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에코 樂 갤러리’의 컬럼입니다.

45개의 포스트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22-05-26
[발문(跋文), 판매리뷰(Sold) 그리고 기록....]
[발문(跋文), 판매리뷰(Sold) 그리고 기록....] 미술 감정학의 절반은 해당 작품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과학적 분석이겠지요. 제작 경위나 소장 배경, 혹은 감상 기록을 담은 발문은 작품의 진위 여부는 물론 후대의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당연히 시장 거래 시 발문을 포함한 이와 같은 기록은 그 가치를 판단하는 결정적 요인입니다. 특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소장할 때 이러한 기록이 없는 작품이나 유물은 우선 대상에서 제외 되겠지요. 고흐가 유명해진 것은 어쩌면 그가 남긴 수많은 편지 때문이고, 클림트는 드로잉 때문일 수 있겠습니다. 저희가 락갤에서 소장되는 모든 작품에 대해 대강(大綱)의 코멘트로 판매 리뷰(Sold)를 쓰는 이유는 미술계 종사자로서 직업 윤리상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는 강박증도 있지만, 스스로 작가임을 천명하고 작품을 시장에 내놓는 작가님들의 첫번째 발문(跋文) 역할의 기록을 남겨서 응원하고 싶어서 입니다. 이중에 후대에 거장으로 성장할 작가님들이 계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작품의 진위를 증명하는 기록을 넘어서, 다양한 소장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그 소장 배경이나 경험, 그리고 감상이나 비평 기록 등은 작품의 가치를 배가 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작가의 작품이 명작이 되고 ,작가 자신이 거장이 되기를 원한다면, 역설적으로 반드시 후배들이 논문이나 저서 등을 집필할 때 참고할 기초 자료들이 풍부하게 존재해야 가능한 일이죠.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후배들의 석사 논문 한편 없이 어떻게 거장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따라서 작가는 작가 자신만의 기록인 드로잉이나 스케치 등을 많이 남겨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양한 시각의 비평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기획자는 기획 의도가 담긴 전시 서문을 남겨야 하고.... 소장자의 감상문은 금상첨화죠.미술시장이 발전하려면 작가 뿐만 아니라, 비평가, 소장자, 전시 기획자도 다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바로 그 시작이 기록을 남기는 것입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22-02-22
[미술시장 활성화에 대한 단상]
[미술시장 활성화에 대한 단상]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후로 주식시장,채권시장, 홈쇼핑의 상품시장과 보험시장,여신 종합금융회사의 자금시장…그리고 어쩌면 제 인생의 마지막이 될 미술시장! 반평생을 장돌뱅이로 시장 언저리에서 살아온 제가 새로운 형태의 미술시장을 만들어 보겠다고 발버둥치며 지난 4년을 보냈습니다. 전통적인 경제내의 시장에서 상품과 재화, 서비스의 소비는 효용 가치의 극대화에 있습니다.소비자가 갖는 효용이 높아지면 당연히 그 교환가치도 높아집니다.그러나 미술 작품은 기존의 기존의 전통 경제학의 가치 체계내에서의 효용 가치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아시다시피 미감과 같은 추상적인 가치는 객관적으로 측정불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교환가치 미형성으로 환금성에 제한을 받게 됩니다.제대로 작동하는 미술시장 대중화,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는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하지만 미술작품에 일반 상품에는 없는 본원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인류의 생존과 번성의기여하는 절대적인 가치로 우리 삶을 보다 윤택하고 풍요롭게 합니다.비록 소비자의 주관적 성향과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술품 향유자가 느끼는 나름의 효용가치입니다.이런 향유자의 주관적 가치를 객관화 할 수만 있다면 미술시장을 전통시장처럼 작동할 겁니다. 우리에게 세계최고 수준의 IT 산업의 인프라가 있고 여기서 나오는 DATA가 있습니다. 그동안 미술작품 향유자로서 소비한 개인의 주관적 향유 가치를 한곳에 모아 객관화함으로써 그토록 염원하던 미술작품의 교환가치를 확보하게 됩니다.이러한 사례는 이미 부동산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미술작품 실거래가를 조회 할 수 있는 앱인 ‘미술품 거래소’를 만든 이유입니다. 이렇게 미술시장 대중화와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가 갖춰지면 다음에 필요한 것이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소비자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산자는 존재하는데 소비자가 없는 기형적인 시장구조이기 때문이죠.앞에서 언급한 미술 작품 소비의 본원적 가치는 전통시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반 소비자의 효용 가치와는 많이 다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미술작품 소비자가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그 본원가치를 인식하는 능력, 즉 향유 능력이 중요한데 이것을 향상시키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혹자는 문화 예술 지원 정책이 미술시장에서 공급 측면에서의 단체나 예술가 직접 지원에서 벗어나 미술 작품 소비자의 향유능력 향상에 정책적 촛점을 맞춰야 한다고 합니다. 방향성엔 동의하지만 너무 방대해서 실행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술 작품의 잠재적인 소비자가 스스로 학습을 통해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와 미술작품의 향유능력을 향상시키는 신의 한수에 대해 고민해 왔습니다. 바로 우리는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익의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쉽게 이야기 해서 돈이 된다면 대중은 자발적 미술작품 향유능력 향상 학습에 나설 것입니다.부동산 가격이 뜨니 전국민이 부동산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주식시장이 활황이니 주변에 주식,경제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미술시장이 살아날 조짐이 보이면 전국민이 미학과 미술사 학습에 나설것입니다. 즉 미술 소비자의 향유능력이 향상되는 것이죠.이렇게 되면 우리 미술시장은 드디어 공급자와 소비자가 균형을 이루는 건강한 시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몇가지 선제적인 정책이 필요합니다.우선 일정수준의 미술품 구매금액의 소득공제제도가 도입입니다.이로 인한 세수 감소는 향후 투명해질 미술시장이 보상해 줄겁니다.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인 미술작품 물납제도도 좋습니다.미술작품의 교환가치를 객관화 한다는 측면에서요.정부는 홍콩의 ‘아트 바젤’을 서울로 유치해야 합니다.미술작품도 수조원의 시장이 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대중에게 주게 됩니다.이렇게만 된다면 민간에서는 미술과 금융과 융합해서 새로운 대체투자 대상이 되어 ‘아트펀드’ ‘미술품 할부금융’ ‘미술시장 관련 다양한 스타트업등의 호응으로 대답할 것입니다.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미술시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21-09-09
한국형 원더우먼 '카무이'프로젝트(3)
[#8WonderWoman 'KAMUI' Project] BC 2,500년전 스키타이 전사 부부 무덤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시베리아 남부 카자노브카에서 발견됩니다.플라톤이 언급한 남녀가 평등하게 무장하고 싸운다는 사우로마타이족에서 분기한 사르마트족의 활동무대에서 발굴된 무덤으로 보입니다.여성 전사 사체 좌골에 승마흔적이 보이고,이례적으로 칼,도끼 등 근거리 여성용 무기로 중무장한 채 발견됩니다.특히 두개골 화살 꽂힌 끔찍한 상처도 보이고,인근 지역의 다른 고분에서 스키타이 여성 전사는 활과 화살 등 원거리 무기까지 발굴되어 학자들은 동쪽으로 이주한 여전사 부족인 아마조네스 후손의 무덤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하문명 혹은홍산문화(BC7000년~2500년)지역은 만주 벌판에 자리 잡고 있어,환웅 배달국과 단군의 고조선의 강역으로 보고 있습니다.특히 신석기,청동기 관련 유적들인 피라미드 즉 돌무지무덤(적석총)이나 빗살무늬토기,곰 토템 관련 유물인 웅룡등 고조선 문화유형과 비슷한 유적,유물들이 확인돼 고조선 문화라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저는 적봉시 우하량에서 발굴된 여신상을 주목하는데요.점토 소조상으로 실제 사람크기의3배정도이며,눈에는 옥 눈동자가 박혀 있는 반가부좌 여신상입니다.다양한 여신상이 난무하는 고대 그리스 신화와 달리 동양에서 여신상이 발견된 것은 매우 희귀하고 드문 일입니다.흑해의 여전사 부족의 후예인 사르마트족의 웅족이었던 雄女君!나중에 고조선의 국모로 보고 신성화 한 것으로 보이네요.특히 몸은 점토인데 눈만 녹청색 옥으로 제작했다는 것은 그들이 배달국 말년에 이주해온 푸른눈의 웅족 여인의 유전적 특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 주변의 피라미드(적석총)에서 사체의 가슴에 놓인 부장품으로 발견되는 웅룡(雄龍;얼굴은 곰의 형상이고 몸은 용인 패넌트),곰 발바닥 토기 등을 들어 고조선의 건국한 단군의 어머니이자 국모인 雄女君을 신격화 한 것으로 추정 됩니다. 우리민족이 여성이 전사로서 무장하고 싸운다는 아마조네스와 관련된 가설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유적은 김해 대성동 금관 가야 고분에서 찾아 볼 수 있겠습니다.가야는 다양한 부족 연맹체로 북방민족의 고유특성을 그대로 보유한 채 한반도 남단에 산재한 전설의 왕국이죠.대성동 금관 가야 고분에는3기 여성인골이 발견되는데,모두 출산경험이2~3차례 있는20~30대 초반으로 주피장자의 순장조로 묻혔습니다.그들이 전사라는 증거는 하체근육이 기마와 반복적인 훈련의 결과로 형성된 근육이라는 점입니다.귀족 계급이 사망하면 그 호위병을 순장하는 스키타이 풍습과 유사합니다.우리 민족의 여성 전사의3세기말까지 유지되었으며,특히 예안리57호 여전사 무덤은 각종 기마 마구,재갈,철 대도,창으로 무장한 주피장자가 여성 지휘관으로 추정되는 무덤이죠. 이렇듯 그리스 신화 때부터 시작하여 실재 역사에도 등장하는 고대 전설의 여전사 부족인 아마조네스…그 후손이 환인국의 스키타이와 결합하고 그 후손들이 동진하면서 시베리아 곰토템을 가진 다음,미리 동점하여 정주하고 있던 환웅의 배달국에 복속되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시원이라는 것이 이번‘카무이 프로젝트’의 요지 입니다.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시대라 오직 유물과 훗날 기록된 단편적인 기록에 의해 연결해 본 것입니다.상당히 개연성이 있어 혹시 관심있는 학자들의 학문적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마조네스의 후예!원더우먼과 동급이라는 이야기가 성립되는군요.그런데 왜 우리는 아마조네스 부족이 남미 아마존 강에 있으며 원더우먼은 그곳에서 나타난 것으로 믿고 있을까요?이것은 새로운 문화 콘텐츠의 선점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므로 다음에 그 경위를 알아보겠습니다. [#9WonderWoman 'KAMUI' Project] 1531년 에스파냐의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겨우180명의 부하를 이끌고 고대 잉카 제국을 접수합니다.이때는 조선시대 임진왜란(1592년)일어나기60여년 전이군요. 1533년 피사로는 동생인 오레야에게 당시 금보다 더 비싼 향신료인 시나몬 원정 지시합니다.오레야는 스페인 병사340명,투견2,000마리,원주민4,000명 원정대 꾸린 다음70일 동안 정복 여행을 떠납니다.시나몬 못 찾자,화가 난 오레야는 만나는 원주민들을 참살하며 카누를 타고 강을 내려오다, 1540년 아마존 남쪽 지류에서 타퓨아족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죠.오레야는 원주민 부족의 여성까지 용감하게 참전하여 싸우는 것에 놀라 그리스 신화 속 아마조네스 떠올려 그 강을 아마존이라 하고 그 부족을 아마조네스로 부릅니다.일설에 의하면 전투에 참여한 장발의 원주민을 여성으로 오인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어째든 이것으로 우리는 흑해 의 여전사 부족인 아마조네스가 남미에 있으며,우리가 알고 있는 원더우먼이라는 영웅캐릭터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는 셈입니다. 백번 양보하여 흑해의 아마조네스 부족이 남미로 이동했다는 전제하에 그 가능성을 살펴 보겠습니다.우선 아프리카 경유설입니다.그리스-페르시아전에 페르시아 동맹군으로 참전했으나 패르시아가 패하자 귀환하지 않고 아프리카를 지나 대서양을 건넌 뒤 남미에 정착했을 수도 있겠습니다.그러나BC1300년 정도에 내해면 몰라도 대양을 건너 부족이 이주했다는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입니다.(지도1) 두번째 베링 육교설입니다. 1만1,000년 이전 마지막 빙하기에 동북아시아에서 고아시아인이 해수면 낮아져 노출된 베링육교를 건너 알레스카,캐나다 북부롤 통해 남미로 남하했을 가능성입니다.방하기 때 당시 해수면이 지금보다125M아래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이때 노출된 베링육교는 그 폭이6,000M나 된 비옥한 초원지대여서 매머드,털코뿔소,순록,사향소 등도 이동한 통로로 학자들은 매머드 스텝이라고 불렀습니다.그러나 알레스카 해안가를 로렌타이드,코스트마운틴스 두 빙하 남쪽행 막아 남행이 불가하여 그대로 직진,그린란드까지 진출한 이누이트족을 포함한 에스키모입니다.그들이 건너간 때는 한참 빙하기인BC10,000년 이전이기 때문에 아마조네스의 후예인 사르마트족이 동점한 시기와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래도 혹시 수상운송수단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살펴보지요.남미에1만5,000년전 유적 발견되었기 때문에 남미 원주민은 적어도1만5,000년~1만2,000년전에 이동했어야 합니다.근거리 수산 운송수단을 이용하면 한반도북부-일본북부(아이누족)-쿠릴열도-일류산열도–아메리카서부해안-남미행(지도2)가 예상되는데 이때도 빙하기인1만여년전 이동했어야 하지요.이때 이동한 고 아시아인들이 알래스카의 로렌타이드,코스트마운틴스 빙벽을 피해 남미로 이동 중 대륙으로 산개하여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남미의 원주민을 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따라서 이들도 그로부터 한참 뒤인BC3,000년~2,000년전에 이동한 아마조네스의 후예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신화와 전설의 여전사 부족인 아마조네스의 후예는 우리 한민족이라는 개연성은 있으나,남 아메리카 아마존에 있다는 것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일 가능성 이 높습니다.따라서 상상속의 영웅인 원더우먼을 되찾아와 역사시대에 치우친 우리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부가가치가 높고 참신한 우리 민족 문화 고유의 컨텐츠를 개발하는데 의의가 있습니다.다음은 마지막으로 이런 목적 달성을 위한‘한국형 원더우먼 카무이 프로젝트’를 소개하겠습니다. [#10WonderWoman 'KAMUI' Project] 1.전시명: Wonderwoman Kamui Project 2.전시일: 2022년10월6일~18일(2주간) 3.작 가:UB 4.작 품:50호 알루미늄 아사천 캔버스/10점 5.작품가:각 작품5,000,000원/사전 선판매 6.작품컨셉:‘Wonderwomam Kamui Project’시놉시스를 배경으로 한국형 원더우먼‘카무이’의 게임 캐릭터 컨셉 적용 7.목 적 1)우리민족의 시원과 고대사에 대한 관심 제고 2)창의적이며 독보적인 문화 예술 컨텐츠 개발 3)현실과 현실증강(AR),그리고 가상세계(VR)가 결합 메타버스(Metaverce)의 가상 현실 세계 중의 하나인 게임이 새로운 미학과 미술 사조의 출발점이 될 수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21-09-09
