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樂 갤러리’ 판매작품리뷰입니다.

[Sold/무제 5- 이학 作]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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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5

이학作

63.0cm * 75.0cm (20호)

Mixed media on canvas, 2018

1,800,000

[Sold/무제 5- 이학 作]
모르긴 몰라도 돼지가 가축인 된 시기는 양(羊)보다는 한참 뒤에 일어난 일 일지도 모릅니다.수렵채집인들 중에 특히 유라시아 대륙쪽으로 진출한 수렵인들에 의해 가축으로 길들여 진 양은 인구의 증가에 따른 단백질 결핍을 해결 할 수 있었던 중요 수단이었습니다.털과 가죽은 추위를 막아주고,고기는 단백질 제공원이기도 했으며,결정적으로 온순하기까지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고대 인류의 생존과 번성에 기여한 공을 인정 받아 아름답게 느껴졌을까요? 양(羊)이 크면(大) 아름다울 미(美),양의 목에 목줄까지 부착하면(着) 그 음을 차용해서 그야 말로 착한 양이 되지요.또 기를 양(養)과 큰바다를 뜻하는 물양(洋),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옳을 義에도 양자가 보이네요. 혹시 한문으로 설명해서 오직 동양만의 해석으로 오해할 수 있겠습니다.하지만 그러면 안되는 것이, 서양의 성경에도... 그리스 신화에서도 양은 제법 비중있게 나옵니다.어째든 아름다움을 다루는 기술인 美術은 이런저런 이유로 羊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는 셈입니다.
양이 수렵과 목축을 본업으로 하는 북방기마유목 민족들에게 중요한 존재였다면, 농업혁명 이후 정주하며 살던 남방계에게는 돼지가 생존과 번성의 필수적인 가축이었습니다.온순하며,다산으로 단백질 보급의 역할에 충실했지요. 무엇보다도 자원의 효율적 활용 측면에서 인간이 먹고 남은 음식의 재활용으로 정주민에게는 경제적 효용성을 갖춘 가축으로 사랑받았습니다. 복(福)을 가져다 주는 행운의 상징으로 말이죠.
작가 이학은 형을 구축하고 해체하고 다시 재구축하는 반복된 작업을 통하여, 매번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설적이고 과장된 표현으로 디스토피아 (dystopia)와 그로테스크(grotesque)를 추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아름다움를 표현하는 미술에 이런 추미(醜美)가 등장하는 것은 쉽게 이해 할 수 없는데요.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끔직한 사진을 전시하는 것이나,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줘 전쟁을 사전에 회피토록 하는 전쟁화,과장된 지옥을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천국을 돋보이게하는 것이 바로 예술의 힘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꽃을 예쁘게 그린 그림과 반대로 시들고 말라 비틀어진든 꽃을 보여 주면 우리 뇌는 과연 어느쪽을 더 비중있게 인식할까요?불행하게도 후자 쪽입니다.바로 인류가 생존과 번성에 유리한 쪽으로 진화한 것 때문인데요.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보다 손실이 나거나 슬펐던 것을 오래 선명하게 기억하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결론은 생존과 번성에 유리한 것들은 비록 추하고, 괴기스럽고, 잔혹하더라도 아름다움의 범주안에 들며, 우리뇌는 오히려 그런 추미를 더 가치있게 인식한다는 것입니다.자 이제 베이컨의 그림들과 몽크의 절규나...에곤 쉴레의 적나라한 작품에 눈길이 가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그 그림들이 단순히 예쁜 그림보다 훨씬 더 비싼 이유도요.
작가 이학이 그린 의인화된 돼지는기이하고 괴상하기도 하며 심지어 흉측합니다.탐욕으로 일그러진 현대의 우리 자화상일 수도 있겠습니다.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행운과 복의 상징은 온데간데 없습니다.처음엔 온전한 돼지 즉 유토피아로 구축된 작업이 해체를 통해 디스토피아로 내려옵니다.다시 유토피아로 회귀하는 도중 그로테스크 상태에서 작업을 멈춘 이유는 다시 유토피아로 가느냐? 아니면 추락하느냐를 소장자의 몫으로 남겨 둔 작가의 의도 같습니다.여러분은 어느쪽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