양과 하늘, 그리고 우주를 상징하는 것이다. 조선백자 대호의 제작 과정은 칸트의 취미판단 기준의 하나인 ‘목적 없는 합목적성’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반구 하나는 지향하는 목적이 없다. 단지 하나의 그릇일 뿐이다. 하지만 두 개의 반구가 서로 합일에 이르면 드디어 목적이 생겨난다. 단순히 어떤 것을 담아 두는 역할을 넘어 태양과 하늘, 그리고 우주를 방안으로 가져와 와유(臥遊)가 가능한 것이다. 오종보의 백자가 다른 이유는 단순히 기술의 축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미형식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기인하는 식량의 저장성에 대한 예술적 욕망을 태양과 우주의 승화 시켜 관상과 와유(臥遊)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의 청화 백자 또한 백자를 바탕 삼아 코발트색 드로잉으로 과거의 청화백자에 등장하는 문양과 대상의 정형을 과감히 해체하거나 현재적으로 재해석하여 자연스럽게 배치한다. 이 또한 오종보의 7년 넘은 양구라는 자연 속에서 오종보 스스로 자연이 된 듯 백토와 더불어 산 기억 때문일 것이다.    
글쓴이 : 장현근     작가명 : 최소리
조회 180        20231129
[소리를 넘어선 또 하나의 공명(共鳴)]
만물을 무한소로 쪼개면 원자가 나오고, 그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중성자,그리고 그 주위를 구름처럼 떠도는 음전하로 나눠집니다.그 중 원자 속에 존재하는 핵의 크기는 원자 전체 크기의 10만 분의 1정도 매우 작고, 그 나머지 공간은 전자 구름이 채우고 있어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는 빈 공간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최근에 진전된 과학 기술의 힘으로 원자핵 내의 양성자와 중성자는 그보다 훨씬 작은 쿼크와 힉스와 같은 미립자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죠. 양자 물리학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원’은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물성을 가진 물체 뿐만 아니라, 뇌파와 빛, 그리고 소리 같은 전자기파도 무한소인 미립자 알갱이들로 나뉘며,그 미립자들이 물결 모양의 파동을 통해 다른 원자에 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자국을 남긴다는 의미는 바로 상대편에서 보낸 파동이 내 몸 안의 빈 공간에서 자신의 파동과 뒤엉켜 일으키는 공명을 말합니다.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몰려오는 이런 파동 때문에 우리는 예술 작품을 통해 진한 감동을 느끼는 것입니다. 빅뱅 이후 형성된 우주 화구가 점차 식어가자,이때 방출된 전자기파는 주파수가 높은 감마선, 엑스선,자외선, 그리고 우리의 눈으로 관찰 가능한 가시광선, 적외선, 전파 순으로 지구에 도달합니다. 그런 전자기파 중에 빛은 진공 상태에서도 파동으로 전파되지만, 오직 소리 만은 공기의 밀도에 따라 생성되는 파동으로 인간의 오관 중 청각과 촉각을 통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10의 28승 개의 원자 속 빈 공간에서 공명을 합니다.그렇다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 내 빈 공간에서의 공명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우리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공포,슬픔,연민,긴장,상처 같은 부정적 기제들을 격한 감정 유발, 즉 공명을 함으로써 몸 밖으로 배설하는 카타르시스[Katharsis]대해 이야기 합니다.일종의 정신적 승화 및 정화 작용으로 우리는 이 과정이 끝나면 묘한 쾌감과 개운함을 느끼거나, 슬픔이 사라지는 효과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술가는 파토스[Pathos]상태에서 우리 몸 안의 빈 공간을 관통하는 전자기파에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담아 공명으로 증폭 시킴으로서, 스스로를 정화하고 이때 발생되는 쾌감으로 보상 받습니다. 그 증폭된 파동을 받는 관객 또한 같은 경험을 하게 되지요. 음의 진동과 파장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함께 공명시켜 응어리진 恨과 슬픔이 풀어진 신명난 상태로 가야 비로소 마음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나 그 파동을 받아 공명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예술가가 파동을 증폭 시켜 방출할 때 관객 또한 그 파동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예술가와 같은 수준의 대역에 주파수를 연 파토스 상태여야 오롯이 그 감동의 파동을 받아 공명 할 수 있게 됩니다.