한국형 원더우먼 '카무이' 프로젝트(2)
[#6WonderWoman'KAMUI' Project-‘Kamui’곰 토템부족의 탄생]카무이[Kamui]는 곰을 뜻하는 고대 우리말입니다.神이라고도 해석하는 것으로보아 원시 종교의 한 형태인 곰토템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네요.또한 특이하게 이방인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고 합니다.잘 아시다시피 단군신화에 따르면 고조선은곰의 후예 국가이지요.여하튼 고대 우리말로 곰,즉 카무이는 신성한 것(쿠마,코무=곰)으로 여겨진 것은 분명합니다.이런문화는 일본에도 전해져 쿠마시네-신에게 바치는 벼,쿠마시로-신에게 바치는 경작지,쿠마나비-신이깃든 사물,쿠마노-신성한 나라,쿠마-곰으로 오늘날 일본어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특히 일본 북부 훗카이도의 아이누 신화에도 곰에게서 후손이 태어났다고 하니神을 의미하는 카미의 어원은 한국어‘곰’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지금도 일본어에서 귀에 익은 말인‘카미’로,카미가제 등도 마찬가지입니다.인류의 조상이 특정 동물을 숭배하는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생존과 번성을 위해서 선택적으로 때로는 필연적으로 동물을 사냥했지만,이것는 동물의 영혼을 불쾌하게 한다고 생각했지요.그래서 무례에 대한 보복을 우려하여 대표로 선택된 동물을 특별히 숭배하게 됩니다.이러한 토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동물이 숭배의 대상이라 먹지 않는 경우와 오히려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숭배한 경우입니다.시베리아 타이가 숲으로 이동한 사우로마타이족 후예인 사르마트족에게도 아모르곰의 가죽과 고기,그리고 곰들이 살던 굴은 이주해온 그들의생존과 번성에 기여했기 때문에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합니다.원시 종교의 하나인 토테미즘은 자신들의죄와 고통을 어떤 존재에게 떠넘겨 그것을 감당하게 만듭니다.고통이나 슬픔도 다른 존재에게 옮겨 대신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대속원리의 특성을 가지죠.그래서 숭배의 대상이 되는 동물을 먹거나 공양하는 풍습을 갖게 됩니다.특히 곰숭배 의식은 베링해협,라플란드,북아메리카에 널리 퍼져있는 정화의식으로 주로 곰고기를 주 단백질 섭취원으로 하는 모든 부족들의 특성이 반영된것으로 보이네요 예의를 갖추고 죽이고 사죄와 위로의 의미로 의식 진행하고,초인간적,비범한 용기와 힘을 얻기 위해 섭취하고 영적,육체적 부활을 염원하는대속 신앙의 일종으로 잡아먹는 동물에게 관례적 존경심을 표시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1856년 러시아 여행가 폰 슈렌크는 시베리아동부 퉁구스 족인 길랴크 족의 곰 축제 참관하게 됩니다.야무르,캄챠카,시베리아 지역의 곰 숭배 풍속을 기록에 남기게 되고,다시 조지 프레이져경이 이 기록들을 그의 명저’황금가지’에서 언급합니다.몽골 북부,중국 동북부의 옛 부족인 예벤키족(퉁구스족의 옛이름,예맥족)의 후손이 지금도 아무르강,사할린시베리아 동부에 살고 있는 길랴크족입니다.길랴크족은 여름은 고기잡이(연어)최적기에 먹이인 연어와 겨울에는 단백질 보충과 주거지인 굴을두고 아무르 곰과 경쟁하는 관계였습니다.그들의 주거지[穴]부근에서 사슴,멧돼지 물새 뼈등과함께 곰의 뼈가 대량으로 발견된 것으로 보아 곰과는 애증의 관계였던 것이 분명합니다.사실 흑해의 여전사 부족의 후예인 사르마트족이스키타이 제부족 중에서 가장 동쪽으로 동진한 것은 맞지만 그들이 북간도와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는 길랴크족의 선조라는 가설은 말 그대로 가설이지요.하지만 이 가설의 중간에 연결된 부분을 메꿔 줄 단서를 찾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제가 그 단서를 찾은 것 같습니다.다음은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중앙아시아로부터 이주해온 여전사 부족의 후예와 곰 토템 부족의 연결고리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7WonderWoman 'KAMUI'Project-‘Kamui’곰 토템 웅족과 배달국]정수일 교수의‘고대문명 교류사’읽다가 재미있는 지도 하나를 발견합니다.바로 북방 유목 민족인 스티타이 부족의 북방 교역로에 관한 지도 인데요.초원길이아닌 오아시스길(알타이산맥과 천산산맥 사이길)을 통해서 중국과교류한 것으로 나옵니다.지금의 신장 위구르 지역이지요.충분히가능한 일입니다.이 길을 통하여 사르마트족이 왔다면더 내려가서 지금의 사천성과 운남성 경계의 오지에 살고 있는 모계사회 부족인 모소족의 존재와 일치합니다.하지만 주력은 더 북쪽인 시베리아 남부의스텝지역의 초원길를 동해 동진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왜냐하면 기마민족의 특성상 목축과 수렵이 가능했던초원길이 사막길보다 더 유리했기 때문이죠.흑해의 아마조네스와 스키타이족의 후예인 사르마트족이 초원길을통해 동진했다고 보는 이유는 우리 기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삼국유사와 삼성기 하편에 우리가 알고있는 곰과 호랑이..그리고 마늘과 쑥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죠.삼국유사에는곰과 호랑이가 동물로 나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그야말로 신화 같은 이야기입니다.그에 비하여 삼성기에는곰과 호랑이가 아닌 사람인 백성으로 나옵니다.일단 삼국유사 기이(紀異)옛 조선 편을 살펴보겠습니다.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시유일웅일호 동혈이거 상기우신웅 원화위인]'이때 한 마리 곰(一熊)과한 마리 호랑이(一虎)가 같은 굴(同穴)에 살았는데,신웅(神雄)에게 사람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삼국유사에서는 곰과 호랑이를 동물로 보고 그들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는군요.하지만 삼성기 하편에서는 사람이 아닌백성이 되게 해달라고 합니다.'한때 곰과 호랑이가 이웃하며 살았는데,일찍이 신단수에 빌면서 신계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였으므로,환웅이 이를 듣고 쑥 한줌과 마늘20개를 주며 경계하며 이르기를 이것을먹고 백일 동안 해를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으리라. '時有一雄一虎同隣而居常祈于神檀樹 願化爲神戒之氓….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신계지맹[神戒之氓]으로 신단수 아래의 신시에서 건국한 배달국의 백성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태백일사 단군편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언급되지요.'이때 곰과 호랑이가 서로 이웃하며 살았다.항상 신단수에 기원하며 환웅에게 청하여 원컨데 천계의 백성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時有一雄一虎同隣而居常祈于神檀樹 而于請於桓雄 願化爲天戒之氓…. '다른 점이 있다면 신계가 천계로 바뀐것 뿐 입니다.저는 이주해온 백성을 뜻하는 한자인[氓-맹,이주해 온 백성]에 의미를 부여합니다.호족과 웅족은 어디선가 이주해온 부족입니다.곰과 호랑이는 부족의 상징인 토템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즉 호족과 웅족의 백성들이 어디선가 이주해와 천계인 배달국의 백성이 되기를희망했다'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죠.아직까지는 이주해온 웅족이 여전사 부족의후예인 사르마트족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하지만 삼성밀기에는 그 결정적 단서가나옵니다. '환국,즉 배달국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족속이 있어 이를 우환으로 여겼다. (중략)종족의 이름도 각기 다르고 풍속도 점차 달랐다.원래 살던 무리는 호였고,뒤에 이주해온 무리는 웅이었다.호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며 오로지 약탈을 일삼았다.웅은 어리석고 자만하여 조화하지 못했다.웅과 호는 같은 굴에 살면서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서로 돕지도 않고 혼인도 하지 않았으며 매사에 서로 길이 달랐다.이에 이르자 웅의 여왕은 환웅에게 신덕이 있음을 듣고 무리를 이끌고 찾아와 굴(穴;지역)을 하나 내려주시어 신계의 백성이 되게 해달라고 빌자,환웅이 이를 허락하여 머물게 한 다음 아들을 낳았다.호는 끝내 깨닫지 못하므로 사해 밖으로 쫓아버렸다.이로써 환족이 일어났다.…原主者爲虎 新移者爲雄……雄性愚愎自恃不肯和調……至是雄女君聞 桓雄有神德…'웅녀군[雄女君]!곰 토템족인 웅족의 족장은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웅족은 어리석고 자만하여 조화롭지 못했다는 의미는 흑해 여전사 부족인 아마조네스를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당시 문명국인 배달국에서 보면 모계사회에 남여가 조화롭게 살지 못하는부족이 어리석게 보였을 것입니다.하지만 그들의 강인함에 그들로 하여금 강한 후손을 보고자 함은 흑해의스키타이나 배달국의 거불단 환웅이나 매한가지였을 겁니다.조대기에는 다른 힌트도 언급 됩니다. '…이들 둘의 성질의 다름은 이와 같다.웅씨의 여자들은 고집이 세고 어리석어 그들과 함께 돌아갈 사람이 없었다.그리하여늘 신단수 아래에 무리 지어 모여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이에 환웅은 임시로 변하여 관경을얻고 그들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다…. '… 雄氏諸女 自執愚强 而無與之爲歸故每於檀樹下群聚 以呪願有孕有帳….웅족의 여자들이 무리를 지어 아이 갖기를원했다....일종의 집단혼이자 족외혼인데 이는 앞에서 본 여전사 부족 아마조네스 부족의 특징이자 북간도사할린의 길랴크족의 풍습입니다.자 웅족의 여왕(熊女君;학자들은 모계사회로 추정),이주해온 백성,그리고 여자들의 집단혼과 족외혼을 접하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드나요?앞에서 해로도토스가 언급한여전사 아마조네스족과 스키타이 훈남들로이루워진 사우로마타이족의 후예들이 그 풍습을 유지한 채 동점하여 배달국에 복속되어 우리민족의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시작이라는 것이 억측일까요?*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신화와 우리 민족은 북방 스키타이와 여전사 아마조네스의 후손이라는 사실 중 어떤 것을 믿으시겠습니까?다음은 여전사 부족의 존재에 대한 유적을 소개하겠습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21-09-09
한국형 원더우먼 '카무이' 프로젝트(1)
[#1WonderWoman 'KAMUI' Project-흑해 여전사 부족의후예!사르마트족의 탄생]*주의:이 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원더우먼의조상인 흑해 여전사 부족 아마조네스가 실재 존재했었고, 우리 한민족의 조상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역사적 기록과 유물을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므로 혹시 원더우먼에 대한 신화적 환상을 가지신 분들은 읽으실 때 그 환상이 깨질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 합니다.ㅎ 모든 일이 그렇듯이사소한 단서 하나가 사람을 잡지요. 우연히 읽은 플라톤이 쓴 글 중에서 고대 그리스 여전사 부족인 아마조네스에관한 내용에 주목했습니다. 플라톤은 남녀가 평등한 이상적 사회와 유토피아 개념을 발전시키는데 아마조네스를원용합니다. 신분이나 성별에 상관없는 만인이 평등한 법 원칙이 적용되는 세상!그의 저서 법률 제7권에서는 군복무도 여성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며, 흑해 동쪽의 사르마트족의 사례를 예로 듭니다.그곳의 여성은 남성처럼똑같이 말을 타며 무기도 잘 다룬다고 언급하지요.플라톤은 만약 그리스가 침략 당하면 여성들도 신전으로달려가 기도만 하지 말고 자식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기 들고 싸우라고 주장합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흑해 동쪽의 '사르마트족', 네.바로 해로도토스의 역사 스키타이에 나오는 사우로마타이족에서 분기되어 더 동점한 부족입니다. 그럼 사우로 마타이족이 아마조네스와 어떤 관계인지 해로도토스의 ‘역사’를 통해 들여다 보겠습니다. 사우로마타이족은해로도토스 언급한 스키타이 아홉 부족의 하나입니다.다음은 그가 기술한 사우로마타이족의 탄생 배경입니다. 헤라스(그리스)인이 전설상 호전적인 여인족인 아마조네스족(스키타이인들은 아마조네스족을 오이오르 파타-남자를 죽이는-로 부름)과 싸우다 포로로 잡은 아마조네스족 여인들을 3척의 배에 싣고 아조프해에서 출항하여 흑해를 지나 그리스로 향합니다.그들의배가 흑해를 지날 때 포로로 잡힌 아마조네스족의 여전사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켜 배 안의 그리스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스키타이 영내로 들어와 약탈을 하지요.이에 스키타이족은 그들과 몇 차례 교전한 끝에 그들의 사체에서 그들이 남자가 아닌 여자인 것을 알게 됩니다.스키타이 부족은 회의끝에 아마조네스 족의 여전사처럼 용감하고 강인한 후손을 얻기 위해 스카타이 젊은 남자들로 편성된 부대를 활용하는 미남계를 씁니다. 수개월 동안 모종의 작전을 수행 뒤에 성공하여 결국 그들과 하나가 됩니다. 작전에성공하자 스카타이 젊은이와 여전사인 아마조네스족의 두 야영지가 합해지고 서로 의사 소통이 가능해지지요. 스키타이남자들은 아마조네스 여전사들에게 함께 스키타이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설득합니다.‘우리는부모님도 계시고 재산도 있으니 우리 백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갑시다.우리가 당신들 말로 다른 여인을 아내로삼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요’ 그러자 아나조네스족여전사들은 ‘우리는 당신네 여인들과 함께 살 수 없어요.우리 그들과 관습이 달라요.우리는 활을 쏘고 창을 던지고,말을 타지만 당신네 여자들이 하는 것을배우지 못했어요.우리는 그런 여자들과 사이 좋게 지낼 수 없어요.당신들이진심으로 우리를 아내로 갖길 원하고 정직하게 처신하고 싶다면 당신들 부모에게 돌아가 재산을 분배 받아 돌아와서 우리끼리 삽시다’ 이렇게 여인들에게설득당한 스키타이족 남자들이 아마조네스족과 함께 동쪽으로 야반 도주하여 바다(카스피해,아랄해)를 건너 세운 부족이 바로 사우로마타이족입니다.사우로마타이족의 여전사들은 남자과 같이 사냥과 전쟁을 하며 남자들과 같은 옷을 입고 다닙니다.이후 그들 부족에서 분기된 사르마트족이 티나이스 강(오늘날 카스피해) 건너 동쪽으로 3일을 더가고, 마이오티스호(아랄해)에서 북쪽으로 3일더 북진하여 오늘날 카자흐스탄 북부,우랄과 알타이 산맥 사이 시베리아 스텝지역에 정착하게 됩니다.해로도토스에 의하면사우로마타이족은 스키타이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스키타이 말은 하되 어설프고, 결혼 관습은 처녀가적을 한 명 이라도 못 죽이면 결혼 할 수 없으며,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결혼도 못해보고 늙어죽은 여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사우로마타이족 후손들은 페르시아 다리우스 왕이 유라시아 초원 침략시갤로노스,부디노이 족과 함께 스키타이 동맹으로 참전하기도 합니다.*다음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리스 신화와 역사에 나오는 여인전사 부족 아마조네스에대해 살펴보겠습니다.[#2WonderWoman 'KAMUI' Project-아마조네스의 전설]아마존(복수로 아마조네스)은 그리스어인 ‘없다’란 의미의 접두사아(a)와 ‘가슴’을 뜻하는 마스토스(mastos)의 합성어입니다. 그리스 신화나 다수의 음유시에서는 그들이전쟁을 좋아해 활쏘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여자 아기의 오른쪽 가슴을 도려냄으로써 부족 여전사의 가슴 성장을 멈추기 위한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록합니다.아마조네스 여전사 부족은 그리스인을 매우 혐오 했는데, 그 이유는 델포이 신탁에 따라 헤라클레스가 수행한 아홉 번째 과업이 바로 아마조네스의 여왕 힙포리테의 마법의띠 훔치는 것이기 때문이죠. 