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樂 갤러리’ 작가인터뷰입니다.

치유展_백은미 작가

임소정 | 201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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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작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일본에서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와 몸과 정신을 추스르면서 보니,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전부터 정말 하고 싶었지만 일찍이 포기했던 것, 너무 하고 싶어서 쳐다보지도 않던 것을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ㅣ 자신의 작품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한 단어”로 표현되지 않는 작품을 그리고 싶습니다만, 얘기하자면 ‘방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론가 반드시 가야 한다는 압박감,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눈앞의 세상과 단절될 때 정적 속에서의 불안감이나 망설임, 고독감 등을 담으려 했습니다.

 

ㅣ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위로요. 누구든 혼자라고 생각될 때가 있잖아요. 가위에 눌린 것처럼 갑자기 세상과 단절된 듯해서 오로지 혼자가 될 때가요. 이게 참.. 변태적이랄까... 죄책감이 들거나 제 자신이 싫어지기도 하는데요.. 나만 힘들고 외롭고 슬프고 아픈 게 아니라는 걸 알 때, 묘하게 안도하게 되잖아요. 완벽한 끝은 없지만 누구라도 방황하고 미아(迷兒)가 되기도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나아가 제 방황을 누군가 공감하며 잠시나마 위로가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ㅣ 작품의 특정 주제나 재료, 배경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주제는 아무래도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쉬웠고, 그것밖에 안중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상(理想)과 현실 사이에 적당히 타협해 선택하고 공허하게 지내는 것도 지쳤고, 진짜 내 길은 뭔가 하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대한 고민이나 번민도 제발 끝을 내고 싶었습니다. 나 자신에게 떳떳한, 한 평생 해도 후회 없을 것 같은, 고민과 방황도 즐거울 것 같은 그런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그림을 시작하면서 그릴 수 있는 건 제 경험인 방황이나 감정들 밖에 없더라고요.
오일이라는 재료를 선택한 건, 유화를 그려보는 것이 어렸을 적부터 꿈이기도 했고, 지금은 오일로 작업하는 게 수정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구상해서 그리고 완성하고 만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갑자기 마음에 안 들거나 몇 달 후 번뜩 더 좋은 수가 생각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럴 때 리셋하지 않고 덧바르거나 쌓아 올릴 수 있는 점, 쌓아 올리면서 더 깊이감이 생긴다는 점에서 우리네 인생 같기도 하고, 잠시 실수해도 괜찮아,라는 안도감을 주는 것 같아요.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에 보면 자신이 달걀 프라이라서 ‘찢어질까 봐’, ‘노른자가 흘러나올까 봐’ 하는 망상에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의 얘기가 나오는데, 이 환자에게 어떤 의사가 토스트 한 조각을 늘 가지고 다니라고 제안을 했어요. 의자 위에 토스트를 올려놓고 앉으면 되고, 노른자가 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죠. 오일이라는 재료는 저한테 토스트 같은 존재에요. 틀릴까 봐, 고칠 수 없게 될까 봐, 한 번의 획으로 모든 걸 망칠까 봐, 하는 불안감에서 저를 조금이나마 안심시켜주죠.

ㅣ 작품 활동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제 방 벽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들을 직접 모사해서 걸어놨는데 그 그림들이 원동력인 것 같아요. 완벽하게 한 점 한 점 세밀하게 모사한 게 아니라 그 그림을 보고 제가 느낀 대로 좋아서 막 따라 그린 그림들이에요. 지금 보면 허술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때도 있지만 보고 있으면 ‘아 그래도 좋다’라고 멍-하니 바라보게 되거나, 당장이라도 뜯어내서 수정하고 싶어지거나, ‘역시 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리고 과거의 자신이 이 작품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어떻게 느끼며 표현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그릴지 더 나은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ㅣ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나 사건, 장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물, 사건, 장소는 아니고 한 작품인데요, ‘피카소와 천재화가들’展을 보러 갔었는데 클로드 모네의 <베퇴이유로 가는 길>이란 작품을 보고 멈춰 서서 최소 1시간은 그 그림만 본 것 같아요. 삶의 고됨이라든가, 슬픔, 쓸쓸함, 약간의 희망 같은 복합적인 감정들이 갑자기 제게 밀려들어왔어요. 너무 당연하게요. 전시장에서 몇 번이나 뒤돌아 다시 그 그림을 보러 되돌아갔죠. 의자라도 있었더라면 불 꺼질 때까지 앉아서 계속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빚을 져서라도, 한 30년 할부로라도 살 수 있다면 평생 소장하고 싶은 그림이었습니다. 전시관에서 홀린 듯 보게 되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고 생각했죠.

ㅣ 에코락갤러리에서 전시를 진행하며 느낀 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비밀의 말 시리즈는 제 악몽들을 모티브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제 무의식과 의식 전부를 털어놓는 기분이에요. 제 자신이 많이 편협했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넓어지고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ㅣ 본인 작품의 감상 포인트가 있다면? 

거대한 의도 같은 것은 없어요. ‘비밀의 말’ 시리즈가 속해있는 ‘청춘 미아’는 제 자서전 같은 거니까 되도록 편안히 감상하고 공감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놓쳐버린, 혹은 포기하고 놓아버린 자신들은 없는지 생각해봐 주셨으면 합니다.

ㅣ 열린 질문입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질문을 정하고 그에 대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Q. 자신의 청춘 미아(靑春迷兒)는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끝을 낼 거고, 그다음엔 무엇을 그릴 것인가?
긴 방황 끝에, 나를 찾는다, 그림을 그린다,라는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미아가 되었다. 바로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길이다. 지금은 찾고 있는 중이다. 이 부분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야 청춘 미아의 결말도 낼 수 있을 것 같다.

ㅣ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앞서 말했던, 한 시간쯤은 넋 놓고 바라보게 되는 그림을 그리는 거요.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아무것도 필요 없는, 그림 자체가 모든 설명과 위로와 소망이 되는 작품을 그리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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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미

수상
2016 제 16회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2015 제  2회 정선풍경미술대전
2015 제 17회 보문미술대전
  
전시
2017 개인전 '청춘미아', 8번가 갤러리, 서울
2016 단체전 '작당', 국회의사당, 서울