영국의 정신 분석학자 M.클라인은 이성적인 로고스[Logos]에서 무의식 상태에 접어들기 힘든 어린이를 대상으로 ‘유희 요법’이라는 처방으로 치료를 했습니다.부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대한 의도적인 저항 때문에 어린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죠. 몰입 즉 파토스 상태에 이르게 한 뒤 치료한 것입니다. 이 ‘유희 요법’은 비단 어린이만 해당 되는 것은 아닙니다.어른들도 축구나 야구를 응원하거나, 영화 또는 공연을 보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러 전시장에 들리는 등 약간의 사전 준비와 환경만 조성되면 누구나 쉽게 공명이 가능한 파토스 상태에 이를 수 있지요. 인간의 뇌는 최초 파충류 때 형성된 밤 톨 만한 뇌간으로부터 외부로 진화를 하게 됩니다.뇌간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공격과 방어 행위 및 짝짓기 그리고 심장 박동과 호흡 활동 같은 생존과 번성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합니다.이후 포유류로 진화하게 된 인간의 뇌는 뇌간을 감싸며, 감정과 정서를 담당하는 변연계로 커집니다. 이윽고 영장류로 진화한 뒤에 비로소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그리고 영감이나 직관을 발현 할 수 있는 대뇌 피질을 갖게 되지요.우리의 대뇌 피질은 보다 많은 정보를 저장하기 위하여 마치 허파꽈리 처럼 진화합니다.이는 제한된 뇌 공간 내에서 보다 넓은 표면을 갖기 위한 신의 한 수인 셈이죠. 뇌 용량이 스스로 확장되는 방향으로 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과 번성에 필요한 정보가 급증하는 바람에 더 이상 자체 저장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양이 증가하자, 인류의 조상들은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바로 정보를 육체 밖으로 저장하는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마치 오늘날 블록체인[Block Chain]처럼 자기가 가진 소중한 정보를 타인의 뇌에 복사해서 붙여 넣어 공유하는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반드시 필요했던 집단 연대 및 유대 관계의 시작입니다.바로 이때 모여 집단적으로 필요했던 정보를 공유했던 방식이 오늘날 예술의 장르인 연극, 음유시, 회화, 춤, 음악의 탄생 배경입니다. 이런 집단 행사는 서양의 ‘디오니소스 제전’으로 발전되고, 우리 한민족은 고구려의 동맹,동예의 무천,부여의 영고[迎鼓]같은 상고 시대의 제천행사로 나타납니다.특히 부여의 영고[迎鼓]는 다른 제천행사가 모두 10월에 열리는 것에 비하여 12월에 열리는데, 이는 농경을 업으로 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수렵과 유목이 주업인 까닭입니다.만주 벌판을 내달렸던 수렵 기마 민족의 기상을 붇돋는데에는 파장이 길며 낮게 깔려, 지평선 너머까지 멀리 공명시키기에 혁고[革鼓]만한 것을 없었겠지요.둔탁하게 낮게 울리는 북소리는 그 파장이 길어 듣는 사람 모두의 가슴을 공명시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킵니다.단시간에 집단 파토스 상태를 유발하기에는 북소리가 최고의 방법이었을 겁니다.하물며 전쟁터도 아닌 생존과 번성의 정보가 공유되는 연대와 축제의 마당인 제천행사에서의 북소리는 그 행사의 이름을 영고[迎鼓]라 했을 정도로 상징적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미 소리 하나만으로 광저우,벤쿠버 올림픽 개폐회식에서 한국의 소리를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알린 작가 최소리는 이미 십 수년을 북과 접화된 상태에서 북소리와 공명하며 살아왔습니다. 살아 숨 쉬는 시간 절반이 파토스 상태, 즉 광기와 도취와 삼매의 신명난 삶이었죠.작가 스스로도 내가 나비인지..나비가 나인지 모를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상태에서 크고 작은 북을 쳐 세계를 공명 시켰습니다.그때마다 대중은 못 보고 그의 눈에만 보이는 기의 흐름, 즉 북소리의 파장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 만명의 사람들을 휘어 감아 그들의 세포 속 빈 공간을 공명시킬 때, 작가 최소리는 문득 그의 눈에만 보이는 그 소리의 파장을 영구히 시각화하기로 결심을 합니다.공연과 같은 시간 예술은 신명에 이르는 그 효과가 즉흥적이지만 지속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이미 소리의 공명을 통하여 세계를 정화시킨 선험적 메카니즘을 가진 작가 최소리가 시각예술인 회화의 영역에서 추구하는 또 하나의 공명을 과연 무엇일까요? 