당시 헤라클레스는 여전사족과 전면전을 벌여서 히폴리테의 마법의 띠를 빼앗고그들의 여왕을 죽였다는 설도 있지만, 히폴리테가 헤라클레스에게 반해 그냥 주었으나, 질투 많은 헤라의 방해가 있었고 ,약간의 오해가 때문에 그들의 여왕을죽인 것 같습니다. 아마조네스 부족은 종족 유지를 위해 족외혼으로 이웃 부족 남자와 집단혼을 통해 아이를잉태하는 의식을 치렀지만 남자아이는 그 부족에게 돌려주거나, 죽이고 여자아이만 키웠다고 하네요.이런 여전사 부족아마조네스의 관습을 보면 남성을 납치해 범한 뒤에 자식을 낳으면 남자를 죽이는 등의 여성과 힘의 위주인 모계 사회이기 때문에 히폴리테 또한 강한남성인 헤라클레스를 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헤라클레스도 아마존의 풍습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을죽이려고 온 히폴리테의 부하들을 보고 히폴리테가 자신을 환대하는 척 하면서 죽이려 했다고 오해해서 그들의 여왕을 죽인것이지요.어째든 아마조네스부족과 그리스의 악연은 계속 이어져 BC13세기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의 동맹국으로 참전합니다. 이때아마조네스의 여왕 펜테시레이아 (남자에세 슬픔을 주는 사람)는그리스 용사 아킬레우스와 1:1 대결에서 패해 죽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의하면 트로이의 동맹군으로 미케네와 전쟁시 아마조네스의 용기와 남자같은 힘에 대한 언급되지요. 혹자는 복수가 두려운 아킬레우스가 죽은 펜테시레이아 여왕을 시간했다고 하지만,아르크티노스의 서사시 아이티오피스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펜테실레이아 여왕을 죽이고 죽어가는 여왕이 너무 아름다워 그녀의 모습에 반해 장례를정중히 치르도록 시신을 트로이에 보냈다고 합니다. 저는 후자를 믿고 싶네요.BC 2,000년 그리스 미케네문명 시기에 그리스는 흑해 연안의 여러 부족등과 활발하게 교류했습니다. 이때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킵카스 지역 체르케스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아마조네스의 여왕을 아메잔(Amezan)으로 기록한 흔적도발견 됩니다. 또한 해로도토스의 저서 역사에 의하면 여전사인 아마조네스 부족이 그리스를 침공하는데, 그 이유는 테세우스의 아마조네스 아티오페 여왕 납치가 원인으로 알려졌습니다.아마조네스는 흑해 남동쪽에서 출병, 그리스 속주인 아티카 점령한 후 아테네로 돌격, 테세우스의 그리스군과 대치되지요.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 파르테논신전 서쪽에서 문명화된 그리스인이 낯선 타자로 동쪽에서 온 난폭한 여전사족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이처럼고대 여전사부족 아마조네스는 신화의 전승과 역사의 기록 등으로 보아 그 실존에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다음은 사마르마타이족이속해 있던 부족 연맹체인 스키타이족 부족 연맹체(환인국)의소개와 왜 그들이 유라시아 평원을 떠나 남으로 혹은 동북으로 이동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3WonderWoman'KAMUI' Project-스키타이 환인국]고대 희랍의 신화나전설 속에서나 나옴직한 여전사 부족 아마조네스가 해로도토스의 스키타이 아홉 부족중의 하나인 사우로마타이족으로 전이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살던 스키타이 제부족이 왜 동쪽으로 이동했는지 그 원인을 알아보겠습니다.그전에 북방 기마유목민족인스키타이 아홉 부족이 우리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인국, 즉 九桓의 무리, 九夷 인지 살펴보겠습니다.우리 민족의 창세 신화에는 나반[那般](하나반,하나버지,할아버지,아버지의 어원)과 아만[阿曼](어마,어마니,어머니의어원)이 아이사타[阿耳斯它](아사달[阿斯達])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아사는 아침,처음,첫,새로운,광명,동녘,동방,태양을 의미하는 고대 우리말이고,달은 응달,양달처럼 땅,벌판,산,대지를 의미합니다.그렇다면 아이사타,즉 아사달이 어디인지 알아보면 되겠군요.환단고기의 삼성기에는 (' 古記云 波奈留之山下有桓仁氏之國 天海以東之地 亦稱波奈留之國- 파내류산아래 환인씨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 동쪽의 땅이고, 파내류의 나라라 칭한다.) 라는 힌트가 있네요. 파내류산은 중국쪽 타클라마칸 사막과 서쪽의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과의 경계를 이루는 천산산맥(텐샨산맥)을가리킵니다. 또한 천해는 발슈아호, 아랄해,카스피해, 또는 흑해 중의 하나로 보게 되면 이들 내해와 천산산맥사이에는 파미르 고원(오늘날 타지키스탄)의 아래 즉 오늘날중앙아시아인 유라시아 대초원에 환인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이어 삼성기 상편에서는 (…日降童女童男八百 於黑水白山之地…) 흑수와 백산이 나오는데, 흑수는 내해 특성상흑해,카스피해 언저리로 추정되고요, 백산은 우랄ㆍ알타이,천산산맥,곤륜,파미르고원,힌두쿠시,히말라야 산맥 등으로 동양과 서양을 갈라 놓은 빙하기의 거대한설벽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또한 한단고기에는 환인국의 강역이 남북 5만리,동서 2만리로 인구가 1억이 훨씬 넘는다고 했으니,천해를 흑해로 보면 그 동쪽과 천산산맥사이의 유라시아 대초원으로 바로 해로도토스가 언급한 스키타이 아홉 부족의 활동 강역 안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바로 이 강역 안에파르칭거가 '이 시대의 위대한 발굴'이라고 칭하는 유적지가발굴됩니다.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의 남동부 우르파시에 위치한 '괴베클리테페' 유적인데요. BC10,000년~8,000년도의유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족을 상징하는 동물들이 새겨진 20톤~50톤 규모의 돌기둥으로 된 신전이나 회합, 제의 장소로 추정됩니다. 이곳을 스키타이 환인국의 유적지라고 한다면 환인국은 국가 성립 이전의 부족연맹체 정도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인근에 BC 7,100년 전의 또 하나의 도시 유적지 차탈휘위크도있지요.특히 오늘날 이 지역의나라들은 모두 한 어원에서 출발한 국명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아사달(阿斯達)의 어원인 아이사타입니다.영어로 이스타( -isata)로 표기 되지요.오늘날 중앙 아시아 우즈베키스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키르키스탄,카자흐스탄....심지어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도 조차 이 어원이 발견됩니다. 이스타는 '해뜨는 동방'을의미하며,아사달은 해뜨는 동네...아침동네...朝鮮...(일본말도 아침은 あさ)...등으로쓰여지고 있습니다. 아이샤타-isata-아사달-아덴,아르덴,아나톨리아 등으로 오늘날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지역 명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헐…오늘은 환인국의 스키타이 9부족이동쪽으로 이동한 이유를 쓸려고 했는데..삼천포로 빠졌군요. 다음엔반드시 환인국 스키타이 아홉부족, 즉 구환의 무리,구이가동진한 이유와 연대기를 짜깁기 해보겠습니다. [#4WonderWoman 'KAMUI' Project-스키타이 환인국의東漸(동점)]헤로도토스는 9년동안(bc454~445)는 흑해 북쪽 연안 그리스 식민지 올비아방문시 토착민에게 수 천년 전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 그의 저서’역사’에 기록했습니다. 그때는 우리 역사는 고조선 43대 단군인 물리가 통치하던 때이군요. 그는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과 읽은 것, 그리고 들은 것을 구분하여기록하여 객관성을 높여 인류 역사의 아버지로 불립니다.그가 당시 토착민으로부터 들은 스키타이 부족에대한 이야기는 그로부터 한참 전의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그러니까 해로도토스가흑해 북안을 방문했을 때보다 무려 8,000여년전 지금의 터키 중부의 아나톨리아 고원의 괴베클리테페는신석기 시대(BC 9,000년~8,000년)전 부족 연맹체의 거대한 숭배의식을 치른 것으로 보이는 유적지입니다.마치그리스의 파르테논처럼 구릉 위에 대형 건축물이 집중되어 있지요.그 주위는 농경과 목축의 원시 정주민이 유적지가 산개되어 이 건물군을 세계적인 스키타이 전문가인 헤르만 파르칭거 신전 혹은 왕궁 추정합니다.내부는위험한 야생동물의 부조,발기된 남근,인간머리를 한 동물 부조와조각상인 T자형 기둥조각 200여개 발견됩니다.학자들은 그 돌기둥 유적을 국가이전의 정치조직인 부족연맹체의 200여부족의 픽토그램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기둥조각은 높이가 최대 7m,20~50톤의단 한 개의 바위로 구성된 거석은 적어도 500여명의 힘이 필요한 거대 석조 조형물로 당시에 위계가분명한 조직적 사회구조와 집단 숭배 또는 회합을 해야 하는 부족 연맹체의 특성이 담겨 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저 또한 이른바 스키타이의 선조들, 즉 스키타이 환인국의 유적으로보고 있습니다. 九夷의 한 부족이었던 돌궐, 즉 셀쥬크,오스만 투르크족이 조상인 오늘날 터키도 저와 같은 생각인 것 같네요.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인유라시아 평원에 산개해 있던 북방 유목민족 특성상 주기적인 회합의 필요성이 대두돼 북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인 괴베클리테페를 그들만의부족 공동체 장소로 삼은 것 같습니다.주변에 동물뼈가 무더기로 출토된 것으로 보아 숭배의식 또는 대형축제 장소였겠네요. 괴베클리테페는 야생식물과 동물이 재배되고 가축화되는 등(오늘날 외알밀의 유전자 검사 결과 주산지)인류 문명의 태동지 역할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아래쪽은 우리가 농업혁명의 시원으로 보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 위치해 있습니다.이렇게 한 3,000여년 정도 호황을 누리던 이 지역에 드디어 변고가 생깁니다. BC 6,2000년경미속스 기후 변동기가 오자 이 지역의 기온이 급강하하여 초목이 사라지는 사막화 현상이 발생합니다. 아프리카사하라 사막부터 중동을 거쳐 중국의 고비사막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적으로 건조벨트 사막화가 진행되지요. 그사막화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되거나 가속화 되고 있으니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겠습니다.중앙아시아, 유라시아평원, 그리고 아나톨리아 고원의 차탈휘위크, 괴베클리테페,북 메소포타미아에 정주하던 인구가 이동을 시작하여 북서쪽인 흑해,카스피해북안, 그리고 동북쪽인 중앙아시아,몽고,북만주로 이동하여 요하문명의 단초가 되지요.일부는 남쪽인 유프라테스와티그리스로 내려가 메소포타미아 문명,또 일부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더스강 유역 유역의 인더스 문명의발생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이시기 즈음하여 해로도토스가 언급한 스키타이 환인국 아홉 부족의 조상들도동점하여 세운 나라가 바로 환웅의 밝달국(배달국)의 시원으로보고 있습니다.*다음 편엔 이러한 기후 변화에 따른 스키타이 환인국의 동점을 환단고기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와 그들이 이동로로 택한 시베리아 초원지대와타이가 숲에서 여전사 부족 아마조네스의 후예 사우로마타이족이 곰을 숭배하는 모계사회로의 변화 과정을 유추해 보겠습니다.[#5WonderWoman 'KAMUI' Project-스키타이 환인국의동점(2)]스키타이 환인국의동점에 대해서 삼국유사는 서자 환웅이 자주 인간세계에 뜻을 두웠으므로 환인이 그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워 인간을 교화하고 홍익인간 하라며 보냈다고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태백일사신시본기에는 환웅이 환인국에서 분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비교적 상세히 설명합니다.‘조대기에 의하면 당시 사람이 많고 생산이 궁핍하여 살아갈 방법이없어 근심거리였다. 서자부 대인 환웅이 저간의 사정을 깊이 듣고 살핀 뒤 하늘에서 내려가 지상에 광명세계를열고자 하였다. 이때 안파견(환인국 7대 지위리 환인)금악,삼위,태백을 두루 살핀 뒤 태백이 가히 홍익인간 할만하므로 환웅에게 천부인 세개 와 풍백,운사,우사와 함께 무리 3천으로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열게 하였다 .’朝代記曰 時人多産乏憂其生道之無方也…당시 환인국은 중앙아시아지금의 흑해,카스해,아랄해 동서남북 연안을 아우르는 방대한지역의 풍요로움으로 인해 3천 년동안 인구 급증한 것 같습니다.또한육빙이 녹아 내린 결과 내해들의 해수면이 차올라 말 그대로 삶의 터전인 초원 땅의 부족과 타 부족간의 경쟁 심화로 척박한 고원지대로 이동해야만하는 상황이었지요. 환단고기의 降天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고 이런 고지대 높은 곳에서 내려왔다는의미로 해석하시면 되겠습니다. 삼국 유사의 天降之族은 하늘이 아닌 북쪽이나 높은 곳에서 내려왔다고 보는것이 맞습니다.환인국은 제1대 환인 안파견(거발환)이 BC 7,197년에 건국하여, 혁서,고시리,주우양, 석제임,구을리 그리고 7대 지위리 환인(BC3,898년)까지 총 3,301년 동안 존재했던것으로 보입니다.이렇게 되면 한 사람이 평균 471년씩 통치했다는 의미이니 말도 안되죠.저는 이들의 후예인 신라가 내물 마립간,즉 내물왕 이전에 박,석,김씨가 돌려가며 신라를통치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부족 연맹체의 특성상 부족끼리 서로 돌려가며 통치 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지요. 이런 현상은 고구려에서도, 고려초기에도 지방 호족들의 발호에서 발견할수 있습니다.즉 거발환,혁서,고시리 등등은 부족 이름으로 보면 의문이 풀립니다.즉 각 부족 내에서돌려가며 통치 했다는 의미입니다.어째든 환인국 건국 BC 7,197년 이후 BC 6,200여년전에 미눅스 기후 변동기가오며 이 지역의 사막화가 진행되자 BC 3,898년 지위리 환인 때 서자부 대인 환웅이 더 이상 못견디고 일부 무리를 이끌고 중앙아시아를 떠나 동진하여 만주 벌판에 도착한 것으로 보입니다.그렇다면 여전사 부족아마조네스의 후예인 사르마트족의 행로가 궁금해집니다. 지구는 환경과 생물체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스스로 균형을 찾는다는 가이아 이론이 맞는 것 같습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중앙 아시아에 이어 중국 고비 사막까지 진행되는 사막화 현상을 유발한 미눅스 기후 변동에 반발해서 시베리아는 BC 5,000년~2,000년 아틀랜틱 기후 변동기가 찾아 옵니다. 이 때문에 시베리아 초원과 그보다 높은 위도의 타이가 숲 지역은 과거와 현저히 다른 기온 상승과 강수량이 증가하여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합니다.이런 환경의 변화로 여전사 부족의 후예인 사우로마타이의 사르마트족은이 시베리아 타이가 숲을 가로질러 극동인 북간도나 사할린 지역으로 동진한 것으로 추정 됩니다.이시기 기온은 현재보다 따뜻했고, 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높아 유라시아 북부 기후는 동식물 성장에 이상적인 기후가 형성 되었지요. 모든 동식물의 번식력이 최고조에 이르고, 숲 지대 최대한 확장하여북극 툰드라와 타이가 침엽수림의 경계가 이 시기만큼 북쪽인 때는 없었습니다. 이 지역은 식생이 풍부하여농경이나 정착을 하지 않고 사냥,어로,채집 생활만으로도 생존에충분했으며, 주거지를 자주 이동하는 바람에 이동형 주택으로 1m이상굴을 파는 움집형 주거지 유적만 간간이 러시아 과학자들에 의해 발굴되고 있습니다.이 부분이 환단고기의웅족의 구멍 (穴)과 삼국유사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의굴로 연관 지을 수 있겠네요.굴(穴)은 작게는 주거지 마을이나 크게는 특정 지역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다음에는 정수일의고대문명교류사를 통해 아마조네스의 후예 사우로마타이족의 이동 경로의 분기와 그중 극동,사할린과 북간도까지이주해서 현재까지 살고 있으며, 그 후손으로 추정되는 곰토템 부족 길랴크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20-06-16
최후의 문명[4]-한국미술의 미래를 향한 좌충우돌의 여정!
