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樂 갤러리’ 아트컬럼입니다.

한국형 원더우먼 '카무이' 프로젝트(2)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 202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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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WonderWoman 'KAMUI' Project-Kamui 곰 토템부족의 탄생]

 

카무이[Kamui]는 곰을 뜻하는 고대 우리말입니다. 神이라고도 해석하는 것으로보아 원시 종교의 한 형태인 곰토템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네요. 또한 특이하게 이방인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고 합니다.잘 아시다시피 단군신화에 따르면 고조선은 곰의 후예 국가이지요.여하튼 고대 우리말로 곰, 즉 카무이는 신성한 것(쿠마,코무=)으로 여겨진 것은 분명합니다.이런 문화는 일본에도 전해져 쿠마시네-신에게 바치는 벼,쿠마시로-신에게 바치는 경작지,쿠마나비-신이 깃든 사물,쿠마노-신성한 나라,쿠마-곰으로 오늘날 일본어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일본 북부 훗카이도의 아이누 신화에도 곰에게서 후손이 태어났다고 하니 神을 의미하는 카미의 어원은 한국어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지금도 일본어에서 귀에 익은 말인 카미,카미가제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특정 동물을 숭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생존과 번성을 위해서 선택적으로 때로는 필연적으로 동물을 사냥했지만, 이것는 동물의 영혼을 불쾌하게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무례에 대한 보복을 우려하여 대표로 선택된 동물을 특별히 숭배하게 됩니다. 이러한 토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동물이 숭배의 대상이라 먹지 않는 경우와 오히려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숭배한 경우입니다. 시베리아 타이가 숲으로 이동한 사우로마타이족 후예인 사르마트족에게도 아모르 곰의 가죽과 고기, 그리고 곰들이 살던 굴은 이주해온 그들의 생존과 번성에 기여했기 때문에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원시 종교의 하나인 토테미즘은 자신들의 죄와 고통을 어떤 존재에게 떠넘겨 그것을 감당하게 만듭니다. 고통이나 슬픔도 다른 존재에게 옮겨 대신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대속원리의 특성을 가지죠. 그래서 숭배의 대상이 되는 동물을 먹거나 공양하는 풍습을 갖게 됩니다. 특히 곰숭배 의식은 베링해협,라플란드,북아메리카에 널리 퍼져있는 정화의식으로 주로 곰고기를 주 단백질 섭취원으로 하는 모든 부족들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네요 예의를 갖추고 죽이고 사죄와 위로의 의미로 의식 진행하고,초인간적,비범한 용기와 힘을 얻기 위해 섭취하고 영적,육체적 부활을 염원하는 대속 신앙의 일종으로 잡아먹는 동물에게 관례적 존경심을 표시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1856년 러시아 여행가 폰 슈렌크는 시베리아 동부 퉁구스 족인 길랴크 족의 곰 축제 참관하게 됩니다. 야무르, 캄챠카, 시베리아 지역의 곰 숭배 풍속을 기록에 남기게 되고, 다시 조지 프레이져경이 이 기록들을 그의 명저 황금가지에서 언급합니다. 몽골 북부,중국 동북부의 옛 부족인 예벤키족 (퉁구스족의 옛이름,예맥족)의 후손이 지금도 아무르강,사할린 시베리아 동부에 살고 있는 길랴크족입니다. 길랴크족은 여름은 고기잡이(연어)최적기에 먹이인 연어와 겨울에는 단백질 보충과 주거지인 굴을 두고 아무르 곰과 경쟁하는 관계였습니다.그들의 주거지[] 부근에서 사슴,멧돼지 물새 뼈등과 함께 곰의 뼈가 대량으로 발견된 것으로 보아 곰과는 애증의 관계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흑해의 여전사 부족의 후예인 사르마트족이 스키타이 제부족 중에서 가장 동쪽으로 동진한 것은 맞지만 그들이 북간도와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는 길랴크족의 선조라는 가설은 말 그대로 가설이지요. 하지만 이 가설의 중간에 연결된 부분을 메꿔 줄 단서를 찾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제가 그 단서를 찾은 것 같습니다. 다음은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중앙아시아로부터 이주해온 여전사 부족의 후예와 곰 토템 부족의 연결고리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7WonderWoman 'KAMUI' Project-Kamui 곰 토템 웅족과 배달국]

 

정수일 교수의 고대문명 교류사읽다가 재미있는 지도 하나를 발견합니다.바로 북방 유목 민족인 스티타이 부족의 북방 교역로에 관한 지도 인데요.초원길이 아닌 오아시스길(알타이산맥과 천산산맥 사이길)을 통해서 중국과 교류한 것으로 나옵니다.지금의 신장 위구르 지역이지요.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이 길을 통하여 사르마트족이 왔다면 더 내려가서 지금의 사천성과 운남성 경계의 오지에 살고 있는 모계사회 부족인 모소족의 존재와 일치합니다.