어린시절부터 소리에 미쳐 정규 교육 과정에서 이탈한 상태로 자연 속에 파묻혀 모든 물성을 가진 물체를 두드리며 그것들이 내는 소리 파장에 중독되고, 득음 아닌 득음을 한 작가 최소리는 그가 두드리며 낸 소리가 공기의 밀도를 밀어내며 물결 모양의 파장을 만들어내는 것을 온몸으로 느낍니다.우리는 못 보고 그만이 오롯이 오관을 통해 볼 수 있는 파동의 무늬이죠.소리의 파동은 진원지를 이미 떠나 먼 우주로 사라지자 비록 응어리와 한은 정화 되었다지만. 공허함도 함께 남는다는 것을 깨달은 작가는 첫 단계로 파동이 휩쓸고 가며 남긴 자국을 수묵 담채로 화폭에 담기 시작합니다.작가가 스스로 공명된 상태, 즉 파토스와 신명의 상태에서 느꼈던 삼매와 몰아의 감정들인 광기과 도취,공포 그리고 격정과 황홀경, 심지어는 극한의 슬픔의 정서가 응어리진 한까지…비록 그것들이 소리가 아닌 시각으로 표현되었지만,우리는 소리가 공명되며 내는 파장을 들리는 환청을 경험하게 됩니다.바로 공감각이라는 우리 인체의 오묘함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이렇게 그가 염원하던 소리를 보여주고자 했던 욕망은 평면화폭의 조형미로 실현되어 또 하나의 단단한 나이테를 추가 합니다. 양자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피조물에는 고도의 지능을 가진 미립자들로 만들어져 있으며, 이 미립자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파동에 의한 자국을 남기는 방법으로 온갖 다양한 정보를 저장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오래된 성당이나, 절에 가면 저절로 숙연함을 느끼고, 선대로 부터 받은 유품에 유난히 더 정이 가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의미있는 선물이 소중해지는 이유입니다.이 오묘한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법칙을 스스로 체득하고, 자각한 작가 최소리는 소리의 파장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회화적 작품에 소리를 저장하여 보여주는 데 성공하지요.소리의 파장을 직접 기록하게 될 매체은 소리의 파동 주파수가 가장 높고 에너지가 큰 금속 재질 매체들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기에 충분한 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이젠 한 단계 더 진전된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소리가 저장되고 그 파동이 물결처럼 퍼져 나오는 차원 높은 공감각적 공명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작가 최소리의 이러한 장르와 매체를 초월한 공감각의 예술적 행위는 우리 한민족의 미의식인 신명[神明]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신명은 합리적인 이성이 우리 뇌를 주관하는 때가 아닌, 내 몸에서 귀신이 나타나는 상태인 바로 신명[神明]난 상태,순식간에 삼매[三昧]의 일심불란(一心不亂),무아지경,몰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나타납니다.누구나 이 신명에 이르면 정신적으로 樂하게 되고 육체는 興에 취하게 되지요. 상고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신명난 상태를 절대적 일자,하늘,우주,대자연과 접화하는 유일한 통로로 인식합니다.우주는 하늘과 땅사이에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천지인[天地人]사상에는 천지를 이어주는 사람인 무인[巫人]의 존재가 필연적입니다.누구보다도 신명난 상태,즉 파토스의 경지에 쉽게 빠져들어 대중을 집단 최면 상태로 이끄는 사람 말입니다.이와 같이 상고시대 제천행사에서 발원한 천지인의 신선 사상은 화랑도에 이어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의 풍류 정신으로 발현되며 오늘날은 모든 예술가들에게 이어져 발현되는 우리 고유의 사상입니다. 작가 최소리는 이미 소리를 통하여 그의 신명을 공명시켜,전 지구인을 집단 최면인 황홀경과 광란,그리고 도취와 격정의 상태를 유발 시킨 경험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의 신명난 한판 소리는 그 자체가 무아지경, 몰아지경의 ‘興과 樂’의 공명으로 전 지구를 연대와 대동의 장으로 만들었지요.작가 최소리는 즐겁고 행복한 樂의 정신적 상태와 어깨춤이라도 덩실거릴 육체적 興에 취하는 신명에서 파생된 樂&興이라는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지닌 초유의 무인[巫人]입니다.이번 전시는 그의 넘치는 에너지가 소리를 넘어서 그 소리를 보여주고 저장시켜, 또 다른 장르로 대중의 공감각을 자극시켜 공명 시키겠다는 욕망이, 조형의식으로 반영된 회화로도,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전시입니다. 그의 예술적 욕망의 본질과 근원은 예술 장르에 상관없이 동일하며, 다만 구현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번 전시는 이미 파토스와의 신명[神明]의 경지를 수시로 넘어본 작가 최소리의 또 다른 예술적 욕망의 분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비록 소리의 파동과 달리 즉시성은 떨어지지만 선사시대 동굴벽화처럼 수 만 년 동안 지속될 소리의 공명을 시각화하려는 그의 욕망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가 소리로 지구를 공명시켰듯이 소리의 저장과 파동이 담겨 조형의식이 반영된 평면회화도 전 지구인을 또 한번 공명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쓴이 : 장현근     작가명 : 최서원