16.황금가지1,2 -조지 프레이저/한단고기/해로도토스의 역사낭만주의 풍경화로 대륙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월리엄 터너의 명작 '황금가지'를 표지로 고집한 조지 프레이저 경....이탈리아 아리키아지역 네미 마을의 숲에서 사냥과 다산, 그리고 축복의 여신 디아나를 숭배하며 숲과 성소를 지키는 유한의 사제왕과 만물의 수호여신이자 대지와 가축,다산과 풍요, 무한한 숲의 여신인 디아나를 매개로, 전세계 모든 민족의 역사 이전의 신화의 탄생 과정을 집대성합니다. 특히 신이 아닌 사제직의 계승과 관련하여 반드시 전임자를 죽여야 하는 특수한 살해 규칙을 규명하여 이 비극적 관행이 낳은 비애의 철학(비극)의 시원을 제시하지요.또한 미개 신앙의 신에서 인간의 신, 즉 군주나 왕으로 권력이 전이 되는 과정 저술은 모든 민족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매우 흥미롭습니다.숲의 여신 디아나를 수호하는 인간 사제는 누구든지 아리키아 숲의 신성한 나무(떡갈나무)에 기생하는 황금가지(겨루살이)를 꺽는 인간의 도전을 받습니다.겨우살이가 본체인 떡갈나무에서 분리된다는 것과 이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이렇게 선임자를 살해 이유는 수렵과 유목,농경 사회에서 익히 발견되는 신 살해관습에서 연유하지요.특히 죽어 사라지는 신은 그동안 부족내 누적된 불행과 죄악을 떠맡아 영원히 짊어지고 간다는 생각은 선사시대 인류의 익숙한 사유였습니다.고통이나 슬픔도 다른 사람에게 옮겨 대신 감당하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이러한 代贖원리는 무형의 신뿐만 아니라,동물신(희생양) 심지어는 인간(인신공양)에게 까지 행해집니다.특히 공적인 재앙의 추방과 전이는 수시로 또는 정기적으로 열리는데 주로 혹독했던 지난 겨울신을 추방하는 봄의 축제나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면 희생 동물로 제사 지내는 추수감사제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아무튼 인류가 진화하며 사회적 문화적 지수가 높아지면서 이러한 원초적이고 잔인한 관습이 점차 사라진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프레이저경의 황금가지에는 우리 민족의 탄생 신화와 관련 지어볼 특이한 사례가 담겨 있는데요.동물신 숭배와 관련하여 곰을 숭배하는 사할린 지역의 길랴크족입니다.숭배 대상 동물을 살해 후 먹지 않는 이집트의 경우도 있지만, 속죄의 제물로 평소에 사냥해서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렵형 유전자를 갖고 있는 북방계인 길랴크족은 숭배 대상인 곰을 적극적으로 먹었습니다.지금도 사할린 일부 주민들을 곰을 숭배하고 축제를 여는 풍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이쯤해서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사할린 지역의 곰을 숭배하는 길랴크족을 주목합니다.삼국유사와 삼성기 하편에 곰과 호랑이..그리고 마늘과 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른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군신화지요. 다만 다른점은 삼국유사에는 곰과 호랑이가 동물로, 삼성기에는 사람인 백성으로 나온다는 점입니다. 태백일사에는 좀더 구체적인 서술이 있습니다.'이때 곰과 호랑이가 이웃하며 같이 살았다.그들은 항상 신단수에 기원하며 환웅에게 청하여 천계의 백성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우리는 곰과 호랑이가 동물이 아닌 실제는 주변의 부족민인 백성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겠습니다.택백일사 '신시본기'는 '삼성밀기'(세조가 수집하라는 왕명에 목차에 들어 있음)의 내용입니다.'환웅의 배달국 말기에 주변에 다스리기 어려운 부족이 있어 이를 우환으로 여겼다.원래 살던 무리는 호였는데,뒤에 이주해온 무리는 웅이었다.호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며, 오로지 약탈만 일삼았으며,웅은 어리석고 자만하여 서로 조화하지 못했다.같은 지역에 살면서 서로 돕지도 않고 혼인도 안했으며 매사에 서로 길이 달랐다.熊의 여왕이 환웅에게 신덕이 있음을 전해 듣고 찾아와 굴(穴;지역)을 하나 내주기를 청하니 환웅이 허락하여 아들을 낳았다.虎는 끝내 깨닫지 못하니 사해 밖으로 쫓아버렸다.'윗글 중 웅의 여왕(熊女君;학자들은 모계사회로 추정) 대하는 순간 앞에서 언급한 해로도토스가 언급한 스키타이족 중 여인부족 여전사 아마조네스족들이 스키타이 훈남들과 새로 만든 사우로마타이족이 떠오르는 것은 저 만일까요? 특히 원문에서 백성을 뜻하는 한자가 백성 '民'이 아닌 백성 '맹氓'(이주해온 백성)이어서 더욱 흥미롭습니다.저의 결론은 조지 프레이저경이 언급한 사할린의 곰 토템족인 길랴크족은 뒤늦게 흑해 연안에서 동진한 스키타이 모계 부족인 사우로마타이족의 후손이며 이들이 바로 단군신화의 실체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아직 개인설이니 딴지 걸지 마시라능...ㅎ17.한민족의DNA를찾아서-김석동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전 세계에서 땅넓이 109번째,인구 26번째,동북아의 작은 반도국가..그것도 두 동강난...우리 조국 대한민국입니다. 한국 전쟁이후 197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 출발한 우리 경제는 반세기만에 경제규모 세계 11위,제조업 5위,수출 6위,외환보유국 9위로, 한국전쟁 후 경제가 40여배 성장한 최강의 IT국가이며, BTS와 영화 '기생충' 보유국입니다. 우리는 대충 알고...세계는 정확히 알고 있는 사실들이죠.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보니, 썰물이 되자 우리만 빤스를 입고 수영을 했더군요.그동안 서구문명국이라고 믿고 있었던 나라들...본전(?)이 다 들통났습니다.ㅎ 특별한 지도자나 위대한 영웅없이 이렇듯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민도(국민성)까지 동시에 거머쥔 우리 민족은 도대체 누구일까요?저만 궁금해 한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유라시아대륙을 종횡하며 대제국을 건설하고 유럽을 수시로 유린한 북방 기마 민족의 역사속에 오늘날 우리민족이 가진 세계적 경쟁력의 DNA가 있음을 실제로 몽고고원,중앙아시아,유럽대평원,북만주 등 50여차례 탐방을 통해 실증한 분을 소개해 드립니다.바로 금융실명제때 실무을 담당하고, IMF국난 극복에 큰 기여를 하신 前 금융위원회 김석동위원장입니다.저자는 잊혀진 우리 민족의 고대사를 통해 우리 한민족의 DNA를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미래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밝힙니다.저는 그것이 한국 미술의 미래도 보장한다고 생각하는데 저와는 한끗 차이만 다르군요.ㅎ유럽 대평원-남부러시아-중앙아시아-우랄/알타이산맥-몽고고원-만주벌판...이 광활한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북방기마민족의 부족 연맹체! 바로 스키타이부터 시작됩니다.이들의 후손은 곧 역사시대에 바로 우리가 귀에 익숙하긴 하지만 누가 누구인줄 몰랐던, 흉노/선비/돌궐/몽고/여진/숙신/말갈/읍루/예맥/동이/구이족들로 불리게 됩니다. 말과 활을 바탕으로 기동성,활동성,용감함,전투적,수용성,순응성등을 두루 갖추고 정복과 약탈, 그리고 교역과 정착으로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페르시아 북동부,아랄해,카자흐초원,키르키스초원,우랄,알타이,천산산맥 일원에서 다원적 문화를 창조시킨 촉매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인류 문명의 근원지인 서남아시아(메소포타미아문명,인더스문명,이집트문명)라는 방죽에 미꾸라지 역할 을 한 셈입니다.ㅎ 그리스에 청동기 문화를 전하고 이집트 파라오에게 조공까지 받았던 기록이 있지요.혹독하고 잔인한 약탈로 주위를 초토화시켜 독일의 스키타이 전문가 파르칭거가 발굴한 수많은 이들 지역의 선사 유적지에는 유골에 상처가 난 집단매장지가 수두룩합니다.ㅠㅠ 오죽했으면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1세가 무려 70만 대군으로 소탕을 시도하다 실패한적이 있지요. 암튼 무거운 조공과 혹독한 약탈 덕분에 민심을 잃은 스키타이족은 기원전 1세기 쯤 정주민화되어 정착하거나 멸망해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하지만 이들의 선조 스키타이족은 기원전 4,000년 쯤 간빙기로 빙하로 덮혔던 우랄과 알타이 산맥 사이의 카자흐 고원이 열리자 동진하게 되지요.한단고기를 보면, 환인국 지위리 환인(지위리 왕조)기원전 3,898년 서자부 대인 환웅으로 하여금 천부인과 아홉무리(구이족)3,000명을 이끌고 흑수(흑룡강)와 백산(백두산)의 신단수아래에서 신시를 열고 밝달국(동녘,태양,광명의 배달국)을 건국합니다.중국역사에서 서융,북적,동이족으로 폄훼된 모든 북방유목기마민족 대부분이 거발환 환웅의 배달국, 단군 왕검의 고조선의 같은 부족이라고 보시면 틀림이 없습니다.이책에는 중궈들이 오랑캐라 비웃던 배달국,조선국 부족연맹체의 예하 부족들이 어떻게 유럽과 중국을 유린하며,세계사를 만들어 가는지 소상히 담겨 있지요. 먼저 이름도 흉악하긴하지만,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는 고조선의 속민으로 나왔던 흉노족은 기원전 300년 북중국,몽고고원,중앙아시아(흑해,카스피해,아랄해 연안)를 아우르는 최초의 스텝 대제국을 세웁니다.이들의 후예인 훈족은 AD4세기쯤 부활하여 유럽을 강타,이들을 피해 남하한 게르만민족에 의해 그 유명한 로마제국 멸망의 단초가 되지요.흉노의 뒤를 이어 AD156년 또다른 부족인 선비족이 나타나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북중국을 지배합니다.그뒤를 이어 AD552년 흉노의 후예인 돌궐,투르크족인 유라시아 대초원을 정벌하고 투르크 제국을 건국하여 비잔틴 제국을 격파합니다.이들중 아나톨리아 고원의 오스만 투르크는 유럽까지 지배하다 오늘날 형제국인 터키가 되지요.또 그뒤를 이어 몽고의 칭기스칸이....ㅠㅠ 유럽인들은 이 스키타이의 후손들에게 학을 뗐겠지만, 이들은 어쩌면 자기 조상들이 활개치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회귀본능이라고나 할까요?ㅎ만주의 여진족은 퉁그스족과 몽고족의 혼혈인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을 멸망시키고 금나라를 세웁니다.후금의 누루하치는 중원을 접수하고 청나라를 세우죠. 이들 모든 부족은 모두 我에서 분리되었다고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말합니다.신라 문무왕비에 흉노의 후손임이 자랑스럽다는 생경한 기록이 이제 이해됩니다.흑해 연안의 스키타이 황금 유물이 신라 고분에서 발견되는 것도요.ㅎㅎ이제 우리 한민족이 세계를 상대로 활개를 칠 차례가 된 것 같군요.어쩌면 이미 이전 역사와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반도체,스마트폰,자동차,조선,가전,디스프레이,철강,화학,건설,스포츠,영화,드라마,K-Pop,게임,성형,바이오,IT.....등등 우리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다음은 우리 조상들이 선물로 준 소중한 DNA를 믿고 K-Art 신드롬을 만들어 봅시다.18.한국인의얼굴몸뇌문화-조용진어느덧 총정리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군요.그동안 시공을 초월한 사유의 공간에서 좌충우돌 헐떡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중구난방(衆口難防) 두서없이 내질러 논 퍼즐들이 조용진 교수님의 명저 한권으로 총정리가 됩니다.제가 언급한 여러 책들도 중요하지만, 혹시 오늘날 우리 한민족의 급부상에 대한 원인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책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조용진 교수님은 우리나라 유일한 미술 해부학자로 한국인의 형질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단지 미술계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 전반에서 일어나는 부흥 현상에 대한 원인과 현상, 그리고 전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요즘 전 세계적으로 인종 차별 문제가 심각하지요.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아프리카인을 조상으로 두고 있습니다.피부색을 기준으로 인종을 나누고 있지만, 이 피부색이라는 것은 비타민D를 태양빛으로부터 얻기 위하여,빛이 많은 아프리카인는 과도한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멜라닌 색소를 높인 결과이고, 반대로 유럽인은 빛이 적어 멜라닌 색소를 낮춘 결과물이지요.유럽인이 혼혈없이 아프리카에 가서 2~3천년 살다보면 다 흑인이 됩니다.ㅎ여하튼 열심히 고기를 먹고 체력과 힘을 비축한 호모 에렉투스가 아슐리안 계통의 석기와 불 활용 능력을 가지고 약 100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납니다.그중에서 주시야가 우시안의 형질을 가진 개체는 본능적으로 우측을 향해 근동,중동, 순다 랜드 거쳐(일부는 호주 뉴질랜드로 감) 극동인 한반도에 도착...베링육교를 지나 아메리카로 건너 갑니다.웬지 모르게 좌측으로 끌리는 죄시안은 이집트까지 올라 왔다가 그 반대인 좌측, 즉 유럽으로 진입하게 되지요.지중해 남안이나,북안 또는 서아시아,중앙아시아 흑해 및 카스피해에 머물다 서진한 경우도 있습니다.미술 해부학 측면에서 보면 우시안와 좌시안인들은 거주지 환경과 기후에 따라 서로 다른 형질로 진화를 하게 됩니다.주로 빙하기에 낮아진 해수면으로 개방된 해안로로 이동한 우시야인들은 주변 환경이 따뜻하고 식량이 풍족해 주로 채집생활을 하지요.울창한 밀림속에서 채집을 하기 위해서는 후각,촉각,청각이 예민해지고 시각은 근거리에 맞춰져 보다 정밀해집니다.항상 오른발이 먼저 나가고, 오른쪽 떡이 더 커보이며...ㅋㅋ 글도 오른쪽 부터 시작하려 아래로 씁니다(정글에서 열매를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따야해서 상하시가 발달함...).특히 미술 작품을 보면 그 특징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데요.작품에 명암이 없고,원근감은 개무시되며(심지어는 역 원근법) 쓸데없이 디테일한 묘사를 하고 작품이 모두 부분시가 반영된 평면적이고 개념적인 성향이 나타납니다.특히 본적도 없는 세계(밀림 너머의 세계..)를 상상해서 그린 관념화에 능숙합니다.반면에 좌측으로 간 좌시안들은 울창한 밀림 대신 탁 터진 초원을 마주하게 되지요.채집할 식량이 없다보니 대신 사냥을 합니다.당연히 시각이 다른 감각들보다 우선하겠지요.거리감과 공간감은 사냥을 해야 하는 이들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줍니다.투창을 하기 위해서는 왼발을 앞에 두고 몸통을 힘것 뒤틀어야 멀리, 그리고 빠르게 창이 날아갑니다.그래서 미군은 행진할때 왼발부터 내딪지요.Your left,Your left,Your left right! 당근 영어등 그들의 문자도 왼쪽부터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향합니다(좌우시).초원에서 수평이동하는 동물들을 사냥하는 습관에서 연유된것이지요.