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樂 갤러리’에서 현재 전시중인 전시회에 대한 안내 입니다.

    배달래 - WIND CONCERTO (바람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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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작가 : 배달래
    • 전시기간 : 2022.04.21(목) - 2022.05.03(화)
    • 관람시간 : 11:00~19:00
    • 장소 : 에코락갤러리, 복합문화공간 운김
    • 전시주최 : 에코락갤러리
    • 문의 : 02-381-9595

    전시회 소개

    배달래 개인전  WIND CONCERTO "바람협주곡"

    2022.4.21(목) ~ 5.03(화)

     

    오프닝 퍼포먼스: 2022년 4월 23일 오후4시 복합문화공간 운김

    복합문화공간 운김(배달래 스튜디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29번길 115-92 I동 



    畵舞同原

       

      아름다움(美)란 무엇이며 그 始原은 어디일까요? 아름다움은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일 수 도 있지만, 객관적인 美의 원리나 개념을 도출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美에 대한 이해는 물론 향유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에 관한 단어의 탄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체 보존을 위한 음식 섭취와 관련 있습니다. 교부 신학자 아우렐이우스는 미각상 감미를 美의 일종으로 보았습니다. 즉 달콤함이 즉 아름답다는 것이죠. Sweet look, Sweet melody, Sweet love 등이 그 예이고, 미각을 의미하는 Taste 또한 미적 의미로 전용되어 Taste good은 좋은 미적 취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칸트도 美의 판단 능력의 하나로 미각(Geshmack)을 예로 들었지요.

      동양에서는 양두구육(羊頭狗肉)에서 보다시피 양의 고기를 높게 평가하는데, 이는 제사상의 올리는 크고 살찐(大) 양(羊)의 형상화가 바로 아름답다(美) 하여 음식 섭취의 ‘맛’이 곧 ‘멋’인 아름다움으로 전이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인도 유럽어의 특성 중의 하나인 맛과 멋의 어원의 형태와 의미가 분화되는 모음변동현상(Ablaut현상)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렇듯 아름다움은 인류의 생존과 번성, 즉 먹고 사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문제에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생존과 번성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은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진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비록 죽음이나 파충류에 대한 공포일지라도요. 즉 아름다움은 생존과 번성의 원초적 본능과 욕망에서 도출된 개념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태초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포와 음식등 생존과 번성에 절대적 필요 요소를 아름답게 느끼도록 진화되어, 공포는 현존하고 급박한 위험으로부터 회피하게 하고, 의식주 및 연대와 유대를 통한 번성할 목적으로 다양한 유전적 기제를 강화해 왔습니다. 생존과 번성기제에 대한 모방이나 학습과 교육 등 문화적 요소인 밈(MEME)이 수 천년 동안 체화 되면, 무의식이나 직감처럼 유전자적 요소의 원초적 본능으로 진(GENE)으로 변화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것을 원초적 본성 또는 본능 이라고 하며 예술가는 예술적 욕망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파충류 또는 어둠, 신체 훼손이나 죽음에 대한 원초적 공포심은 인류 생존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공포스러운 뱀이나 용 그림이 미술작품에 등장 하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미술 작품으로 용인하게 된 것입니다.