조회 197        20231128
視覺的 낯섬의 美學, 그리고 슈필라움[Spielraum]
1. 들어가며 생존과 번성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은 우주의 섭리이고, 자연의 법칙이며, 神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본성은 사피엔스 공통의 유전자의 언어이며, 아울러 모든 예술가들은 이것을 ‘예술적 욕망’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예술가들의 원초적인 욕망이 분출된 결과물을 우리는 예술 작품이라고 하고, 그것은 회화 뿐 만 아니라 문학이나 영화, 음악, 사진과 같은 다양한 예술 장르로 표현됩니다. 작가의 예술적 욕망이 분출된 작품은 작가 스스로 理性的이거나 合理的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의 근원은 이론적으로 설명이 불가한 본능과 욕망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학이나 비평은 작가를 대신해서 왜 작가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욕망의 세계에서 거닐며, 그것을 표출하는 작품 활동을 하는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으로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조자인 대중이 오롯이 작가의 작품 세계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대체로 작가의 예술적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은 미(美)로, 그리고 그 미의식이 표현된 결과물은 술(術)인 미형식(美形式)으로 구성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미술(美術)을 완성합니다. 작가는 욕망의 분출인 미의식(美意識)에서 출발하여 표현 양식인 미형식(美形式)으로 나아가지만, 관조자(觀照者)인 대중은 반대로 미적 형식의 관조를 통하여 작가의 예술적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을 찾아 작가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 갑니다. 작품을 주의 깊게 감상하는 관조자(觀照者)의 입장에서 작가 최서원의 작품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술(術)의 영역인 미형식(美形式)부터 출발하여, 작가의 예술적 욕망이 분출의 근원인 미의식에 도달하는 경로를 선택해야 합니다. 작가 최서원은 우리 민족에게 이미 익숙한 민화를 현대적 재해석한 작품 활동을 합니다. 일시점의 원근법과 명암법을 해체하여 다차원의 관념적 공간을 구현함으로써 우리에게 ‘낯선 미적 형식’을 제시하며 시선을 포획합니다. 이를 통하여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욕망의 시원이자, 미의식의 총합인 현대적 유토피아인 ‘슈필라움’에 이르는 길을 보여 줍니다. 2. 시각적 낯섬의 미형식(美形式) 미형식은 작가의 예술적 욕망을 효율적으로 분출하기 위해 일종의 도구입니다. 자연의 원형의 재현과 모방의 미형식에 치중했던 회화는 근대에 이르러 그 원형을 과감히 해체하는 탈정형으로 탈주합니다. 그동안 철옹성처럼 지켜지던 전통적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시점이 붕괴되어 오늘날 현대 미술에 이르렀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해 오던 회화가 과장과 축약 그리고 다시점의 비정형을 추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 일까요? 원형의 비례와 균형을 해체하는 것은 그렇게 형성된 ‘시각적(視覺旳) 낯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피엔스의 원초적 본성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정형, 탈정형을 통한 ‘시각적 낯섬’은 시선이 포획된 관조자로 하여금 각별한 관심을 갖게 만들고, 더 나아가 그 원형을 향한 보충적 환상을 유도합니다. 역설적으로 이렇듯 惡畵는 관조자(觀照者) 심상에 良畵를 구축합니다. 미술 해부학 국내 최고 권유자인 조용진 교수에 의하면, 우리 조상들은 동쪽으로 이동해 오는 동안 거주지 환경과 기후에 따라 형성된 서로 다른 유전 형질을 우리에게 물려 주었다고 합니다. 