 

하지만 주력은 더 북쪽인 시베리아 남부의 스텝지역의 초원길를 동해 동진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왜냐하면 기마민족의 특성상 목축과 수렵이 가능했던 초원길이 사막길보다 더 유리했기 때문이죠.흑해의 아마조네스와 스키타이족의 후예인 사르마트족이 초원길을 통해 동진했다고 보는 이유는 우리 기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삼국유사와 삼성기 하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곰과 호랑이..그리고 마늘과 쑥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죠.삼국유사에는 곰과 호랑이가 동물로 나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그야말로 신화 같은 이야기입니다.그에 비하여 삼성기에는 곰과 호랑이가 아닌 사람인 백성으로 나옵니다.

 

일단 삼국유사 기이(紀異) 옛 조선 편을 살펴보겠습니다.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시유일웅일호 동혈이거 상기우신웅 원화위인]'이때 한 마리 곰(一熊)과 한 마리 호랑이(一虎)가 같은 굴(同穴)에 살았는데, 신웅(神雄)에게 사람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삼국유사에서는 곰과 호랑이를 동물로 보고 그들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삼성기 하편에서는 사람이 아닌 백성이 되게 해달라고 합니다.'한때 곰과 호랑이가 이웃하며 살았는데, 일찍이 신단수에 빌면서 신계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였으므로, 환웅이 이를 듣고 쑥 한줌과 마늘 20개를 주며 경계하며 이르기를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해를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으리라. '時有一雄一虎  同隣而居  常祈于神檀樹 願化爲神戒之氓.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신계지맹[神戒之氓]으로 신단수 아래의 신시에서 건국한 배달국의 백성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태백일사 단군편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언급되지요.'이때 곰과 호랑이가 서로 이웃하며 살았다. 항상 신단수에 기원하며 환웅에게 청하여 원컨데 천계의 백성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時有一雄一虎  同隣而居  常祈于神檀樹 而于請於桓雄 願化爲天戒之氓. ' 다른 점이 있다면 신계가 천계로 바뀐 것 뿐 입니다. 저는 이주해온 백성을 뜻하는 한자인 [-,이주해 온 백성]에 의미를 부여합니다.호족과 웅족은 어디선가 이주해온 부족입니다. 곰과 호랑이는 부족의 상징인 토템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즉 호족과 웅족의 백성들이 어디선가 이주해와 천계인 배달국의 백성이 되기를 희망했다'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죠.

 

아직까지는 이주해온 웅족이 여전사 부족의 후예인 사르마트족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삼성밀기에는 그 결정적 단서가 나옵니다. '환국, 즉 배달국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족속이 있어 이를 우환으로 여겼다. (중략)종족의 이름도 각기 다르고 풍속도 점차 달랐다. 원래 살던 무리는 호였고, 뒤에 이주해온 무리는 웅이었다. 호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며 오로지 약탈을 일삼았다. 웅은 어리석고 자만하여 조화하지 못했다. 웅과 호는 같은 굴에 살면서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서로 돕지도 않고 혼인도 하지 않았으며 매사에 서로 길이 달랐다. 이에 이르자 웅의 여왕은 환웅에게 신덕이 있음을 듣고 무리를 이끌고 찾아와 굴(;지역)을 하나 내려주시어 신계의 백성이 되게 해달라고 빌자, 환웅이 이를 허락하여 머물게 한 다음 아들을 낳았다. 호는 끝내 깨닫지 못하므로 사해 밖으로 쫓아버렸다.이로써 환족이 일어났다. 原主者爲虎 新移者爲雄……雄性愚愎自恃不肯和調……至是雄女君聞 桓雄有神德' 웅녀군[雄女君]! 곰 토템족인 웅족의 족장은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웅족은 어리석고 자만하여 조화롭지 못했다는 의미는 흑해 여전사 부족인 아마조네스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당시 문명국인 배달국에서 보면 모계사회에 남여가 조화롭게 살지 못하는 부족이 어리석게 보였을 것입니다.하지만 그들의 강인함에 그들로 하여금 강한 후손을 보고자 함은 흑해의 스키타이나 배달국의 거불단 환웅이나 매한가지였을 겁니다.

 

조대기에는 다른 힌트도 언급 됩니다. '이들 둘의 성질의 다름은 이와 같다.웅씨의 여자들은 고집이 세고 어리석어 그들과 함께 돌아갈 사람이 없었다.그리하여 늘 신단수 아래에 무리 지어 모여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이에 환웅은 임시로 변하여 관경을 얻고 그들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다. '

… 雄氏諸女 自執愚强 而無與之爲歸

故每於檀樹下群聚 以呪願有孕有帳.

웅족의 여자들이 무리를 지어 아이 갖기를 원했다....일종의 집단혼이자 족외혼인데 이는 앞에서 본 여전사 부족 아마조네스 부족의 특징이자 북간도 사할린의 길랴크족의 풍습입니다.자 웅족의 여왕(熊女君;학자들은 모계사회로 추정),이주해온 백성,그리고 여자들의 집단혼과 족외혼을 접하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앞에서 해로도토스가 언급한  여전사 아마조네스족과 스키타이 훈남들로 이루워진 사우로마타이족의 후예들이 그 풍습을 유지한 채 동점하여 배달국에 복속되어 우리민족의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시작이라는 것이 억측일까요?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신화와 우리 민족은 북방 스키타이와 여전사 아마조네스의 후손이라는 사실 중 어떤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다음은 여전사 부족의 존재에 대한 유적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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