페북의 인도나 중동 친구들의 언어를 보면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수평이동하는데 우시야를 가졌지만 밀림이 아닌 사막이라는 탁 터진 환경 때문인 것으로 추정합니다.그렇게 때문에 좌시안 인들의 미술은 전체시가 반영되어 명암법,투시도법 등 공간감, 즉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표현합니다.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들이 모두 그렇습니다.그렇다면 암흑기인 중세 1,000년동안의 이콘화에는 왜 명암과 원근감이 없이 평면적일까요? 그것을 기독교의 탄생지가 유럽이 아닌, 우시야인들이 정주했던 서아시아로 우시야적 특성이 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만약 어떤 특정한 민족이 이 두형질을 가졌다면 어떻게 될까요?일단 유태인들이 떠오르네요.북아프리카,유럽전역,남부러시아,서아시아 지역에서 나라없은 천덕꾸러기였던 유태인들....최다 노벨상을 수상했으며,전세계 금융과 언론, 그리고 정치까지 장악한 막강한 민족입니다.또 다른 한 민족이 있는데...바로 우리 한민족입니다.우리민족이 형성된 한반도는 빙하기때 아프리카를 떠나 해안로를 통해 이동한 우시안,남방계인 호모 에렉투스와 그이어 도착한 호모 사피엔스의 중간기착지였지요, 그러나 BC 1만 1,000여년전 플라이스토세가 끝나고 간빙기인 홀로세가 시작될 무렵,우랄*알타이 산맥사이의 카자흐 초원이 열리자 드디어 좌시안의 북방계 수렵인들(스키타이족들,환웅 배달국)의 본격적인 동진(그이전에도 산발적인 동진한 북방계...추위에 강한 퉁그스계도 있었음)이 시작됩니다. 마침 차오르는 바닷물로 베링육교가 침수되자 한반도와 북만주는 그야말로 다양한 형질을 가진 인종의 아수라장이 됩니다.지난 수천년동안 우리 한민족은 혼혈 단계를 넘어서 치환단계가 현재도 진행중입니다.경기도 수원을 기준을 형질 검사를 한 결과 남방계 32.7%,북방계 34.6%, 중간형 33.6%으로(그러니 정치적으로 맨날 싸웁니다. 중도층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죠) 아시아 지역에서 중간형의 발현율이 30%이상 난 나라는 싱가폴과 중국 우환뿐이라고 합니다.중국(우환제외 북쪽은 북방계,그아래는 모두 남방계)과 일본은 아직 혼혈단계(일본은 78% 남방계,북방계는 그나마 한반도에서 건너간 22%정도...섞인 중간층 없음)로 보입니다.어쩌면 우리 한민족인 인류가 가진 다양한 형질의 유전자가 가장 많이 섞인 민족일 수도 있겠습니다.단일민족이 아닌 다원성의 유일민족!이결과가 다양한 분야의 문화와 산업,스포츠,예술 그리고 민족성에서 이미 발현되고 있습니다.전 그 다음이 K-Art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이제 우리의 정체를 정확히 알았으니 서양애들이나 중궈에게 쫄지 말고 우리 유전자 자체에서 우러나는 영감이 발현된 미래의 세계적인 명화와 위대한 화가의 출현을 고대합니다.다음 주엔 자랑스런 한국인의 미의식과 미학에 대해 최광진 교수님의 '한국인의 미의식'과 미학인 '신명과 해학'을 정리해 보겠습니다.19.한국의미학,#한국의미의식1신명,#한국의미의식2해학- 최광진 지음근동....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에 나오는 말입니다.생소한 이말은 유럽인들이 유럽을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아시아를 지칭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죠. 좀더 먼 아시아는 중동....아주 먼 아시아는 극동! 우리는 한중일을 한다발로 보는 극동에 살고 있는셈입니다.만약에 우리가 중심이 된다면 유럽은 극서인 머나먼 변방이 되겠네요.ㅋㅋ서양,중국,일본과 다름을 논하다! 최광진 선생의 명저 '한국의 미학'의 부제입니다.한국의 미학은 서양과는 분명히 다르겠지만,같은 극동인 중국과 일본의 미학과도 다르다는 것이 이책의 핵심이죠.지금까지 제 포스팅을 쭈욱 읽어온 분들은 왜 우리의 미학이 같은 지역에 존재하면서 중국, 일본의 미학과 다른지 감이 오시죠?ㅎㅎ유전적 형질이 다르기 때문에 발현된 미학도 당연히 다른 것으로 봐야겠습니다.신과 인간,미와 추가 분리되는 이분법적인 서양 분화주의 미학에 비하여, 동양의 미학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통합되는 점에서 크게 다릅니다.하지만 통합을 다루는 같은 동양 미학도 극동 한중일 3국간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우주중심적 통합을 지향하는 중국 동화주의 미학은 인간이 우주와 동화 되는 '천인합일(天人 合一)'을 미적 이상으로 삼습니다.이에 비하여 사물 중심적 통합을 추구하는 일본의 응축주의 미학은 우주성이 구체적인 사물에 응축되어 인간의 감정이 이입됨으로써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른다고 보지요.하지만 한국미학은 그 중심이 우주도 아니고 사물도 아닌, 바로 인간에 방점을 둡니다.통합을 하되 인간 중심으로 통합을 하지요.천-신인묘합(天-神人妙合),신과 인간의 어울림...우주와 대자연과 인간은 상극이라 어느 한쪽이 주종의 자리나 일방적인 포함이 아닌, 맞서되 묘하게 어울리는 인간 중심의 接化주의 미학입니다.근대 서양 미학은 동양을 서양의 문화적 식민지로 보고 순수성과 보편성을 과도하게 밀어 붙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칸트의 보편주의 미학인데요.이런 보편성 회피를 위해 각 민족 문화의 특수성을 존중해주는 풍토가 절실하다고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가 말합니다.민족은 환경과 역사를 공유한 강력한 삶의 공동체로 그 민족의 예술은 개인의 천재성의 발로가 아닌 민족의 시대정신과 민족 고유의 정서의 발현으로 보고 있지요.언뜻 세계의 보편적 미술과 민족 미술은 대립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각 민족의 고유 정서를 진솔하게 표현하고 인정한다면 변증법적 보안을 통해 세계성,보편성에 이를 수 있다는 보는 것이 맞습니다.말이 안된다고요? 그럼 잠시 방탄소년ᆞBTS의 이영상들을 보고 가겠습니다.https://youtu.be/a8MaTFce0EQhttps://youtu.be/Vwcjjfxphz4한국미술에 대해 독일의 미술사가 젝켈은 위엄과 매력,정제된 우아함,솔직 담백하며, 기술에 얽메이지 않은 자연성,무기교의 기교,고고한 기품과 완벽주의의 배척하지만, 너무 추상적이라 공허하고 관념적이라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군요.맥퀸은 냅핍을 관조적으로 보고 값싼 재료로 단순하고 소박한 선과 형태로 다룬 점에 주목합니다.일본의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예술을 무명의 민예에서 찾고 비애의 곡선과 한이 서려있는 백색에 의미를 두기도 하지요.또한 에카르트신부는 과장과 왜곡이 심한 중국미술과 차가운 감정과 틀에 박힌듯한 일본 예술 사이에서 위대한 조율성과 섬세한 감정으로 중용을 지킨 고요함과 정제된 형식미를 한국 미술의 특질로 보았습니다.앞서 우리민족 구성은 인류학적으로 수십만년전에 이동해 온 호모에렉투수(구석기,중석기인)와 4~5만년 올라온 호모사피엔스(후기 구석기인)의 남방계 채집형 유전자에 1만년전 이후에 북방로로 도착한 북방 기마 유목민인 청동기인들의 혼혈로 중국,일본과 상이한 유전적 형질의 차이를 살펴보았습니다.당연히 이런 민족성에서 나오는 미의식이나 미학은 달라야겠지요. 한국인의 궁극적인 미적 이상인 천-신인묘합(天-神人妙合)의 구조를 살펴보면, 시각적 양태를 표현한 멋!,심리적-감정적 느낌인 시훤!,행위성을 강조한 풍류!로 나뉘죠.여기서 파생되는 미의식이 바로 신명,해학,소박,평온입니다.신명과 해학은 이미 별권으로 출판되어 있습니다.한국적 표현주의인 신명을 말 그대로 귀신이 내 안에 나타난 상태를 의미합니다.광란과 격정, 그리고 광기의 파토스(Phatos)입니다.맞습니다. 신명나게 일하자!신명나게 한판 놀자...한국인은 자신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보다 신명난 상태로 현실 문제와 시련을 극복한 저력이 있습니다.초월적 정서처럼 보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언제든지 발현 가능한 미의식이죠.바로 律動呂靜...율려를 통해서지요.팽창과 수축...진동과 고요...춤과 음악에 맞춰 음결과 몸결,그리고 숨결의 일치가 바로 율려라고 보면 됩니다.위에 올려논 방탄소년단의 춤과 노래에 전세계인 반응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한국의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해학!모든 시대는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가 있지요.인류가 태초부터 가졌던 원초적 자유에 대한 욕망이 억압되면 분노와 좌절,열등감과 같은 부정적이고 불쾌한 정서를 갖게 됩니다.우리 한민족은 어쩌면 삶의 역경과 난관에 해당하는 현실에 대한 불쾌한 정서를 웃음으로 반전시킬수있는 달관의 지혜를 가졌습니다. 바로 불쾌의 정서를 쾌의 감정으로 승화시키는 해학입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우월하거나 숭고한 대상앞에서 괜히 주눅이 들지요.하지만 그 숭고했던 대상이 갑자기 왜소해지거나 만만해지면 웃음이 나오며 긴장이 이완되면서 묘한 쾌감을 느낍니다.대상과 화해가 불가한 풍자나 조롱보다는 화해를 전제로 하는 해학적 웃음의 가치가 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게 합니다.다음은 한국의 자연주의 소박미입니다.테크네에서 출발한 서양의 ART는 인위적이고 개인의 천재성에 의존하지만 소박미는 인위적인 가공 이전의 자연스런 본로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이상적인 삶을 표현합니다.일종의 大巧若拙(대교약졸)이라고 보지요.인간의 기교는 결코 자연의 변화 무쌍을 포착할 수가 없습니다.소박은 이렇듯 본질과 전체성을 파악할 때나 비로소 가능한 수준 높은 미의식입니다.평온의 미의식은 한국적 고전주의로 볼 수 있겠습니다.동요하지 않고 고요한 마음상태로 마음의 집착과 갈등의 해소에서 오는 정신적 충만감을 의마합니다.律動呂靜의 여정에 해당하겠군요.채근담에는 고요속의 고요는 진정한 고요가 아니라,분주함속의 고요가 참된 고요하고 하네요.분주하고 괴로운 현실속에서도 평온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혼란스러운 마음을 흡수 표용할 수 있는 명상적 차원의 미의식입니다.저자의 심오한 지혜가가 담긴 책 한권을 단 몇줄로 정리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치나 하겠습니까? 제 포스팅은 수박 겉 핥기이니...우리민족의 중흥에 관심을 가지셨다면 꼭 제가 언급한 책들을 정독하시길 바래봅니다.20.에필로그 고향인 전라북도 진안 마령에서 중학교 다닐때 우연히 들판에서 주운 구석기 시대 타제석기 몇점과 道가 있는 아홉 오랑캐의 나라인 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는 공자의 논어 한구절 말씀이 찰떡같이 달라붙어 우리 민족의 시원을 찾아 헤맨 좌충우돌 여정으로 지난 6개월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무릇 하나의 문화를 넘어선 문명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부(Money)와 문화섞임(Mix)의 결과물(m&m)이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중세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1,100년부터 200년동안 8차례에 걸쳐 진행된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과 근동 아시아의 문화의 섞임과 이탈리아의 십자군에 대한 군수와 약탈 무역의 결과에 따른 경제 부흥과 부의 축적 때문이지, 단지 학문과 예술의 부할만이 르네상스의 발생 원인은 아니지요.이러한 현상은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과 로마제국의 건설의 과정에서도 나타납니다. 속주에서 거둬들인 세금과 문화의 융합 심지어는 혼혈 권장 정책은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 내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 4대 문명 중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 문명의 발상지 언저리에는 항상 촉매 역할을 하며 지역을 휘젓고 다니는 북방 기마민족인 Skythai족이 있었지요.중국의 황하문명 또한 신석기 유적지 앙소지역에 방어시설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오랑캐라고 부르는 북방유목민족의 잦은 침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북방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의 정복과 약탈 무역은 주변 정주민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문화의 흐름을 용이하게 하고, 정착민과의 혼혈로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문명 탄생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이렇듯 역사적으로 보면 문명의 구성 요소인 경제적 부의 축적과 문화의 섞임의 이면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전쟁이나 정복...그리고 약탈을 수반한 폭력적인 과정들이 있었죠.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은 전쟁이나 약탈 무역없이 자력으로 경제적 부흥을 이루워냈습니다.문화 섞임 또한 첨단 IT산업의 발달로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상이한 문화의 융합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냈지요.아마도 우리는 다형질의 유일한 민족이기 때문에 문화의 수용 뿐만 아니라 체화와 전파를 통해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데 유리한 DNA를 가진것 같습니다.그 과정도 전쟁이나 정복 , 약탈이 아닌 지극히 평화로운 방법이니 별다른 저항 없이도 물 스며들듯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저는 21세기 한반도의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 현상을 제 5대 문명이자, 인류 '최후의 문명'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그동안 어설픈 이야기 들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단지 역사적 기록에만 의지하지 않고 기후학,인류학,미술 해부학,지리학,고고학 등등 그동안 주워들은 잡다한 지식을 비비고 비벼서 나름 말이되는...개연성있는 퍼즐을 맞춰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습니다.멋진 말로는 편집학,쉬운 말로는 짜깁기 신공....이렇게 숨 헐떡이게 하는 선사시대라는 고산지대에서 좌충우돌의 여정이 가능했던 것은 마음껏 상상하는 미술을 가까이 했기 때문이라고 우겨봅니다. 코로나 때문에 얻은 황금같은 시간을 절망만 하고 보내지않았다는 기록으로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그럼 종종 이번 공부 과정에서 저혼자만 알고 죽기에는 아까운 재미난 토막 이야기들을 에피소드로 남기겠습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20-06-16
최후의 문명[3]-한국미술의 미래를 향한 좌충우돌의 여정!