    이 원초적 본능은 우리 몸의 자율신경, 신진대사, 면역체계와 관련되어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 몸의 생존과 번성만을 위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식이 없기 때문에 판단속도는 빛의 속도와 같이 빠르지만 정확성은 비교적 떨어지는 무의식 속에서 떠오르는 영감이나 직감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생존과 번성에 관한 원초적 본능, 즉 현존하는 위험으로부터 살아남고 싶은 욕망, 연대와 유대를 통해 내 유전자를 번성시키고자 하는 욕구 등은 모든 인간의 내재된 공통된 본성입니다. 따라서 예술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도 그런 예술적 욕망이 표현된 모든 작품은 쉽게 감동을 받거나 공포를 느끼는 등 공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중이 천경자 화백의 화사도(花蛇圖) 를 보고 소름이 돋고, 고흐의 자화상을 보며 신체 훼손의 고통을 공감하며, 뱅크시의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 그래피티를 보고 같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만 작가와 일반 대중의 다른 점은 작가는 그 예술적 욕망을 독창적으로 떠올리는 심상(Image)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차별화된 술이 있을 뿐이고, 대중은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단순히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신(神)의 자연의 창조 능력을 모방하여 새로운 제 2의 자연을 창조하고 그 예술에 일정한 자기만의 규칙을 부여하는 술(術) 가진 것이죠.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자 예술적 욕망은 우주의 섭리이자 자연의 법칙의 일부이기 때문에 질서 있는 코스모스(Cosmos)뿐 만 아니라 무질서와 혼돈인 카오스(Chaos) 조차도 크게 보면 일정한 패턴을 이루는 질서에 영역에 속한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는 본능과 욕망이 일체의 억압 없는 무한 자유 즉 카오스(Chaos)적 자유를 누려야 비로소 묘한 쾌감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나약한 인간은 사회적 집단의 형성을 통한 협력과 유대와 연대로 생존과 번성의 길을 택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각종 규제와 규칙으로 원초적 자유를 구속하게 되지요. 이 과정에서 나타난 불쾌(不快)의 정서가 누적되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큰 해악으로 발전합니다. 다만 유일하게 이 구속에서 자유로운 예술가들은 작품으로 그 불쾌를 쾌로 정화시키는 숭고한 역할을 담당하고, 일반 대중은 그 혜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술가들을 존경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존하는 급박한 위험으로부터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죽음, 어둠,신체 훼손, 상실, 소외, 잔혹, 슬픔, 우울, 전쟁, 손실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의 공포기제를 탁월하게 감지하고 우리 세포 내에 보관하는 것으로 인류는 유전적 진화가 진행 되어 왔습니다.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보다 공포스럽고 잔인했던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파동 입자들이 우리 몸에 누적되어 쌓이면 트라우마처럼 우리 몸을 망치게 되지요.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부정적인 파동 입자들을 몸에서 떨어내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카타르시스라 했으며, 우리 무속신앙에서는 이것을 ‘한풀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박장대소, 대성통곡, 통성기도, 무아지경 등도 같은 역할을 하지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에도 대성통곡을 하고 나면 우리 몸은 시원하고 개운한 듯한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쾌감이 바로 아름다움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름다움(美)는 본연의 조형적이고 시각적인 快의 의미를 넘어서 語意가 넓게 확장되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대체로 우리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언제까지 몸 안에 둘 수가 없는 부정적이고 공포스러운 파동 알갱이들을 손 쉽게 몸 밖으로 털어내는 상태가 바로 파토스적 상태입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의 상태가 아닌 격정과 광기, 몰아와 삼매 그리고 도취의 황홀경인 신명(神明)난 상태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 부정적 파동 입자들이 우리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죠. 예술가가 그의 원초적인 예술적 욕망을 파토스 상태로 풀어내면 같은 본능을 가진 대중도 예술가처럼 파토스 상태에서 쾌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파토스적 상태에서 작업을 하는 작가와 작품에 주목해야 하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예술가의 원초적 본능, 즉 욕망은 그 근원이 같기 때문에 비록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지라도 대중으로부터 같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무용가는 파토스적 상태에서 그 욕망을 몸으로 풀어냅니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시인은 축약된 언어로, 연기자는 배역에 푹 빠지는 연기로, 화가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상실한 삼매의 상태에서 밤을 지새며 완성하는 작품으로 말이죠.


       작가 배달래는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내재된 다양한 정서를 파토스적 상태에서 풀어내는 작업을 합니다. 역사와 현실 인식에 대한 작가의 예술적 욕망을 주로 몸으로 표현하는데, 무(舞)가 그 과정이고 그 처연한 몸짓의 결과가 한 점의 화(畵)로 탄생하죠. 동족 상잔의 상징인 DMZ와 어쩔 수 없는 외세에 대한 나약했던 우리의 恨이나, 제주 4.3사건에서 죄 없이 희생당한 무고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鎭魂舞 뿐 만 아니라 세종의 애민정신이 담긴 훈민정음을 기리는 음악인 여민락(與民樂)을 춤과 작품으로 동시에 해석하고 표현하는 작업들이 대표적입니다. 작가의 생존의 욕망인 한(恨)과 번성의 욕망으로, 때로는 유대와 연대의 핵심 본성인 이타주의를 몸이라는 도구를 통해 춤과 회화로 동시에 구현되지요. 우리는 작가의 몸짓에 전율하고 작품에서 무한 자유 욕망을 충족합니다. 작가의 파토스(Pathos)적 작품 활동을 통하여 우리의 억제된 욕망이 드디어 자유를 찾게 된 것입니다. 결국 배달래 작가의 춤과 그림은 그 시원이 같아, 우리는 舞로 한번, 그리고 畵로 한 번의 더, 恨이 정화 되고, 樂이 승화되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 입니다.    