주로 빙하기에 낮아진 해수면으로 개방된 해안로를 따라 이동해 온 남방계는 울창한 밀림 속의 효과적인 채집을 위해 근거리에 맞춰진 시각을 후대에 유전으로 물려 주게 됩니다. 명암이 없고, 원근감이 무시 되며,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하기에 특화된 부분시가 반영된 평면적이고 개념적인 성향이 유전적 형질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근거리에 시(視) 감각을 DNA를 지닌 남방계는 필요 이상의 디테일한 미술적 표현이 가능해집니다. 특히 본적도 없는 세계를 주로 상상해서 그린 관념화에 능숙합니다. ‘보이는 대로’가 아닌 ‘상상하는 대로’ 그린다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유라시아 대평원으로 이동한 간 인류의 조상들은 울창한 밀림 대신 탁 터진 초원을 마주하고 채집대신 수렵에 유리한 시각을 가진 북방계는 부분시(部分視) 가 아닌 눈앞의 풍광 전체를 조망하는 전체시(全體視)를 갖게 됩니다. 덕분에 명암법, 원근법 등 공간감과 거리감에 특화된 시각을 가지고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는 유전적 특성을 보유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서양화가 일시점 원근법과 명암법의 북방계 미술의 고유한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원근법과 명암법으로 유전자를 장착한 북방 기마 유목들이 빙하기전 미리 이동해 정주해 있던 선주민인 남방계와 혼혈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민족은 이 두 미술적 형질의 DNA가 5천 년 넘게 치환된 유일한 민족입니다. 작가 최서원은 이미 치환된 이 두 유전자 형질을 모두 보유하여, 북방계 뿐 만 아니라 남방계의 미적 형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매우 보기 드문 작가입니다. 최서원 작가가 미적 대상으로 인식한 전통 민화는 태생적으로 원근법과 명암법이 무시되는 전형적인 남방계 성향의 미적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화를 재현, 반복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작가 최서원은 북방계 특성을 더하여, 서양 회화의 원근법과 전통 민화의 역원근법은 물론 일시점과 다시점, 심지어 무시점인 평면성까지 자유 자재로 구사하여 3차원의 공간감을 극한의 2차원 평면적인 공간을 표현해 냅니다. 이처럼 미형식이 상이한 유전적 형질의 융합적인 구현은 작가 최서원이 전통 민화의 질료인 한지에 수묵이나 채색을 넘어서, 서양화의 재료인 캔버스나 아크릴 물감의 거리낌 없는 접목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모든 예술 작품은 시대를 각인합니다. 우리 전통 민화도 마찬가지로 조상들의 길상적(吉祥旳) 상징인 다양한 문양과 상징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민화의 존재 이유는 이 도상을 해석함에 있어 당시 시대 속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욕망을 충족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귀물들의 상징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중은 이를 소장하거나 관조하는 과정에서 그 욕망들의 직, 간접적인 충족과 해소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 상징들이 과거와 변화 없이 반복 재현된다는 것은 민화의 정통성을 감안하더라도 또 다른 전통의 모방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즉 현대는 이 시대에 맞는 상징성의 귀물이 등장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대중의 욕망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 최서원의 작품은 과거 전통적인 민화를 배척하지 않고, 이것을 다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현대적 길상(吉祥)의 상징인 도상(圖像)과 그것을 표현하는 미적 형식의 융합을 시도한 한국 최초의 작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이상향에 대한 미의식(美意識), 슈필라움[Spielraum] 작가 최서원이 원근법과 명암법을 해체하고 평면성을 강조한 우리 전통 민화를 차용한 상태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공간을 재구축합니다. 구석에서 중앙을, 위에서 아래를, 그리고 아래에서 위를 보는 공간의 분할과 해체를 다시 한 화면에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미형식(美形式)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낯섬의 미형식’을 통하여 분출하려고 한 작가의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은 무엇일까요? 