11.역사- 헤로도토스(BC484~425)서양 최초의 역사가이자 타고난 이야기꾼인 헤로도토스...페르시아와 그리스 전쟁의 시기(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에 당시 그리스 문화권이던 소아시아에서 태어납니다.타고난 관찰력으로 직접 여행하며 당시 벌어졌던 페르시아 전쟁사를 실증하죠.헤로도토스가 위대한 역사가인 이유는 특정한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고 비교적 제 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역사를 기록했다는 점입니다.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전해 들은 것은 전해 들었다 말합니다.'나는 들은대로 전할 의무는 있지만, 그것을 다 믿을 의무는 없다'.행여 자신의 판단을 기록할 때에는 다른 주장과 분리하여 '나는 이렇게 판단한다'며 그것을 믿고 안믿고는 모두 독자의 판단에 맡깁니다.역사 학자로서 매우 바람직한 자세이지요. 이러니 키케로가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 부를만 합니다.페르시아 제국의 아케메데스 왕조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침공전에 뒤쪽이 찜찜하여 동유럽 흑해 연안에 스키타이족을 먼저 눌러 놓으려고 합니다.참고로 다리우스 1세는 유명한스파르타의 몸짱왕 레오디나스가 나오는 '영화 300'의 못생긴 페르시아 왕인 크세르크세스1세의 아번님(무너) 되시겠습니다.ㅋ스키타이 정벌과정을 헤로도토스가 고스란히 기록하는데요.단순한 전쟁만이 아닌 지리와 인종..스키타이의 역사와 풍습까지 기록되어 있어 제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참 역사는 공시적으로 보면 더 재미납니다. 당시 중국은 춘추전국시대...공자(BC 551~479)께서 세상을 주유하시며 유세하던 시대쯤이고,우리로 치면 고조선 41대 단군 음차에서 44대 단군 구물의 시대가 되겠습니다.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족에 대해 제 4편 1~144장까지 매우 비중있게 다룹니다.우선 스키타이족이 주장하는 그들의 탄생 신화는 제우스와 흑해와 연결된 아조프 해신의 딸의 후손으로... 그리스인들은 헤라클라스와 반인반뱀녀의 후손으로...반면에 해로도로스는 역사학자 답게 북쪽의 맛사게타이족의 압박으로 남하한 부족으로 보지요.이에 대하여 해로도토스는 서사시인 아리스테아스가 언급한 북쪽 부족들에 대해 나열식으로 설명합니다.이들이 모두 다 스키타이족는 아니지만 스키타이와 연관된 부족들을 살펴보면 그리스계 스키타이인 칼립파다이족, 판매용 곡물을 재배하는 농경 스키타이인 보뤼스테네스족, 씨도 안뿌리고 쟁기질도 안하는 동쪽 게르로스강 유목 스키타이, 특히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튓사케타이족과 이위르카이족(이들은 뒤에 언급할 왕령 스키타이족에 게기다 쫒겨옴), 부족들의 분쟁을 조정하는 대머리족인 아르깁파이오이족, 남여가 평등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잇세도네스족, 외눈박이 아리마 스포이족, 대기가 깃털(눈발)로 뒤덮인 곳에 사는 엘리스족, 교역전문인 휘페르보레이오이족 등등....그중에 으뜸은 가장 고귀하고 규모가 큰 스키타이 부족으로 아조프해 지류인 돈강에 거주하는 왕령 스키타이족입니다.그들은 주위의 다른 부족들을 모두 노예로 여기며 황금으로 도배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저는 왕령 스키타이족이 스키타이 부족 연맹체의 수장이란 의미로 받아들입니다.믿거나 말거나 식인을 하는 안드로 파고이족과 대머리족도 있다고 하니....이상 약간 신빙성이 떨어지는 서사시인 아리스테아스의 흑해와 카스피해, 파미르 고원에 산개해 있던 북쪽 유목기마 민족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다음은 미스터 객관주의 해로도토스가 설명하는 북방 기마 민족인 스키타이 아홉 부족에 대해 정리하겠습니다.저는 이 아홉 부족이 한단고기의 삼성기 하편에 나오는 나반과 어만 사이의 아리사타(isata)의 후손인 환인국의 구환(九桓)의 무리로 굳게 믿고 싶습니다.ㅎㅎ12.역사- 헤로도토스(BC484~425)오늘은 어제에 이어 해로도토스의 스키타이 아홉부족을 소개할 시간이었지만, 마침 어제 어쩌면 제가 결말 부분에서 언급할 결론 부분에 대해 의미있는 기사가 나와 미리 살짝 간만 보고 가겠습니다.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가 대표로 있는 국내 게놈 해독기업 '클리노믹스'가 현대인과 고대인 게놈 273개 분석해 도출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우리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라 수만 년 동안 혼혈로 진화한 '다인족(ethnic group) 민족'이라는 연합뉴스 보도입니다.약100만년 부터 호모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확산했지요.일단 근동,소아시아로 이동한 뒤 갈라져, 빙하기가 되면 기온이 따듯하고 해수면이 낮아진 해안로를 따라 동남아 순다랜드를 통해 한반도로 올라옵니다.간빙기에는 해수면이 높아진 해안로 대신 우랄과 알타이 산맥 사이의 초원길이 열려 동진해 도착하지요.그뒤를 이어 호모사피엔스도 기후변화에 따라 두경로를 따라 순차적으로 이동해 옵니다.기사에 의하면 순다랜드를 거쳐 한반도에 먼저 도착한 아슐리안 석기를 쓰는 호모에렉투스를 선남방계(북아시아 지역) 인족으로 보는 것 같군요.학계에서는 이들을 고아시아인으로도 부릅니다. 이윽고 약 4천년 전 북쪽 초원길을 통해 청동기·철기인...(북방기마유목민,스키타이족,환웅의 배달국으로 추정)이 동북아시아에 도착했음에도 선남방계와 그뒤에 이동한 후남방계가 3:7 정도 비율로 혼혈되었다며 ,오직 '수만 년 동안 동북아 인구 펌프 역할을 했던 동남아시아 순다랜드에서 여러 차례 올라온 사람들과 그 자손들의 복잡한 혼혈'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립니다.이 결론은그동안 유력설이었던 '중앙아시아 쪽에서 동쪽으로 대륙을 건너온 북방계와 남쪽에서 온 중국계 남방계가 혼합해 한국인이 형성됐다'는 학설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하는군요.제 의견은 이 결론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는 생각입니다.그들이 북방으로 왔던 남방으로 왔던 그들의 출발점은 소아시아였으며 같은 유전자를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서울 오는데 중부 고속도로로...아니면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한 것처럼요.그러니 유전자 게놈은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모두 주시안이 우시안인 남방계 채집인의 분기이기 때문이죠.또 다른 하나는 절대적인 인구수입니다.비교적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생존환경의 채집형 남방계는 그들의 이동경로의 환경이 아무래도 척박하고 험난한 북방계 수렵형 유목 기마 민족의 환경보다 나아 절대적 인구수의 우위를 점합니다.동부 유럽과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를 유린한 스키타이와 관련된 유적들을 살펴보면 주로 방어시설인 성과 해자를 쌓은 정착민...원시 도시인들은 그 인수가 월등히 많았았음에도 노마드인 스키타이의 정복과 약탈을 피할 수 없었지요.수렵과 약탈 유전자를 가진 북방 유목민족은 적은 수로 다수의 정착민인 남방계를 지배하는 지배층을 형성합니다.따라서 다수의 남방계가 포함된 표본조사는 당연히 남방계 우위의 결과를 내겠지요.마지막으로 이번 연구는 158명의 현대인과 115개의 고대인 게놈(genome·유전체)을 분석했다고 하는데....그 고대인이 홀라세 이전인 BC1 만 1,000여년 이전의 표본이라면 이 연구 결과는 맞는 것입니다.하지만 그 이후라면 간빙기로 접어든 이시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북방계가 우랄과 알타이 산맥 사이...지금의 카자흐스탄의 터진 초원길로 동진해 왔기 때문에 결과는 달라 질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북방계 혼혈없이 다양한 남방계만의 혼혈 후손이라는 결론은 성급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이 문제는 더 다양한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연구해서 판단할 문제인것 같습니다.이부분에 대해서는 결말 부분에 다른 유전자 조사 등을 인용하여 자세히 다뤄 보겠습니다.약속한대로 내일은 삼성기에서 언급한 구환의 무리로 추정되는 아홉 스키타이족들의 다양한 풍속과 특질을 해로도토스를 빌어 정리해보겠습니다.13.역사- 해로도토스 /스키타이족의 이해와 풍습*청소년과 심장이 약한 분들은 마지막 부분을 읽지 말아주시고, 강한 사람들은 원본책을 읽어보세요.스키타이의 아홉부족을 소개하기 이전에 그들 부족의 공통된 풍속을 잠시 살펴봅니다.당시 흑해와 가스피해 연안에 산개해 있던 초원지대의 여러 부족들은 스키타이족을 제외하고 지혜롭지 않은 무지한 부족들로 알려졌습니다.해로도토스는 스키타이족을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을 능가하고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그들이 따라 잡히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은 따라 잡지 못한다'라며 아나카르시스 즉 현인으로 기록했지요.이말은 당시 다리우스 1세가 페르시아 정예병 70만명과 배 600척을 동원하여 흑해에 진입 스키타이족을 정벌 할때 스키타이족의 전략에서 비롯된 말입니다.페르시아 대군을 눈앞에 둔 스키타이 부족 연합군은 하루 정도 걸리는 거리에 진을 치고 기다리다 페르시아군이 진군하면 다시 하루정도 거리의 지역으로 후퇴 하지요.물론 우물과 식량...목초지를 모두 초토화 시켜 페르시아군을 곧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후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침입한 외적들에게 사용한 청야전술(방어적 초토전술)의 시발점인것 같습니다.다리우스는 스키타이에 패하기 보다는 그들을 찾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 하지요.드디어 그들은 보이지도 않은 허상만 쫓아 다니다 지치게 되자 기마술로 인한 뛰어난 기동력과 초원지대의 지리에 익숙한 장점을 살려 적을 초원 깊숙한 곳으로 유인한 뒤 스키타이의 대반격이 시작됩니다.일종의 치고 빠지는 전술....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에 나오는 도망가면서 마상에서 상체를 180도 돌려 활을 쏘는 파르티안 사법도 구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이리하여 저 유명한 다리우스 1세의 페르시아 대군은 속수무책..단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다가 결국 패배하여 되돌아 갑니다.해로도토스는 스키타이족이 도시도 없고 성벽도 없으며, 집을 수레에 싣고 말은 타고 활쏘기에 능한 불패의 부족으로 기록합니다.전형적인 북방 기마 민족의 전형이죠.특히 청동 가마솥을 말 등뒤에 싣고 다니며 취식을 했는데,자칭 흉노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신라의 상형 토기에 등장하는 동북이 바로 그것입니다.특히 장작더미 모양의 신전을 세웠는데, 사각형의 단으로 3면은 가파르고,한 면만 오르게 되어 있는데 그너비가 3 스타디온(옛 단위라 얼마나 넓은지 잘모름)...높이는 그보다 작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마치 북만주의 요하문명(BC4,700년)또는 홍산 문화지에서 발견된 제단형 피라미드를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고구려 20대 장수왕릉은 그 축소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암튼 수레로 150대 분의 장작을 제단위에 쌓아 놓고 단검을 꽂아 놓은 다음 포로 100명당 한명씩 참수한 다음 죽어서도 복수 하지 말라고 오른팔을 잘라 단아래로 던졌다고 합니다.ㅠㅠ 이러한 풍속을 가진 스키타이의 조상 중 일부는 동진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아즈텍 문명의 태양의 신전에서도 인신공양이 그대로 재현됩니다.전쟁은 맨 처음 죽인 적의 피를 마시고 수급을 왕께 바쳐야 전리품을 배분받을 수 있으며, 적의 머리가죽 벗겨 손수건처럼 사용했다고 하니 이런 풍습은 베링해협를 건너간 아메리카 인디언 풍속에서도 이어지지요.지금 기준으로 보면 무자비하고 잔인하기가 이를데 없습니다.문명화 이전의 원초적 폭력이 남무했을 당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좀 유난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이러니 주위의 모든 민족이 두려워 할수 밖에요. 특히 맹약을 신성시 했는데 항아리에 술을 붓고 단지하여 피을 섞은 다음 활,칼,도끼 등을 담그고 나눠마셨다고 합니다.칭기스칸 테무친과 쟈무카의 형제결의,유비 관우,장비(모두 북방기마민족)의 도원결의, 오늘날 동네 발좀 떠는 형님들의 결의가 바로 스키타이의 맹약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우겨봅니다.ㅎ왕이 죽으면 미이라 상태로 만들어 예하 부족을 순회하다 게르로스 지역(오늘날 흑해 북안)에 매장을 하게 되는데,(스키타이 황금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되고 있음...)순장을 하고, 동도 아니고, 은도 아닌 오직 황금으로 도배를 한다음....경쟁적으로 거대한 봉분을 쌓아 올렸다고 합니다. 오늘날 고구려와 신라..백제에서 발견된 왕릉들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사후 1년뒤 차마 여기서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너무 잔인...ㅠㅠ) 순종 스키타이 청년들과 말을 미이라로 만들어 왕릉을 호위하게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이러한 장례 제의식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만 순장제도는 신라 지증왕때까지 남아 있었죠. 그 이전에도 순장제도가 등장하는데 가야 시절...김훈 선생의 '현의 노래'를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다음은 외부 문화에 배타적인 스키타이족의 습성과 원더우먼 탄생에 기여한 것으로 보이는 여인국 아마조네스와 스키타이 족과의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로 잠시 쉬어가겠습니다.14.스키타이족 삼성기(三聖記) 하편에는 '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 한다.처음 아만과 만난 곳은 아이사타(ista,아사달)라 한다.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구환(九桓) 무리는 그의 후손이다.(~ 則九桓之族皆基後也).고대 중국의 많은 문헌에서 언급된 東夷,九夷,九黎(구려)등이 九桓과 같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아이사타(ista), 즉 아사달...광명,아침의 땅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오늘날 이스탄불,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심지어 아프가니스탄이 강역이 있는 흑해와 카스피해, 아랄해 그리고 텐산 산맥까지 흩어져 살았던 구환의 무리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지네요.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제우스와 아조프해신의 딸 보뤼스테네스사이에서 스키타이족 탄생에 관한 신화를 잠시 언급했었지요.어느 민족이나 다 마찬가지로 그 시원은 신화로부터 시작합니다.이제 신화의 시대를 넘어 해로도토스가 기록한 스키타이 아홉부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1)타우로이족난파선이나 바다에서 사로 잡은 헬라스인(그리스인)을 처녀신인 아르테미스 여신에게,인신공양을 합니다.적을 사로 잡으면 머리를 베어 굴뚝위에 메달아 놓습니다.그들은 노략질과 약탈한 전리품으로 먹고 산 모양입니다.2)아카퇴르소이족스키타이 여러 부족 중 가장 세련된 부족으로 대개 황금장신구로 멋을 내고 아내를 공유합니다.모두 가족이고 친족이라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일 없이 모두 화목하게 살아갑니다.3)네로우이족뱀떼 출몰 때문에 나라를 버리고 잠시 이웃 부족인 부디노이족에 얹혀 삽니다.네로우이족은 모두 마법사인지 일념에 한번씩 늑대로 변한다고 하는데..해로도토스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요..