     

    에코락갤러리 장현근 대표

     

     

    이른 아침 눈을 뜨고 마른 눈을 부비며 낯선 제주의 숙소 주변 산책을 마친 후 캔버스와 물감을 차에 싣고 미리 정해 둔 장소로 이동한다가는 내내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의 움직임과 색을 관찰하며 내 시선은 빠르게 움직인다배낭에 담긴 물감을 등에 메고 캔버스를 양손에 들고 숲으로 들어간다적당한 장소에서 짐을 내려놓고 나는 눈을 감고 느낀다.

    바람과 숲의 소리냄새를 맡으며 나의 모든 감각을 발동시켜 그 순간 숲이 내게 전하는 물리적인 모든 것에 집중한다.

    나는 이러한 감각을 통하여 자연을 느끼고 자연의 존재감이 나의 신체를 통해 캔버스와 만난다물감을 묻히지 않은 채마른 손으로 눕힌 캔버스 위에 소리와 냄새바람을 그려본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그리고 숲의 소리를 담으며 리허설을 하듯 행위에 집중한다.

    그 후 물감을 손에 찍어 물감의 물성이 주는 촉감을 느끼며 마치 스케치 하듯이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그리기 시작한다손에는 물감이 촉촉이 묻어 있고 색들의 변화에 따라 숨을 멈춘 채 그려 내려간다갑자기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하며 빠르고 분주하게 그려나간다.

    잠시 숨을 참기도 하며 엎드려 작업한 탓인지 얼굴은 불그스레 상기되어 1월의 찬 공기 속에 가픈 호흡은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작업은 이루어진다.

    나에게 숨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내 안의 모든 것을 조금씩 참고 아껴가며 쏟아내는 것이기에 호흡을 아껴 쓴다이는 집중을 위해서 이기도 하며 감각과 감성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서 오랜 퍼포먼스를 하며 만들어진 습관이기도 하다.

    호흡을 멈춘 상태에서 천천히 긋는 행위들에서 나오는 선들은 역동적이며 힘을 가지고 있다.

    호흡의 반영으로 나오는 힘은 순간의 지속에서 나오는 힘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는 음악이다음악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를 듣게 하고 그 감성으로 몸은 움직이고 그 몸짓은 곧 회화가 되어 표현되어 진다.

    그런 점에서 나의 육체는 내 작업의 시작이며 암시가 깔려 있다.

    제주에서의 자연이 주는 소리와 바람은 내겐 음률이었고 박자였다.

    그 음률과 색은 그 어떤 곡 보다 위대한 무한성을 지닌 곡이었고 변화무쌍했다.

    차가우면서도 따듯했고 휘몰아치면서도 부드러웠으며 높은 듯 하면서도 내 곁에 낮은 자세로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우면서도 아팠으며 그 아픔 속에 위로가 녹아 있었다.

     

    지난 8년간 ‘DMZ 프로젝트시리즈를 하며 찾아다닌 비무장지대에서 느낀 처절한 상흔의 아픔들이 다시금 온몸으로 되살아났다.

    제주의 곳곳을 다니며 마주한 4.3 학살의 흔적들은 축복 받은 너무나 아름다운 땅이기에 더욱 서럽고 아프게 다가왔다.

    사람의 발길이 멈춘 비무장지대의 자연에서 나는 처절한 생명력을 느꼈고 그것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그곳에도 영원히 살면서도 죽음이 있었으며 지울 수 없는 전쟁의 역사는 여전히 흐르고 있는 곳이다.

    제주의 많은 잃어버린 마을’ 역시 국가의 폭력이 자행된 우리의 어두운 역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를 제주로 이끈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몇 해 전 읽었던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어렴풋이 알고 있던 제주 4.3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료를 찾아보며 75년 전 이 땅에서 자행된 끔찍한 역사에 대해 다시금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소설의 내용은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의 살아남은 가족으로서 살아낸 아픈 삶이 소설 중반부터 대부분을 차지한다소설은 고통의 순간도 아프지만 계속 건드려서 그 고통의 순간을 마주하고 피해자가 받았던 고통을 기억하며 새기는 것이 살아있는 우리가 할 일임을 상기하며 소설의 제목의 의미를 이해했었다.