작가가 인간의 미의식(美意識)의 영역에 속하는 ‘생존과 번성’이라는 원초적 본능이 현대적으로 재해석 된 예술적 욕망으로 치환되어, 작품 속에 표현된 모든 길상의 상징들은 바로 이 시대를 갈음 하는 욕망의 대체물들 입니다. 비록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다양한 시대적 욕망들이 함축되거나 암시(暗示)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 동진의 고개지의 ‘형(形)으로써 정신(神)을 묘사해야 한다(以形寫神)’와 심상(心象)에 의존해야지 단순히 눈에 의존하는 외형모사는 천박하며, 의(意)가 붓보다 앞서야 그림이 끝나도 의(意)가 남는다(意存筆先 畵盡意在)는 중국의 의경미학(意境美學)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특히 작품 속 모든 길상의 상징들이 가리키는 곳, 즉 모든 욕망들의 총합이 바로 ‘슈필라움’입니다. 슈필라움은 개인의 독립된 은밀한 유희 공간입니다. 현대 사회내의 대중은 집단의 생존과 번성을 위하여 스스로를 규제하는 다양한 법률이나 규칙, 도덕과 윤리 때문에 인류가 태초부터 가졌던 원초적 자유 본능이 절제되고 그 욕망이 억압 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중에게는 일종의 탈주처나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할 이상향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억제된 자유 욕망이 분출되고 해소되는 ‘슈필라움’ 이 바로 그 이상향입니다. ‘슈필라움’에서 작가가 예술적 욕망을 분출할 때, 그리고 관조자는 작품을 통하여 원초적 자유 욕망이 완성될 때, 비록 그곳이 실질적 공간이 아닌 2차원의 환상의 공간일지라도 온전한 쾌(快)를 느끼게 됩니다. 특히 작가 최서원의 작품인 ‘슈필라움’ 의 쾌(快)는 단순한 쾌를 넘어선 새로운 창조의 원천이자 강력한 에너지원이며, 이것은 작가가 관조자에게 주는 창조의 욕망을 해소시키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4. 결론 우리는 원초적 본능 상태에 노출되어 그 욕망이 충족되거나, 억제된 욕망이 해소될 때 쾌(快)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 최서원은 우리에게 현대적으로 재해석 된 민화를 통하여, 억제되어 있던 현대인의 원초적 자유 욕망들을 ‘슈필라움’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해소시켜 줍니다. 작가의 ‘슈필라움’에서 대중은 단순한 위로와 안식, 그리고 쾌(快)을 넘어선 재창조의 유희공간으로써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대중의 소유할 수 없는 욕망을 해소 시키는 작가의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은 작가 자신 뿐만 아니라 관조자인 대중에게도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 숭고한 예술가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작가 최서원은 자신의 예술적 욕망인 미의식(美意識)을 공간을 자유자재로 해석하고 재구성한 미형식(美形式)으로 완벽하게 치환합니다. 작가의 예술적 욕망이 제대로 분출된 것 입니다. 한 화면에 여러 시점이 난무하는 다차원의 공간이 창조되고, 조명에도 그림자가 없는 비현실적인 공간감이 연출 되며, 원근법과 역 원근법의 교차로 시각적으로 매우 ‘낯선 화면’ 구성은 ‘파격적인 원색’과 함께 관조자의 시선을 포획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만의 이상향인 ‘슈필라움’을 갖게 합니다. 작가의 욕망이 비로소 대중에게 이식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진보는 과거의 전통을 전복하는 과정에서 잉태됩니다. 우리 고유 문화 유산 중의 하나인 민화는 그 자체만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만약 우리가 전통에 얽매이면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바야흐로 전 세계적으로 K-신드롬이 불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것만으로는 세계적인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K-미술도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융합이 대안입니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북방계와 남방계의 고유의 미술적 DNA형질을 보유한 작가 최서원이 풀어낼 미래의 작품세계 또한 사뭇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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