ㅎ4)안드로파고이족스키타이 부족 중 가장 야만적인 삶은 살며,정의나 법에 관한 개념도 없고 스키타이족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유목민으로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스키타이 부족 중 유일하게 인육을 먹는다고 하네요.후덜덜...5)멜랑클라이노이족모두 검은 옷을 입고 다녀서 부족이름도 멜랑크라이...스키타이족 관습을 따릅니다.6)부디노이족인구수가 많은 대부족으로, 눈은 회청색,모발은 붉은 색으로 나무로 지은 도시에 삽니다.이들의 말의 절반은 그리스어이고 반은 스키타이 말을 썼습니다.하지만 부디노이족은 유목민들로 약간의 농사도 짓고 수달과 비버를 사냥하여 외투를 만들고 고환은 자궁병의 약제로 활용했습니다.7)겔노스인부디노이족 강역내에 살며, 나무로 지은 그리스식 신상과 제단 및 신전을 갖춘 그리스 성역이 있습니다.특이할 점은 이 부족은 3년에 한번씩 디오니소스 축제를 열고 모두 광란과 망아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네요.헬라스계인 겔로노스인(그리스인들)이 이주했기 때문입니다.8)사우로마타이족헤라스인이 전설상 호전적인 여인족인 아마조네스족(스키타이인들은 아마조네스족을 오이오르 파타-남자를 죽이는-로 부름)과 싸우다 포로로 잡은 아마조네스족을 3척의 배에 싣고 출항했는데, 선상 반란이 일어나 배안의 그리스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스키타이 영내로 들어와 약탈을 하던 중 몇차례 교전 끝에 그들의 사체에서 그들이 남자가 아닌 여자인것을 말고 용감한 후손을 얻기 위해 스카타이 훈남들로 편성된 부대를 활용하는 미남계를 써서 결국 그들을 복속(그 과정이 얼레리 꼴레이 한 19금)시킵니다. 하지만 여인들에게 설득당한 스키타이족 남자들이 여인들을 따라 바다를 건너 세운 부족이 바로 사우로마타이족이죠.9)왕령 스키타이족마지막을 스키타이족의 의뜸인 왕령스키타이족은 가장 고귀하고 규모가 큰 스키타이 부족으로 아조프해 지류인 돈강에 거주하며,그들은 주위의 다른 부족들을 모두 노예로 여기며 황금으로 도배한 나라에 살았습니다.암튼 느슨한 부족 연맹체였던 왕령 스키타이부족은 다리우스에 맞서 항전을 하려고 부족 연맹체 회의를 소집했는데...멜랑클아이족,게로노스족,부디노이족,며느리국인 사우로마타이족 만 참전을 합니다.그래서 스키타이 연합군을 앞서 설명한 청야전략(방어적초토화전략)을 참전을 포기한 다른 부족의 땅으로 페르시아 대군을 유인하면서 시작합니다.쫌 비겁하긴 하지만 반 강제로 그들을 참전시키는 부수적인 효과를 거둡니다.결과는 스키타이 부족 연합군 승....참! 외부문화에 대한 스키타이의 배타적인 면을 들여다 볼 수있는 에피소드는 오늘날 서양 예술의 탄생이라고 믿고 있는 디오니소스제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내일 소개드리겠습니다.ㅎ15.디오니소스신 제전과 스키타이 -해로도토스의역사논리와 이성 그리고 합리적 사고의 상징인 아폴론의 로고스(Logos)! 출생부터 신들의 사랑과 축복 속에서 태어나 균형,조화,절제,지식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반면에 출생부터 고통스러웠던 디오니소스는 도취와 광란,격정과 광기 그리고 몰입,몰아,무아,망아의 심리와 감정 상태인 파토스 (Pathos)표방합니다.아폴론의 로고스는 학문,디오니소스의 파토스는 예술의 시발점으로 보는데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디오니소스 박코스는 바람둥이 신 제우스와 인간인 세멜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는데,모친이 감전사하자 제우스의 넓적다리로 이식하여 출생했다고 하는 믿기 어려운 탄생 신화를 가지고 있죠.그래서인지 변신과 모방의 신이기도 하지만,인간에게는 포도 재배 기술을 전파하여 술을 발명한 酒神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고 헬렐레 해지는 도취와 격정, 황홀경에 빠집니다.이런 치명적인 유혹 때문에 디오니소스 밀교가 생기기도 했지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주로 풍요를 기원하며 파종을 하는 봄의 사육제나, 추수가 끝나는 가을의 추수 감사제와 같은 대중적 축제로 디오니소스 제전을 즐겼습니다.디오이소스 제전는 주로 장엄한 신화적 주제와 영웅 설화의 비극적 내용을 주제로 한 비극과 익살스러운 토속적인 이야기가 담긴 희극을 7:3의 비율로 공연했지요.아마 생존과 번성을 위해서는 아름답고 행복한 아야기보다,공포스럽고 슬픈 비극적 서사가 더 도움이 된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부정적이고 슬픈 뉴스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뉴스보다 훨씬 많은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그림도 예쁜그림보다 뭔가 우울하고,공포스럽고,괴기스러운 그림이 더 주목 받은 이치와 비슷합니다.암튼 수많은 미술사의 화가들이 이 디오니소스신과 제전을 작품으로 남깁니다.이 디오니소스 박코스!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신,로마에서는 박카스신이라 불리는데. 해로도토스의 기록에 의하면 한방에 비오니소스 박코스신이라고 하는군요. 디오니소스신과 스키타이족과 관련하여 한꼭지의 슬픈 서사가 나옵니다.외국의 관습,특히 그리스의 관습을 받아들이기 몸시 꺼려 했는데 왕족인 아나카르시스가 그리스 축제를 재현했다는 이유로 아우인 스키타이왕 사울리오스에게 살해 당하기도 했습니다.스키타이 왕 아리아페에테스는 이스트리아 출신인 그리스여인 결혼하여 아들인 스퀼레스를 낳습니다.어머니로부터 그리스 말과 글을 배우고 자란 스퀼레스가 왕위에 오르자 그리스식 생할과 풍습에 매료되어 군대를 이끌고 스리스인 부족이 사는 보뤼스테네스족 도시로 정기적으로 원행을 합니다. 군대는 교외에 주둔시키고 본인만 성안으로 시종과 호위도 없이 그리스인 의복으로 갈아입고 한달정도 잠행을 한 모양입니다.심지어 저택도 구입하고...그리스 여인과 결혼까지 하지요. 대 스키타이 왕을 이렇게 중독 시킨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그가 디오니소스 박코스신을 모시는 秘儀, 즉 밀교에 빠졌기 때문입니다.해로도토스에 의하면 스키타이족들은 이 그리스인들의 박코스 축제를 혐오했다고 하네요.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신(술에 과도하게 취하면 개되는 것은 예나지금이나..ㅋㅋ) 과 그들이 버리는 광란의 축제...제정신을 가졌다면 당근 싫어 했겠지요.ㅎㅎ 드디어 드라마에서 처럼 밀고자가 등장합니다. '스키타이족이여! 그대들은 우리가 박코스 신을 숭배한다고 우리를 비웃고 있소.그런데 그대들의 왕도 그 신에게 미쳐있소.이말이 믿기 어려우면 내가 그 장면을 보여 주겠소' 나머지는 굳이 설명 안해도...ㅠㅠ 이윽고 본국으로 송환된 스퀼레스는 반란으로 새로 왕이 된 동생에게 쫓겨 트라케로 도망갑니다.스키타이족은 스퀼레스을 잡으려고 트라케와 전쟁까지 합니다. 결국 스퀼레스는 그동안 달고 다니던 머리와 슬픈 이별...ㅠㅠ 디오니소스가 뭐라고...그 깟 박카스(박카스가 왜 여기서 나와...ㅋㅋ)가 뭐라고...ㅠㅠ암튼 이런 풍습을 지닌 스키타이족들의 조상이 동진하여 그 후손들이한반도에 세운 나라들인 고구려 동맹,동예의 무천,부여의 영고 등 추수 감사제에 외제 술신인 디오니소스 박코스 대신 순수 토종인 하늘신과 조상들을 향해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제사를 모셨다는 슬픈 전설이 있었습니다.ㅎ 다음은 역사 이전의 시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구전되는 신화와 전설이 어떤 과정으로 탄생되는지....조지 프레이져 경의 명저 '황금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글쓴이 : 에코락갤러리 대표 장현근
2020-06-16
최후의 문명[2]-한국미술의 미래를 향한 좌충우돌의 여정!
5-2.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스키타이 유적 발굴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헤르만 파르칭거! 세계에서 몇 안되는 선사시대 고고학 전문가입니다.오직 유물과 유적으로만 말을 하죠.해석이나 연결이 안되는 부분은 그대로 잘 모르겠다고 인정합니다.어쩌면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일지도 모르는데,천하의 파르칭거라도 어찌 다 알겠습니까?자 그러면...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의 스키타이족이 어디서 왔는지...파르칭거가 안내하는 선사시대로 들어가 봅니다.그러니까 10년도 아니고,100년도 아니고,1,000년도 아닌 무려 700만년전...아프리카중부 어딘가의 나무위에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라는 인간과 침펜지가 분화 직전의 유인원이 살고 있었습니다.이때 우리 원시뇌에 각인된 원초적 공포인 고소공포증,파충류(뱀...나무위에 올라와 인류의 조상을 괴롭히던...),거미와 같은 곤충류(어쩌면 송충이도..ㅎ)등이 형성 되었을 것입니다.이윽고 390~320만년전 기후변화로 울창했던 숲이 사라지고 건조한 사바나 초원으로 변하자, 호미니드는 더이상 더이상 올라갈 나무가 없어지지요.그들은 바로 지상으로 내려와 직립보행하기로 큰 결심을 합니다.에디오피아에서 침펜지 보다 약간 큰 루시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그로부터 100만년이지난 270만년전 동아프리카 올두바이 협곡에서 올도안 석기(자갈석기...자갈을 바위에 세게 던지면 여러분들도 만들 수 있음..)...돌맹이를 의식적으로 깨뜨려 목적있는 도구로 만든...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등장하지요.드디어 유인원과 인간이 분화되는 결정적 순간이 온 것입니다.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채식주의자 비건이었습니다.하지만 200만년전 좀더 진화한 인류는 짐승의 사체에서 썩은 고기를 도구를 활용하여 발라먹어 단백질을 섭취합니다.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 다니는 호모 하빌리스!!!잘 아시다시피 단백질은 근육과 뇌 형성에 필요한 영양소입니다. 한번 고기맛을 맛본 인류는 드디어 썩은 고기 말고...싱싱한 고기를 찾기 시작하지요.바로 사냥을 본업으로 하는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합니다.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단백질 섭취는 근육과 체격...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뇌를 비약적으로 발달 시킵니다.게다가 불까지 활용하게 됩니다. 드디어 인류는 따뜻한 아프리카를 떠나 멀리 추운 유럽지방까지 장거리 여행을 할 준비가 된 것이지요.혹독한 빙하기에도 생존하고, 열대 우림을 통과하여 우여와 곡절 끝에 한국에도 왔어요.ㅎ다음엔 선사시대 인류의 이동과 식생에 대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빙기와 간빙기와 같은 기후변화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겠습니다.그리고 호모 에렉투스의 유럽과 서아시아 정착과 네안데르탈인과의 관계...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동굴에 그려논 엄청난 분량의 동굴벽화들...드디어 미술이야기가 시작됩니다.이 구석기부터 신석기 시대 주인공들의 한 지류가 후에 스키타이족이 될지도 모릅니다.ㅎ5-3.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잃어버린고대문명-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대빙하기와 지질연대인 플라이스토세가 거의 끝날 무렵인 1만2,800년전 지구에 불청객이 찾아옵니다.그린란드 히아와타 지역에 소행성급 운석이 충돌하지요.히아와타 빙하 밑에 서울 크기만한 대형 충돌구가 발견된 것입니다.간빙기를 눈앞에 둔 지구는 충돌로 인한 먼지와 재..그리고 수증기로 태양빛을 가려 다시 빙하기가 강화되는 신(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기를 맞습니다.신생대 3기 플라이 스토세는 180만년 전부터 1만1,800년 사이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인류의 구석기 시대가 관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학자들은 70만년전~12만년전 까지를 전기 구석기 시대,12만년전 부터~3만5,000년 까지를 중기 구석기 시대,3만5,000년 부터 1만 1,800년을 후기 구석기 시대로 보고 있지요.플라이스토세 다음이 간빙기인 홀로세인데, 그 홀로세가 시작되기 약 1,000년 전쯤에 소행성이 충돌되었다는 것입니다.다시 혹독한 추위가 엄습해서 지구표면에 갑자기 엄청난 빙하가 쌓입니다.물론 충돌 자체도 지구적 대사건이었지만,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 빙하가 녹으면서 지구상에는 대이변이 속출합니다.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지구상의 많은 대륙이 사라지거나 열도로 변하고(인도네시아,필리핀,일본도...) 이때 구석기인들이 건넜던 아메리카 대륙과의 연결 통로인 베링 육교가 침수되지요.이때의 상황은 전세계 각 민족의 신화와 전설...그리고 고문서에 고스란히 담겨있으며,특히 수메르와 잉카 고대 달력은 정확히 1만1,652~3년을 특정합니다.빙하기는 인류의 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발생 원인에 대해 잠시 살펴봅니다.지구 자전축이 주기적으로 변해 생긴다는 설이 있지요.(극소수설이긴 하지만 싸이의 강남스타일 때문에 지구 자전축이 기울었다는 썰도 있습니다.ㅋㅋ) 또한 태양의 복사열과 관련된 설로, 간빙기가 되어 기온이 올라가면 해수면이 높아지게 되고 육지 면적이 줄어들게 됩니다.(우리는 대륙을 도모하면 되지만....일본은 어쩔...ㅠㅠ)그러면 지구의 복사열이 적어지고 지구는 다시 추워지기 시작하여 바닷물이 빙하로 변합니다.그러면 해수면이 다시 낮아져 사라진 육지도 다시 나타나고 열도도 랜드가 되는 것이죠. 아이러니 하게도 인류는 이 빙하기에 대규모 이동을 합니다.날씨가 추워지고 건조해지니...식량이 부족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겠지요.마침 육지가 드러난 해안가를 따라 해뜨는 동방을 향해 떠납니다.1만1,800년전에 간빙기가 시작되어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북극 빙하가 녹아 북극곰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 것을 보니 확실히 간빙기인 것은 맞습니다.특히 예전과 달리 도시에서 내뿜는 복사열이 많아 빙하기 주기가 빨라 질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하지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빙하기가 오려면 아주 멀었고요.설령 빙하기가 오더라도 연평균 6~10도 기온이 낮아지는 수준이지 재난 영화속의 그런 추위는 아닙니다.자랑스런 우리 조상인 호모에렉투스,네안데르탈인,호모사피엔스도 그 빙하기에도 살아 남았으니까요.잠시 제가 삼천포로 빠졌었군요. 다시 아프리카 호모에렉투스로 돌아와서...빙하기가 오고...울창한 숲이 사바나 초원으로 변하자 그동안 고기먹고 체력을 비축한 호모에렉투스....드디어 정든 아프리카를 떠나 먹이를 찾아 북진합니다.이윽고 북아프리카인 이집트에 도착하자 좌익과 우익으로 갈서게 됩니다.ㅋㅋ 국내 미술해부학 최고 권위자 조용진 교수님은 선천적으로 주시야가 좌시안인 사람은 좌측으로...주시야가 우시안인 사람은 우측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합니다.두눈을 부릎뜬채 오른손을 쭈욱 내밀어 10여m거리의 특정한 물건을 겨냥해 봅니다.그리고 왼쪽 눈을 감아도(오른쪽 눈을 감으면 핀트가 나감) 그대로 있으면 주시야가 우시안.... 그 반대면 죄시안이죠.각자 해보시고 댓글로 그 결과를 달아 주세요. 대부분 우시안 일 것입니다.우리는 우익 호모에렉투스...사피엔스의 후손입니다.ㅋㅋ여하튼 진행 방향으로부터 좌측으로 이동한 일부 좌시안들은 지금의 지중해 남단 해안가를 따라 이동하다 당시에 육지가 된 이베리아 반도를 건너 유럽에 진입합니다. 우시안들은 훗날 비옥한 초승달 지역으로 알려진 소아시아 근동으로 이동하지요.이들 중 좌시안을 가진 일부는 발칸반도,이탈리아,남프랑스 해변을 따라 산개됩니다.바로 빙하기에 동굴속에 거주하며 주로 사냥을 하며 흔적을 남긴 동굴벽화의 주인공들이죠.미술 해부학에서는 좌-우 시안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좌시안을 관장하는 우측 뇌는 동작과 거리..그리고 공간감을 관장하기 때문에 수렵에 특화된 눈이라고 해석합니다.아무래도 척박한 환경속에서 한정된 식량 쟁취와 생존를 위해 살아움직이는 들소나 사슴을 사냥하려면 원근법과 공간감에 익숙한 눈을 가지도록 유전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전형적인 싸움군,약탈자 ,정복자로 진화 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 결과 이 좌시안들의 미술이 역동적이고..공간감, 특히 원근법과 명암 표현에 능합니다.남유럽의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를 보면 이미 원근법이 그 당시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죠.