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樂 갤러리’ 판매작품리뷰입니다.

[Sold/정복자- 안나영 Na Young Ahn 作]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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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

안나영作

65.2cm * 80.3cm (25호)

Acrylic & oil on canvas, 2022

2,500,000

[Sold/정복자- 안나영 Na Young Ahn 作]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공자는‘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위학), 三十而立(삼십이립),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 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라 하여,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준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이 들어가면 저절로 그리 되는 것이 아니라,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도록 힘을 써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늦어도 15세부터 지적 호기심을 갖고 학문에 뜻(志于學)을 두어야 하고, 30세 쯤에 자기만의 고유의 학문적 관점(而立)을 가지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與立)을 끼쳐야 하며, 40세에 들어서면 이것 조차도 넘어서 다른 사람의 학문적 업적까지 두루 살펴(知人) 스스로 자기 주장을 바르게 세우지 못해 갈팡질팡하여 매사에 미혹되거나, 현혹됨이 없어야 합니다.
아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학이시습(學而時習)하여 자기 관점을 세우고, 아울러 타인의 학문적 성취까지 배워 미혹함이 없으면, 곧 나이 50세에 지천명(知天命)이르게 되지요. 15세 이후 40세 까지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의 습득으로 지적 영역에서 완결을 의미하지만, 지천명(知天命)은 이를 넘어서 우주의 섭리, 자연의 법칙, 神의 의지, 원초적 본능, 인간의 본성(예술가에게는 예술적 욕망), 즉 천명(天命)을 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윽고 60세가 되면 이런 천명이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몸으로 들어와 체득(耳順)되고, 곧이어 본능이나 욕망대로 욕심을 부려도, 이성과 합리적인 축적된 지식으로 균형을 잡아, 결코 섭리나 이치에 거슬리지 않는 단계인 불유구(不踰矩)인 70세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이들 모두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치열하게 노력해야 얻게 되는 Sollen/Must의 문제입니다.
프로이트와 공자의 언어를 비교해 보면, 15세 미만 유소년기는 이드(Id)의 전성시대이고, 이후 40세까지는 학습으로 그 동안 축적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으로 본능과 욕망 덩어리인 이드(Id)를 억제하는 치열한 싸움의 시기가 되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而立의 30대를 거쳐, 이성이 본능을 완벽하게 억제하는 40대의 불혹, 즉 자아(Ego)시대가 도래하죠. 일체의 미혹이나 현혹, 의심이 없는 나이 40의 불혹(不惑) 시대입니다.
그러나 불혹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본능이나 욕망을 완벽하게 억제하여 이성의 승리가 목전에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동안 학습을 통해 습득한 지식만으로는 풀지 못하는 난제를 발견하죠. 바로 천명입니다. 드디어 그 동안 억압해 왔던 아득한 유년기 때의 추억인 원초적인 본능과 욕망(Id)의 씨앗을 부활시켜 그들의 힘을 빌려하늘의 뜻을 읽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우주의 섭리, 대자연의 법칙, 그리고 신의 의지를 매우 짧은 시간에 습득한 알량한 인간의 지식만으로 다 알 수는 없지요. 이드(Id)와 에고(Ego)가 서로 힘을 합쳐야 비로소 천명이 보이는 초자아(Super Ego)의 시기가 바로 공자가 말하는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 그리고 불유구(不踰矩)의 시대입니다.
작가 안나영이 불혹의 나이를 지나 지천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 시기는 그야말로 경계의 시대입니다. 작가는 유년의 본성인 이드(Id)의 본능을 내외부의 어떠한 억압과 압제를 피하지 않고 치열하게 단련시킨 덕분에 그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불혹(不惑)의 시기를 넘겼습니다. 하워드 가드너는 인류 역사상 진보를 이끌어낸 모든 분야의 천재가 가진 공통적인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유아적 행태를 보인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성에 의해 본능, 즉 천명이 억제 당할 때 작가 안나영은 오히려 많이 유아적 특성, 즉 이드(Id)를 간직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지요.
이 작품은 작가가 이드(Id)의 본성을 간직한 채 에고(Ego)의 시기인 불혹(不惑)을 넘기고, 다시 이드(Id)가 절실히 필요한 슈퍼 에고(Super Ego)의 지천명(知天命) 시기 사이의 마지막 경계에서 이드(Id)와 에고(Ego)의 조합으로 탄생시킨 작품입니다.
독일 낭만주의 화풍의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위의 방랑자’를 오마주한 이 작품에서 구태여 숭고미(崇高美)를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지요. 숭고미는 대자연의 압도적인 풍광 앞에 서며 누구나 느끼는 약간의 공포와 두려움의 경외감 정도입니다. 작가는 직접 여행한 아프리카 세렝케티 초원의 광대함에 비하여 인간의 왜소함을 프리드리히의 숭고미를 차용해 왔습니다. 여기까지는 지식의 습득을 통한 에고(Ego)의 영역이지만, 등장하는 인물이 사람이 아닌 표범이라는 점은 이드(Id)의 영역에서 영감이 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위대한 미술사의 거장들의 명작이 그들의 질풍노도 시기, 즉 이드와 에고의 치열하게 대립하고 싸우는 격동의 시기인 20~40대에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일반 대중은 본능을 완벽하게 억제하여 이성의 승리를 선언한 불혹(不惑)의 시대를 추앙하지만, 위대한 작가는 이시기에 오히려 본능이 이성을 통제하며 예술적 욕망을 발산하지요. 곧이어 맞이 하게 될 작가 안나영의 지천명(知天命)은 이성과의 싸움에서 이미 승리를 쟁취한 경험칙을 가진 작가의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본능, 즉 예술적 욕망이 어떻게 이성을 통제하며 작업을 해 나갈지 궁금한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