    한국의 현 주소는 정치적 뿐 아니라 남녀 젠더 갈등과 종교새 대 간의 갈등 등 모든 요소에서 극단적 대립을 이루고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러한 대립적 양상을 바라보며 나의 위치를 어디에다 맞추며 살아야 하는지 미래의 시간들이 불안하고 어둡기만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는 어떤 시민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예술가로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이 물음은 늘 나의 작업 전반을 끌고 가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문화예술인에게는 사회와 문명에 대한 시대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일정 정도 이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삶은 병이다!”라고 말한 니체의 말처럼 우리의 삶과 문명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내부와 외부몸과 의식은 긴밀하게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대화하고 때로는 침묵하며 소통하고 싶다.

    나의 바람은 세상을 향한 연민이며 위로이다.

    나는 가장 거세게 부는 바람을 찾아 제주로 갔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 감춰진 억압된 침묵을 만났다붉은 피가 흘렀던 땅은 푸른 빛이 감도는 땅으로 바뀌었고 처절했던 죽음은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덮였다즐거움으로 묻힐 수 있는 슬픔의 현장은 처참한 아픔 속에서도 제주는 내가 찾은 1월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알뜨르 비행장에서 한 퍼포먼스 ‘Where are we going?'은 제주 작업의 전체를 아우르는 작업이다푸른 하늘과 바다녹색의 들판은 제주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격납고는 제주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다.

    ‘Wind of life' 퍼포먼스는 아부오름에서 한 작업으로 번역하자면 삶의 바람이란 뜻이다.

    아부오름은 위에서 내려다 보면 여성의 자궁처럼 분화구가 숲으로 둥글게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그 모습을 보며 삶의 희열과 생명의 탄생의 영감을 담은 작품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은 제목 그대로 4.3 사건으로 사라진 마을 곤을동의 집터에서 한 퍼포먼스이다.

     

    전시 제목인 바람의 협주곡은 로버트 모리스가 죤 케이지에게 보낸 퍼포먼스 계획서에서 따온 이름이다모리스는 죤 케이지에게 자신이 회화에서의 표현적인 의도나 자신의 자의적인 의사 결정의 과정을 제거 할 수 없음을 암시하며 우연성시간성신체성을 강조한 자신의 작업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존재즉 이 시간을 살고 있는 순간의 모든 감성과 감각들에 집중하며 순간의 과정의 탐구하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그날의 날씨에 따라 변하는 변화무쌍한 바람은 나의 감각을 일깨웠고 세상을 향한 연민은 나의 바람을 담아 작은 위로와 희망이 담길 바랐다.

    과정의 탐구란작품의 형식내용작가의 의도가 작품 제작 순간의 모든 절차를 작품의 뒤에 감추지 않고 진행 중의 상태로 표면에 드러내는 것작품에 대한 지각과 심리적 느낌신체적 접촉 방식 등 시간성을 강조하며 열린 상태에서의 경험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나의 퍼포먼스는 신체의 몸짓과 시간 및 공간성이 결합된 구조 속에서 내가 속한 시대의 공통분모를 소유하고 그것을 적절한 방식으로 나타내면서 동시에 미의 개인적인 철학과 경험을 반영한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10호 캔버스에 그려진 60여점은 매일의 바람을 담은 그림일기로 제주의 곳곳을 다니며 내가 멈춘 곳의 바람을 담았다매일이 신이 났고 흥미로웠으며 아픈 역사와 조우할 때는 눈물도 흘리며 나는 거친 바람 속에서도 춤을 추었고 제주를 느꼈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에서 부는 바람은 거칠다가도 온유했으며 차갑게 휘몰아치면서도 따듯했다제주의 바람 속에 담긴 거친 아름다움과 화해와 용서의 바람은 협주곡이 되어 세상으로 자유롭게 날아가길 바란다.

     

    2022년 바람의 협주곡 작가 노트에서. 

     

     

    전시작품

    예술작품은 이미지와 원화에 차이가 납니다. 실견을 통해서 원화의 감동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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