미술사에서는 원근법을 르네상스 초기의 브르넬레스키가 원리를 발견했다고 하지만,이전 암흑기 천년 동안 기독교 이콘화는 기독교의 탄생지이자, 우시안들의 정착지인 소아시아에서 왔기 때문에 단면적이고 개념적인 것과 대비해서그런 것이지 사실은 원근법의 재발견이 맞습니다.그렇다면 우측으로 따뜻한 열대 우림의 해안가 따라 이동한 우시안의 우익 인류는 어떨까요? 꽉 막힌 열대림은 우신안들의 시각을 가로 막아 상대적으로 촉각,청각,후각에 예민하게 진화 됩니다.이들의 미술은 눈에 뵈는게 근거리 것 밖에 없어 원근과 명암없이 단면적이 개념적이지만 굉장히 디테일합니다.우리 문인화나 초상화, 그리고 민화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심지어 원근법과 하나의 소실점도 개무시하는 역원근법...다시점도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세잔이 울고갈 정도....)또한 채집할 식량들이 지천에 널려 있어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이 순둥이들로 진화하게 되지요.이들은 순차적으로 메소포타미아...인도...등지에 정주하지만, 인구가 계속적으로 늘어나자다시 이동을 시작합니다.동남아 순다랜드에서 분화하여 일부는 호주로..나머지는 남중국을 거쳐 서해를 걸어서 한반도와 육지화된 일본을 거쳐 베링육교를 지나 아메리카로 진입하지요.문제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기상 대이변...1만1,800~1만1,650여년 사이에 해수면이 차올라 더이상 도미하지 못하고...한반도와 만주등에 꼼짝없이 갇히게 됩니다.아프리카 호모에렉투스가 가지고 다니던 전기 구석기 시대의 아슐리안 석기가 임진강변인 연천 전곡리에서 발견된 이유입니다.적어도 우리 조상은 70만년~12만년 전에 한반도에 도착했다는 증거가 되죠.이제 반만년..5,000년 역사는 식민사관을 만든일본에게 되돌려 줘야겠습니다.ㅎ5-4.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잃어버린고대문명-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호모사피엔스- 유발 하라리호모 에렉투스는 올도안 석기로 200만년~150만년을 아프리카에서 버티다,150만년 전후로 아슐리안 주먹도끼로 무장한 채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됩니다.자바원인과 베이징 원인이 바로 그들이죠.한반도에는 유골이 발굴된 적이 없고 아슐리안 석기만...(국제 특송으로 온것은 아닐테고...ㅠㅠ) 특히 약 50만년 전에는 이들중 좌시안의 호모에렉투스가 알프스 이북 중부유럽에 나타납니다.바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인데요.당시 유럽은 엘스터 빙하기로 매우 추웠습니다.이들은 타고난 사냥꾼으로 180cm~250cm의 창을 왼발을 앞으로 두고(왼발을 먼저 내딪는 것은 좌시안들의 특징...왼발을 앞에 두는 그리스 동상들...미군의 행군시 왼발,외발-your left..your left...,특히 문자도 왼쪽부터 시작...) 몸통의 회전력을 극대화 시켜 창을 70m나 날려 사냥을 했습니다.지금의 우리보다 근육이 발달했으며 공간지각능력(원근법,공간,명암법 등이 잘 발현된 서양화) 월등히 뛰어났다고 보면 되겠습니다.이러한 사냥 능력은 당시 발견된 유골에는 돌칼로 베인 흔적이 남아 있어 전쟁과 약탈에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학자들은 빌칭 슬레벤에서 출토된 규칙적 선이 그어진 코끼리 정강이뼈는 인류 최초의 미술작품으로 추정합니다.중기 구석기시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 부터 분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은 43만년 전부터 4만2천년까지 북 아프리카와 유럽 전역,근동 및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합니다.북아프리카에서 좌측으로 분기되어 지중해 남안을 따라 유럽에 진입한 인류의 후손으로 보이네요. 혹독한 빙하기에도 생존했으며 다부진 체격에 얼굴이 길고,상체에 비해 하체가 숏 다리(그래서 말을 탔나?ㅎㅎ)이며, 저처럼 눈썹 윗부분이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특징이 있지요.특히 코가 크고 긴데....추운 빙하기에 폐에 공기가 닿기 전에 약간 데워서 보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 한것으로 보입니다.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코큰이가 있는지..ㅎㅎ 영국의 스완즈컴 원인과 바덴뷔르템베르크 원인은 후기 호모에렉투스임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둘이 꽁냥꽁냥 했든지,아니면 에렉투스가 진화한 것으로 봅니다.네안데르탈인은 전형적인 사냥 전문가로 메머드,털 코뿔소를 집단 사냥하며 살았는데 부상당한 흔적이 있는 유골을 보아 그들의 삶도 녹녹치 않은것 같습니다.특히 사후 세계를 믿었는지 최초로 죽음을 의식한 장례를 치릅니다.이쯤에서 나와야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유발 하라리의 호모사피엔스입니다.네안데르탈인은 비록 멸종했지만 그들의 유전자는 현생인류에도 남아있지요.유전자의 약 1.2~2.1%가 섞여있어,학자들은 호모사피엔스 종의 편차내에 있다고 봅니다.특히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은 아프리카 게놈보다...유럽 아시아 게놈에 가깝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장황하게 좌시안을 가진 유럽과 서아시아,중앙아시아의 선사시대 인류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우리 민족을 구성하는 선조들 중 다수는 우시안을 가지고 따듯한 해안가를 따라 먼저 한반도에 도착했지만....(평화를 사랑하는...),먼 훗날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초원길을 통해 한반도에 도착하는 북방 기마민족의 선조들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구요.호모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사냥과 끈질긴 생존 본능이 그대로 유전된 호모사피엔스의 한 지류가 스키타이족으로 진화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다음은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와 총균쇠,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에 나오는 호모사피엔스가 근동의 비옥한 초승달지역과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인더스강 등지에서의 정착과 흑해,카스피해 연안의 스키타이족과의 관계에 대해서 풀어보겠습니다.5-5.호모사피엔스- 유발 하라리/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잃어버린고대문명-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유발하라리는 원래 '중세전쟁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끝은 서로 통해 다양한 영역을 넘나 들며 지적 유희를 즐기고 있지요.참고로 중세 십자군 전쟁에서의 특수작전만을 그린 그의 초기 작 '대담한 작전'과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곁드려 읽으면 더 재미납니다.유발 하라리는 다른 인류학자들과 약간 결이 다른 주장을 하면서 호모 사피엔스를 시작하는데요.바로 인류는 순차적인 진화를 한 것이 아니라....200만년전부터 1만년전까지 지구상에는 다양한 종의 인류가 살았다고 보더군요.마치 오랑우탄,침펜지,고릴라,개코원숭이 등이 지금도 공존하듯이 말입니다.네안데르탈인,호모에렉투스,호모사피엔스 등이 공존하다 다른 종들은 다 멸종하고 사피엔스만 살아남은 셈이죠.호모사피엔스의 흔적은 25만년전~15만년전 사이에 호모에렉투스가 떠난 아프리카 남부와 동부에서 유골이 발굴됩니다.해부학적 특징으로 불을 활용하여 음식을 익혀먹었기 때문에 치아와 턱이 작아지고 뇌크기는 현대인 수준이었는데, 호모에렉투스의 이동경로를 따라 7만년 전에 아라비아 반도로 나타나더니, 이후 유라시아 전 대륙으로 산개됩니다.믿고 싶지 않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도착하면 토착 인류는 거의 몰살합니다.바로 언어를 통한 사회적 기능 (의사소통,교역)과 생존 기술의 발달...그리고 미적 감각을 가진 심미안 때문에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에서 폭력과 전쟁,그리고 대량 학살을 하며 인종 청소를 한 셈입니다.이른바 언어와 미술과 같은 상징체계로 지식과 경험의 축적함으로써 생존 정보의 교류와 전파가 가능했기 때문에 막강한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죠.이런 호모 사피엔스 중 좌시안을 가진 약 7만 5,000년 전에 근동 아시아를 거쳐 아랄해,카스피해 너머 중앙아시아 초원지대까지 진출합니다.나머지는 우시안은 아프리카와 환경이 비슷한 해안로를 따라 이란,인도,순다랜드,일부는 호주...남중국, 한반도,배링 육교, 아메리카로 넘어 가지요.중국 남부는 5만년 전 도착했으니..한반도에는 늦어도 4만년 전에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학자들은 후기 구석기 시대를 3만5,000년 전부터 ~홀로세 시작 전후인 1만년까지를 보기 때문에 한반도에 나타난 사피엔스는 후기 구석기시대를 주도한 것으로 보이네요. 얼마전 임진강변에 있는 구석기 유적지인 주월리 유적은 5만년 전이라고 하니 얼추 들어 맞습니다.이 우시안의 사피엔스는 비교적 수렵과 채집 환경이 풍부한 지역을 통과해서 별다른 경쟁 없이올라왔기 때문에 유럽과 중앙 아시아로 진출한 사피엔스에 비해서 성정이 순했을 것으로 보입니다.오늘날 우리 한민족을 형성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사피엔스는 근동(소아시아,지금의 중동,서아시아)에서 좌시안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우시안은 인도와 순다 랜드로 향하는 분기를 이룬 후 먼 훗날 순차적으로 한반도에 도착하여 운명적 해후를 합니다.다시 동유럽과 중앙 아시아로 진출한 사피엔스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사피엔스의 진출은 앞서 언급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 관계가 있는데요. 이부분에서 파르칭거와 하라리는 견해를 달리 합니다.파르칭거에 의하면 약 12만 5,000년 전 간빙기가 도래하고 유럽과 중앙아시아는 극도로 건조해져 전 유럽에서 나무가 사라지자 환경이 바뀌면 행동양식을 바꿔 적응하는 사피엔스와 달리 그런 능력이 없는 약 4만년전에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한다는 주장입니다.반면에 하라리는 7만 5,000년전 지중해 북부까지 진출했으나 네안데르탈인이 저항,기후,병균등으로 이주에 실패하고, 다시 7만년전 앞에 설명된 인지혁명을 바탕으로 재도전하여 유럽을 장악한다고 하지요.이런 협력과 유대 및 연대의 가능은 개인별로 힘센 네안데르탈인을 이기기에 충분합니다.소규모 씨족사회을 구성했던 네안데르탈인은 대규모 집단으로 연대한 사피엔스을 당해낼 수 없었겠지요.다음엔 후기 구석기 시대를 주도하고 인지혁명의 핵심인 호모사피엔스의 미술실력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5-6.호모사피엔스- 유발 하라리/인류는어떻게역사가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드디어 후기 구석기 시대인 호모사피엔스가 유럽과 동부유럽,그리고 일부는 시베리아로 등장합니다.이미 사냥 전문가로 성장했으며,주로 움막이나 동굴에서 가족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심미안이 생겨 동물 이빨이나 조개껍데기로 목걸이나 펜던트를 만들어 걸고 다녔지요.죽음을 의식하고 사자에 대한 연민으로 희생제물이나 심지어는 인신 공양을 한 흔적들까지 보입니다.특히 그림이나 상징으로 생존과 번성에 필요한 정보를 주고 받고 의사소통을 했습니다.바로 인류 최초미술의 탄생 배경입니다.생존에 절대적 요소였던 동물들이 모델 역할을 했음은 당연했죠. 3만4,000년전부터 1만1,000여년 전까지 지금의 프랑스 남부 유적지를 중심으로 북 스페인,북 이탈리아 등지에서 다양한 동물과 19금의 음문,남근 등이 동굴 벽화나 암벽화에서 발견됩니다.모두 생물학적 번식기제를 인지 했으며 풍요와 번성을 기원한 듯 보입니다.특히 3만년전 쇼베 동굴의 음각화는 역동적이고 원근법 요소가 담긴 동물 스케치들과 '사자인간상'으로 유명한 독일 슈바벤 알프동굴의 '홀렌 슈타인 -슈타델' 등이 이 시기가 예술의 탄생기였음을 알려주지요.이후 남부 프랑스 북부 스페인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 동굴벽화는 표현 수준과 주제의 다양성이 현대 미술 못지 않습니다.그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 비너스'이시기에 제작되어 시베리아를 거쳐 고조선 강역이었던 요하문명지인 극동까지 전파됩니다.라스코와 알타미라의 벽화는 점차 상징이 사라지고 대신 윤곽이 선명하며 원근법이 적용되고, 겹친부분으로 공간감을 표현한 전형적인 북방계 좌시안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미술의 탄생기! 후기 구석기 시대의 호모사피엔스는 무슨 이유로 그림을 그렸을까요?이 질문에 답을 구할 수만 있다면 오늘날 예술...특히 미술이 존중받아, 신성한 성소와 제단과 같은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작가들이 존경받는지에 대한 답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단순한 의문을 풀기 위해 지난 3년간 좌충우돌하며 닥치는대로 관련 자료를 들여다 봤습니다만, 아직 선명한 답은 구하지 못했네요.지금까지의 유력설은 동굴이 숭배의식의 장소였고 미술이 숭배와 제의식의 도구였다는 것입니다.뭔가 2% 부족한 느낌이지요.그래서 어설프지만 우기기 신공으로 저 나름대로 정리한 3만여년전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호모사피엔스가 그림을 그렸는지 라스코 벽화 하나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아래 그림은 들소 사냥중 불행한 사고를 당한 새머리 남자(완전히 새됐어...ㅠㅠ)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입니다.앞서 호모에렉투스는 무게 중심이 앞에 있는 창을 70m을 던져 사냥을 했지요.사피엔스는 이보다 진일보하여 투창 가속기를 활용, 시속1 00km의 속도로 창을 던지는 사냥 전문가였습니다.물론 집단으로 사냥감을 한 곳으로 몰아서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사냥을 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에서 사냥하다 다친 흔적이 발견된 것을 보더라도 사냥은 매우 위험한 일임은 틀림이 없습니다.내장이 흘러내린 것을 보니 들소는 이미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상처를 입어 화가 잔뜩난 들소에게 동료가 당한 모양입니다.이미 사피엔스는 죽음과 사후세계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동료의 영혼이 새가 되어 하늘나라로 날아간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 합니다.어쩌면 일상 중의 하나였으며, 사냥중 발생 할 수도 있는 일을 왜 그렸는지에 주목합니다.사냥에 실패한 동료를 숭배했을 리는 없지요.다만 그 동료의 희생을 기리고 그의 평안한 사후세계를 기원하는 장제의식일 수 는 있겠습니다.하지만 저는 그것을 넘어선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봅니다.바로 생존에 필요한 방어기제...즉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부족민들에게 전파하거나 후손들게 경각심을 심어줄 목적으로 그렸다는 것입니다.이 그림을 본 부족민들이나 후손들은 대를 이어 들소 사냥을 할때는 각별한 주의를 했을 겁니다.이렇듯 미술은 그 태동기부터 인류의 생존과 번성을 위해 숭고한 의무를 다했습니다.역사를 관통해서 현재까지도요.우리가 세상의 모든 작가님들을 존경하는 이유입니다.다음은 이렇게 사피엔스가 유럽과 중앙아시아지역에서 빙하기를 보내고 간빙기를 맞는 1만여년전 전후하여 동유럽의 흑해와 카스피해,남쪽으로 지금의 터기 북부인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에서 난동을 부린 북방계 악동 스키타이에 대한 이야기를 인류 최초의 역사학자 그리스 헤로도토스의 이야기를 빌려 해보겠습니다.그들 중 일부가 동진하여 미리 도착해 있던 남방계와 혼혈하여 우리 조상이 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가기 1 2 3 4 5 6 마지막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